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콘서트홀 설계에 담긴 음향학
공원 지면과 맞춰 객석 층 배치
1㎡ 면적에 70kg 달하는 반사체 달아
부산시향, 지난 10일 폴 루이스와 협연
비수도권에 지어진 첫 대규모 클래식 공연장인 부산콘서트홀이 지난달 개관해 영남권의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개관 기념 축제를 마친 뒤에도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2000석이 넘는 관객이 꽉 차고 있다. 부산콘서트홀을 가장 많이 쓰게 될 악단인 부산시립교향악단이 이곳에서 처음 연 정기 공연을 찾아 현장의 소리를 들었다. 설계를 담당한 건축사무소를 통해 부산콘서트홀이 다른 공연장과 어떻게 다른지도 살펴봤다.
부산콘서트홀 대공연장 내부. 무대가 가장자리가 아닌 가운데에 가까이 위치한 빈야드 구조의 특징이 드러난다. / 사진출처. 클래식부산.동그란 빈야드, 무대도 가운데로
부산콘서트홀은 마른 하늘에 내린 단비다. 적어도 경상권의 공연 환경에선 그렇다. 공연예술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열린 클래식 음악 공연은 8109건. 이 중 절반(48.2%)인 3909건이 서울에서 열렸다. 그 다음 공연이 많았던 지역은 경상권으로 1654건(20.4%)이었다. 경기·인천권(16.5%)에서 열린 공연 횟수인 1336건을 웃돌았다. 그럼에도 경상권엔 2000석이 넘는 클래식 음악 대형 공연장이 그간 없었다. 파이프오르간 연주를 들을 수 있는 전문 공연장도 전무했다.
부산콘서트홀 대공연장은 2011석이다. 국내에선 서울 예술의전당(2505석)과 롯데콘서트홀(2036석) 다음 가는 규모다. 파이프오르간도 롯데콘서트홀, 부천아트센터에 이어 국내 공연장 중 세 번째로 설치됐다. 부산콘서트홀 대공연장은 포도밭으로 불리는 빈야드형 구조다. 겹겹이 쌓여있는 관객석이 원형으로 무대를 둘러싸는 구조다. 음향학이 발전하던 20세기 중반부터 나타난 형태다. 이와 달리 전통적인 슈박스형 구조는 직사각형 박스 모양이다. 1988년 문을 연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이 슈박스형에 가깝다. 2016년 개관한 롯데콘서트홀은 빈야드형이다.
부산콘서트홀 대공연장 내부. 빈야드 구조다. / 사진출처. 클래식부산 홈페이지.
빈야드형에선 무대 위치도 달라진다. 슈박스형은 무대를 한쪽 벽면에 붙여놓는다. 빈야드형은 무대를 홀 가운데에 더 가깝게 배치한다. 무대 뒤편에도 소리가 울릴 만한 공간이 생기다 보니 소리의 균형감, 입체감이 상대적으로 더 좋다. 관객으로선 좌석이 무대를 감싸고 있어 맞은편 객석에 앉은 관객의 얼굴이 훤히 보인다는 점만 감수하면 된다. 부산콘서트홀은 무대에서 나오는 소리의 방향에 따라 객석 각도를 틀어 전체 좌석을 13개 구역으로 나눴다.
1층 유리 벽, 그냥 투명한 게 아니다
객석 배치엔 사회적 맥락도 담겨 있다. 슈박스형은 무대와 객석 간 구분이 확실하다. 연주자가 위엄을 살리기 좋다. 빈야드형에선 관객들이 객석에 따라 다양한 각도에서 연주자를 내려다 볼 수 있다. 관객이 무대에 친밀감을 느끼기엔 이쪽이 더 좋다. 이러한 구조 변화를 공연의 민주화로 보는 해석도 있다. 부산콘서트홀의 설계를 맡은 DMP건축사무소의 박세환 본부장은 “유럽의 광장에서 사람들이 연주자를 빙 둘러싸는 야외 공연을 떠올리면 된다”며 “빈야드형은 음악 공연이 귀족에서 시민으로 향유 계층이 넓어지면서 나타난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부산콘서트홀 1층 로비. 부산시민공원과 이어져 있다. / 사진출처. 클래식부산 홈페이지.
