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타르> 스틸 컷 / 출처. IMDb
영화 <타르> 스틸 컷 / 출처. IMDb
리디아 타르(케이트 블란쳇)는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우뚝 섰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딛고 선 단상은 본디 튼튼하지 않았습니다. 권력의 세계는 늘 붕괴를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타르의 몰락은 어쩌면 예견되어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지금껏 그녀를 따라주던 행운이 비껴갔을 뿐입니다. 영화 <타르>(2023)는 권력의 정상에 오른 한 여성이 몰락해 가는 과정을 차분히 조망합니다. 토드 필드 감독은 타르의 침몰이 왜 불가피했는지를 관객에게 설득합니다. 그 깨달음은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한기를 동반합니다. 이 영화는 우리가 속한 크고 작은 권력의 세계와 그 주변부를 훤히 들추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우리가 권력에 굴복하거나 혹은 권력을 이용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고 성찰하게끔 합니다.

슈트를 차려입고 토크쇼에 출연한 타르의 모습을 카메라가 비춥니다. 그녀는 인터뷰에서 자신을 ‘마에스트라’라 부르는 데 반감을 드러냅니다. 음악계가 공평해졌다는 전제하에, 굳이 여성형 명사를 따로 만들 필요가 없다는 논리입니다. 타르는 이미 “세상은 달라졌다”고 말합니다. 수많은 여성이 아직도 기울어진 운동장에 서 있다는 현실을 부정합니다. 하지만 타르가 오른 지휘대는 여성 지휘자들의 오랜 투쟁으로 얻은 성과물입니다. 그 투쟁은 여전히 현재진행 중입니다. 타르는 자신이 참여하지 않은 싸움의 결실 위에 슬쩍 지휘봉을 얹으면서, 그것을 오직 개인의 재능과 노력의 결과로 환원합니다. 그녀의 세계에서 ‘구조의 문제’는 삭제되었습니다. 물론 타르의 성공이 여성 지휘자의 지위 향상에 기여한 면이 있으니. 타르 역시 본의 아니게 클래식 음악계의 성차별 관행을 저지한 셈입니다.
영화 <타르> 스틸 컷 / 출처. IMDb
영화 <타르> 스틸 컷 / 출처. IMDb
타르는 이미 남성 중심의 권력 구조에 깊숙이 편입된 인물입니다. 그녀는 여성 지휘자를 위한 아코디언 컨덕팅 펠로우십을 설립했지만, 여성 간의 연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본인이 레즈비언임에도 젠더 이슈에 무지합니다. 토드 필드 감독의 표현처럼 타르는 오랫동안 존재한 가부장제의 탑을 찬사하며 직접 쌓아 올리는 ‘명예 남성’입니다. 그녀에게 여성만의 새로운 권력 윤리를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여성이라고 해서 더 높은 도덕성을 타고났다는 근거도 없습니다. 아니, 그런 문제를 통찰하기에는 역사에서 여성에게 권력이 주어진 기간 자체가 너무나 짧습니다. 하지만 타르는 남성 중심의 권력 세계가 지닌 위계와 통제, 권위주의적 문법을 아무 비판 없이 답습합니다. 그녀의 몰락은 단지 개인의 윤리적 실패가 아니라, 남성 권력을 모방한 여성의 실패라는 점에서 더 의미심장합니다.

그녀의 주변 여성들은 다릅니다. 클래식계의 여성 혐오 문화에 대해 정확히 인식하고 있습니다. 비서 프란체스카는 말러가 아내이자 작곡가였던 알마의 활동을 억압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이는 타르가 말러 5번 교향곡을 ‘순수한 젊은 날의 사랑’이라 해석한 것에 대한 비판이기도 합니다. 오케스트라에 새로 온 첼리스트 올가는 매년 3월 8일이면 클라라 체트킨(독일의 사회주의자이자 여성운동가)에게 헌화한다고 말합니다. 타르는 그날이 그녀의 생일이냐고 되묻습니다. 3월 8일은 클라라 체트킨이 창시한 세계 여성의 날입니다.
영화 <타르> 스틸 컷 / 출처. IMDb
영화 <타르> 스틸 컷 / 출처. IMDb
타르는 권력의 작동 방식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악녀입니다. 그녀는 자신이 가진 지위와 매력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줄 압니다. 영화 초반, 타르는 그녀를 칭송하는 여성 팬과 대화를 나눕니다. 타르가 칭찬했던 여성 팬의 붉은 핸드백은 어느새 그녀 차의 앞 좌석에 놓여 있습니다. 입양한 딸이 학원 폭력에 노출되자, 타르는 ‘어른의 권위’를 이용해 가해 아동을 협박합니다. 그녀가 저지른 권력형 비리에 관해서 영화는 직접 언급하지 않습니다. 타르가 꾸는 악몽이나 신경증의 형상으로 모호하게 묘사될 뿐입니다.

줄리아드 음대에서의 마스터 클래스 장면은 타르의 세계관을 가장 강렬하게 드러냅니다. 카메라는 10분 넘게 끊김 없는 롱테이크로 그녀를 따라갑니다. 편집 없이 지속되는 쇼트는 타르의 언행을 통해 권력의 작동 방식을 집요하게 추적합니다. 타르는 팬젠더(모든 성별의 성별 정체성을 갖고 있는 젠더) 정체성을 가진 학생 맥스에게 바흐를 좋아하느냐고 묻습니다. 맥스가 바흐의 여성 혐오적 삶 때문에 그의 음악을 수용하기 어렵다고 답하자 음악은 작품 자체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타르는 지휘자의 권위를 내세워 맥스의 반론을 차단합니다. 다양성은 그렇게 봉쇄되고 결국 맥스는 교실을 떠납니다. 카메라는 타르의 손짓과 말, 맥스의 반응을 한 치도 빠짐없이 따라갑니다.

