베를린 필 첫 여성 지휘자의 예견된 몰락
[arte] 이수정의 영화 속 악녀들
권력의 정상에 오른 한 여성 인물을 통해
‘낯설게 보기’의 방식으로
권력의 속성을 들여다보는 영화 <타르>
권력의 정상에 오른 한 여성 인물을 통해
‘낯설게 보기’의 방식으로
권력의 속성을 들여다보는 영화 <타르>
슈트를 차려입고 토크쇼에 출연한 타르의 모습을 카메라가 비춥니다. 그녀는 인터뷰에서 자신을 ‘마에스트라’라 부르는 데 반감을 드러냅니다. 음악계가 공평해졌다는 전제하에, 굳이 여성형 명사를 따로 만들 필요가 없다는 논리입니다. 타르는 이미 “세상은 달라졌다”고 말합니다. 수많은 여성이 아직도 기울어진 운동장에 서 있다는 현실을 부정합니다. 하지만 타르가 오른 지휘대는 여성 지휘자들의 오랜 투쟁으로 얻은 성과물입니다. 그 투쟁은 여전히 현재진행 중입니다. 타르는 자신이 참여하지 않은 싸움의 결실 위에 슬쩍 지휘봉을 얹으면서, 그것을 오직 개인의 재능과 노력의 결과로 환원합니다. 그녀의 세계에서 ‘구조의 문제’는 삭제되었습니다. 물론 타르의 성공이 여성 지휘자의 지위 향상에 기여한 면이 있으니. 타르 역시 본의 아니게 클래식 음악계의 성차별 관행을 저지한 셈입니다.
그녀의 주변 여성들은 다릅니다. 클래식계의 여성 혐오 문화에 대해 정확히 인식하고 있습니다. 비서 프란체스카는 말러가 아내이자 작곡가였던 알마의 활동을 억압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이는 타르가 말러 5번 교향곡을 ‘순수한 젊은 날의 사랑’이라 해석한 것에 대한 비판이기도 합니다. 오케스트라에 새로 온 첼리스트 올가는 매년 3월 8일이면 클라라 체트킨(독일의 사회주의자이자 여성운동가)에게 헌화한다고 말합니다. 타르는 그날이 그녀의 생일이냐고 되묻습니다. 3월 8일은 클라라 체트킨이 창시한 세계 여성의 날입니다.
줄리아드 음대에서의 마스터 클래스 장면은 타르의 세계관을 가장 강렬하게 드러냅니다. 카메라는 10분 넘게 끊김 없는 롱테이크로 그녀를 따라갑니다. 편집 없이 지속되는 쇼트는 타르의 언행을 통해 권력의 작동 방식을 집요하게 추적합니다. 타르는 팬젠더(모든 성별의 성별 정체성을 갖고 있는 젠더) 정체성을 가진 학생 맥스에게 바흐를 좋아하느냐고 묻습니다. 맥스가 바흐의 여성 혐오적 삶 때문에 그의 음악을 수용하기 어렵다고 답하자 음악은 작품 자체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타르는 지휘자의 권위를 내세워 맥스의 반론을 차단합니다. 다양성은 그렇게 봉쇄되고 결국 맥스는 교실을 떠납니다. 카메라는 타르의 손짓과 말, 맥스의 반응을 한 치도 빠짐없이 따라갑니다.
끊기지 않는 카메라의 응시 덕분에 관객은 그 폭력이 일어나는 현장에 있는 듯합니다. 맥스가 떠나는 뒷모습에 대고 타르는 “네 뇌의 설계자는 소셜 미디어야!”라고 외칩니다. 맥스의 철학을 단지 시대의 유행을 따랐을 뿐이라며 폄훼합니다. 맥스의 깊은 고민이나 주체성은 과연 없었을까요? 이 장면은 훗날 악의적으로 편집되어 SNS에 퍼집니다. 이 내용은 캔슬 컬처(유명인의 과거 행동이나 발언을 문제 삼아 사회적 지위를 박탈하려는 온라인 문화 현상)와 영상 매체가 권력을 무너뜨리는 새로운 문화를 보여줍니다. 이 마스터 클래스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논쟁적인 주제 중 하나를 담고 있습니다. 예술과 예술가의 윤리를 구분하려는 시도는 예술사를 관통하는 오랜 논쟁입니다.
맥스와 타르는 같은 성 소수자지만, 세계관은 다릅니다. 타르는 도덕적으로 선한 인물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영화는 그녀가 배우자를 배신하고, 비서 프란체스카를 이용했으며, 크리스타의 죽음에 책임이 있음을 암시합니다. 그녀는 젊은 여성들에게 성적으로 접근했다는 의혹을 받고, 언론의 비판에 휘말립니다. 성공의 정점에 오르기는 험난하지만, 나락으로 떨어지기란 한순간입니다. 스승에게 푸르트벵글러의 나치 관련 경력을 물었을 때, 스승은 그가 다시 지휘를 허락받은 장소가 ‘시신들 앞’이었다고 말합니다. 이 장면은 타르의 미래를 암시하는 듯합니다.
케이트 블란쳇은 이 인물을 소화하기 위해 독일어, 지휘법, 피아노 연주를 새로 배웠습니다. 목을 조여 오는 위기 속에서도, 새로 온 첼리스트 올가를 향한 욕망을 드러낼 때의 이글거리는 눈빛 연기는 압권입니다. 그녀는 권력의 작동과 불안한 감정을 온몸으로 표현합니다. 고독, 두려움, 자기중심적 욕망이 그녀의 손끝, 눈빛, 숨결에 담겨 있습니다. 케이트 블란쳇은 카리스마와 기품이 있지만, 신경증과 폭력성마저 지닌 복잡 미묘한 인물 타르를 창조합니다.
이수정 문화콘텐츠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