시민들과 섞이겠다는 부산콘서트홀의 방향성은 다른 곳에서도 드러난다. 이 공연장은 제일 아래 객석을 지상 1층이 아닌 지하 1층에 놨다. 제일 많은 객석이 위치할 층의 높이를 공연장 바깥에 있는 부산시민공원의 지면 높이에 해당하는 지상 1층에 맞추기 위해서였다. 입장하려면 계단을 올라야 하는 전통적인 콘서트홀 구조와는 다르다. 관객이 진입할 때 무대에 별다른 위압감이나 거리감을 느끼게 하기 위한 설계다. 지상 1층 벽면은 외부에서도 연주를 볼 수 있도록 유리로 둘렀다.
사실 유리는 음향 측면에선 좋은 자재는 아니다. 소리가 닿으면 쨍한 반향음이 나서다. 외부 소음이 유리창을 타고 안으로 들어오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부산콘서트홀은 삼중으로 포갠 유리를 약 50cm 간격으로 띄어 이중으로 배치했다. 유리 벽 사이 빈 공간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소리를 잡아둘 뿐 아니라 악기 소리가 쨍한 소리로 반사되는 정도를 줄이는 역할을 한다. 유리에 반사돼 2층 발코니석으로 튀는 소리는 잔향을 분산시킬 때 쓰는 울퉁불퉁한 흡음 보드인 QDR반사체를 발코니석 밑에 붙여 잡았다.
부산콘서트홀 지상 1층에 있는 유리벽. 바깥쪽 로비에서 공연장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다. / 사진출처. 클래식부산.울퉁불퉁 벽돌들이 아래로 기울어진 이유
공연장을 둘러싸는 지하·지상 1층의 내벽 벽면은 벽돌로 쌓았다. 이 벽돌은 울퉁불퉁 쌓여있어 소리를 난반사한다. 수많은 벽돌 여기저기에 부딪힌 소리는 서로 얽혀 음향에 부드러움을 더한다. 벽돌 모서리도 둥글게 처리해 소리의 부드러움을 극대화했다. 특이한 부분은 옆에서 봤을 때 벽돌이 아랫쪽을 향해 5~10도씩 기울어져 있다는 점이다. 박 본부장은 “아래에 있는 객석을 향해 소리가 나갈 수 있도록 벽돌을 기울여 눕혔다”며 “벽돌을 지면과 수직으로 두게 되면 반향음이 위로 뻗쳐 소리가 하늘로 떠버리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부산콘서트홀 대공연장의 내벽 벽돌. / 사진출처. 클래식부산.
지상 1층 객석과 2층 발코니석 앞의 벽들도 저마다 방향이 다른 곡선형이다. 역시 소리를 부드럽게 반사시키려는 목적이다. 천장 주변부엔 하얀 돛처럼 생긴 판들이 여러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천장으로 올라간 소리를 저마다 다른 객석 방향으로 튕겨내 풍성한 소리를 만들어주는 마셜 반사체다. 유리를 섬유처럼 가늘게 뽑은 파이버글래스를 석고 보드와 섞어 만드는데 판의 무게가 1㎡ 당 무려 70kg에 달한다. 벽재는 일반적으로 단위면적당 무게가 많이 나갈수록 소리를 잡아두기에 좋다.