끊기지 않는 카메라의 응시 덕분에 관객은 그 폭력이 일어나는 현장에 있는 듯합니다. 맥스가 떠나는 뒷모습에 대고 타르는 “네 뇌의 설계자는 소셜 미디어야!”라고 외칩니다. 맥스의 철학을 단지 시대의 유행을 따랐을 뿐이라며 폄훼합니다. 맥스의 깊은 고민이나 주체성은 과연 없었을까요? 이 장면은 훗날 악의적으로 편집되어 SNS에 퍼집니다. 이 내용은 캔슬 컬처(유명인의 과거 행동이나 발언을 문제 삼아 사회적 지위를 박탈하려는 온라인 문화 현상)와 영상 매체가 권력을 무너뜨리는 새로운 문화를 보여줍니다. 이 마스터 클래스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논쟁적인 주제 중 하나를 담고 있습니다. 예술과 예술가의 윤리를 구분하려는 시도는 예술사를 관통하는 오랜 논쟁입니다.
영화 <타르> 스틸 컷 / 출처. IMDb
영화 <타르> 스틸 컷 / 출처. IMDb
타르는 스스로를 심미주의자로 자처하며, 예술의 객관적 가치를 옹호합니다. 예술은 윤리로부터 독립할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물론 거기 엮인 서사는 너무나 다양하기에, 일일이 사안을 평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대의 상식, 상황과의 조응을 통해 유연하게 평가해야 합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일이 있는가 하면,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는’ 일도 있습니다. 물론 그때도 지금도 절대 흘려 넘길 수 없는 문제 역시 있는 법입니다. 미학이란 특수성은 때로 예술가에게 면죄부를 허용합니다. 하지만 작품이 창작자의 삶과 전혀 무관하게 존재할 수 있다는 믿음은 신화에 가깝습니다. 외부로부터 독립한 순수 가치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폴란스키와 김기덕 감독의 영화 소비에 관한 논쟁 역시 이 연장선에 있습니다. 결국 어떤 작품을 ‘용인할 수 있는가’는 시대의 감수성과 특수성에 따라 매번 개인이 판단할 문제입니다.

맥스와 타르는 같은 성 소수자지만, 세계관은 다릅니다. 타르는 도덕적으로 선한 인물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영화는 그녀가 배우자를 배신하고, 비서 프란체스카를 이용했으며, 크리스타의 죽음에 책임이 있음을 암시합니다. 그녀는 젊은 여성들에게 성적으로 접근했다는 의혹을 받고, 언론의 비판에 휘말립니다. 성공의 정점에 오르기는 험난하지만, 나락으로 떨어지기란 한순간입니다. 스승에게 푸르트벵글러의 나치 관련 경력을 물었을 때, 스승은 그가 다시 지휘를 허락받은 장소가 ‘시신들 앞’이었다고 말합니다. 이 장면은 타르의 미래를 암시하는 듯합니다.
영화 <타르> 스틸 컷 /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타르> 스틸 컷 / 출처. 네이버 영화
모든 것을 잃은 타르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레너드 번스타인의 비디오를 꺼냅니다. 순수하게 음악만을 사랑하던 시절로 돌아간 타르는 조용히 눈물을 흘립니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수석 지휘자였던 그녀는 낯선 땅 필리핀으로 향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타르는 작은 공연장에서 <몬스터 헌터>의 OST를 지휘하고 있습니다. 타르는 관객의 표정을 읽을 수 없습니다. 관객이 모두 코스튬 가면을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기괴한 모습에서 지휘자에 대한 평가를 찾기란 곤란합니다. 이 엔딩은 열린 질문을 던집니다. 그녀는 과연 초심을 되찾은 걸까요, 혹은 다른 몰락한 권력자처럼 재기의 기회를 엿보며 일시적으로 몸을 낮춘 걸까요. 레너드 번스타인의 비디오를 보며 흘린 눈물은 ‘악어의 눈물’에 불과할까요.

케이트 블란쳇은 이 인물을 소화하기 위해 독일어, 지휘법, 피아노 연주를 새로 배웠습니다. 목을 조여 오는 위기 속에서도, 새로 온 첼리스트 올가를 향한 욕망을 드러낼 때의 이글거리는 눈빛 연기는 압권입니다. 그녀는 권력의 작동과 불안한 감정을 온몸으로 표현합니다. 고독, 두려움, 자기중심적 욕망이 그녀의 손끝, 눈빛, 숨결에 담겨 있습니다. 케이트 블란쳇은 카리스마와 기품이 있지만, 신경증과 폭력성마저 지닌 복잡 미묘한 인물 타르를 창조합니다.
영화 <타르> 스틸 컷 /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타르> 스틸 컷 / 출처. 네이버 영화
감독 토드 필드는 말합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이 백인 남성이었다면, 그 모든 부패는 너무 당연해서 아무도 문제로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태도를 지닌 남성은 어디에나 있으니까.” 타르라는 여성 인물을 통해 우리는 ‘낯설게 보기’의 방식으로 권력의 속성을 다시 들여다보게 됩니다. 토드 감독이 덧붙인 또 하나의 말처럼, 모든 권력은 결국 부패합니다. 그리고 그 명제는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적용됩니다. 권력의 주체가 여성이든, 성소수자든 말입니다. <타르>는 단지 한 악녀의 추락이 아니라, 우리가 외면해 온 권력의 민낯을 정면으로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이수정 문화콘텐츠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