천장 한가운데엔 높낮이 조절이 되는 클라우드 반사체가 있다. 검은 줄이 달린 하얀 판이다. 소리가 작은 실내악 공연에선 이 반사체를 내려 음량을 키울 수 있다. 객석 곳곳으로 소리가 반사되도록 한 덕분에 어디서든 균형감이 잡힌 소리를 크게 들을 수 있다고. 박 본부장은 “2층 무대 뒷 좌석에서도 일반적인 공연장의 S석에 해당하는 음량을 경험할 수 있다”며 “건물 외관은 구름, 하늘, 바람 등을 콘셉트로 삼아 땅에 해당하는 공원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부산콘서트홀 대공연장 천장에 달려 있는 클라우드 반사체. / 사진출처. 클래식부산.통통 튀는 소리 살린 부산시향
지난 10일 열린 부산시향의 정기연주회는 부산콘서트홀 음향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였다. 이 공연장이 지난달 20일 정식 개관한 뒤 부산시향이 공연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 악단은 오는 9월 독일 음악제인 무직페스트 베를린에서 축제 마지막 날 공연을 맡기로 했다. 지휘자인 홍석원 부산시향 예술감독은 평소 부산시향의 매력을 “살아 있는 소리”라고 강조해왔다. 이날 공연에선 피아니스트인 폴 루이스 협연으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을 선사했다.
연주에 앞서 콘서트홀에 들어가자마자 여타 공연장과는 다른 부분이 단번에 눈에 들어왔다. 조명이었다. 일반적인 공연장은 은은한 노란빛이 살짝 섞인 주광색 조명을 쓴다. 객석은 좌석번호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만 조명을 켠다. 스포트라이트는 무대의 몫이다. 부산콘서트홀은 무대와 객석을 구분하지 않고 아이보리색 조명을 환하게 켰다. 홍 감독과 루이스가 나란히 무대에 올라 연주를 시작하자 객석 조명이 어두워졌지만 여전히 다른 공연장보다는 밝았다. 밝은 분위기는 무대와 객석의 거리감을 좁히는 효과를 냈다.
지난 10일 부산콘서트홀에서 공연한 홍석원 부산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왼쪽부터)과 피아니스트 폴 루이스가 손을 맞잡은 채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사진출처. 이주현 기자
협연자로 나선 루이스는 지난달 타계한 알프레드 브렌델의 제자로 널리 알려진 1972년 영국 태생 피아니스트다.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2022년부터 매년 독주회를 열어 한국 관객들에게도 친숙하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은 피아노가 처음부터 멜로디를 이끌어가는 게 특색이다. 1악장 독주를 시작한 루이스는 강약을 조절해가며 소리를 다듬어갔다. 또렷하고 분명한 소리를 낸다는 점에선 도자기를 빚는 도예보다는 가구를 만드는 목공 같았다. 루이스는 건반을 누르기에 앞서 찡그리거나 그윽한 표정을 지으며 앞으로의 연주 방향성을 관객에게 미리 알려줬다.
소리의 울림은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았다. 직접음과 벽에 부딪쳐 돌아오는 간접음이 비슷한 층위에서 들렸다. 피아노 소리가 약간 건조하게 들리기도 했지만 악단의 묵직하고 부드러운 소리가 빈 공간을 촉촉하게 채웠다. 전반적인 음색은 브렌델이 빈 심포니와 만들었던 2012년 녹음본처럼 유려하기보다는 짐머만이 베를린 필하모닉과 선보였던 2021년 녹음본처럼 명징한 쪽에 가까웠다. 루이스는 슈베르트의 다단조 알레그레토를 앙코르로 선보이는 것으로 1부 공연을 마쳤다. 지난 5일 국립심포니와의 협연에서 그가 브렌델을 추모하는 의미를 담아 선보였던 곡이였다. 무대에서 떠날 땐 환하게 웃으며 관객들에게 손을 들어보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부산콘서트홀 야경. / 사진출처. 이주현 기자
2부 공연은 협연 없이 브람스 교향곡 2번을 들려주는 무대였다. 성부 간 호흡이 한몸처럼 잘 맞아떨어지거나 작은 소리를 세밀하게 살리는 경지는 아니었지만 부산시향만의 음색이 확실했다. 통통 튀는 소리가 밝은 조명과 잘 어울렸다. 마지막 앙코르 무대는 관객들의 흥을 끌어올렸던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5번이었다. 홍 감독은 소리를 죽였다가 빠르게 키우는 식으로 관객들의 박수를 유도했다. 열대야를 잊게 할 정도로 쾌활한 공연이었다. 공연이 끝난 뒤 부산시민공원의 숲길에선 연주를 만끽한 관객들이 저마다 감상평을 내놓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