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회 힉엣눙크! 뮤직 페스티벌' 기자간담회
베르베르 출간 앞둔 신작 <키메라의 땅> 활용
작곡가 김택수 신작 <키메라 모음곡> 세계 초연
서울·광주·세종 등 한국 돌며 관객 만난다
“울버린이나 스파이더맨은 원래 몸에 무언가가 붙은 거잖아요. 제가 생각한 혼종은 달라요. 인간에게 날개가 새로 붙는 게 아니라 박쥐처럼 팔이 날개가 되는 거죠. 대신 다리는 더 발달하겠죠.”
프랑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1일 열린 '제8회 힉엣눙크! 뮤직페스티벌'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의 신작 <키메라의 땅>을 소개하고 있다. / 사진출처. 기자간담회 영상 캡처.
프랑스의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제8회 힉엣눙크! 뮤직 페스티벌’을 앞두고 지난 1일 열린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라틴어 ‘여기 그리고 지금’ 이라는 뜻을 지닌 힉엣눙크는 국내 최정상 실내악단으로 꼽히는 세종솔로이스츠가 동시대 음악으로 꾸린 음악제다. 공연 비수기인 여름마다 열려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의 갈증을 매년 달래주고 있다. 올해 힉엣눙크는 베르베르의 신작 소설을 주제로 한 곡을 세계 최초로 선보인다.
10년 뒤 키메라 인간이 만들 사회는
이번 힉엣눙크는 다음 달 22일부터 9월 5일까지 열린다. 행사의 백미는 다음달 27일 예술의전당에서 선보일 <키메라 모음곡> 공연이다. 베르베르가 올 여름 출간할 소설인 <키메라의 땅>을 읽고나서 작곡가 김택수가 곡을 썼다. 키메라는 여러 동물의 특성이 섞인 혼종을 뜻한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상상 속 동물로 여겨졌지만 최근 인간 장기를 대체할 수 있는 돼지 장기를 만들어내는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키메라 연구가 주목받고 있다.
<키메라의 땅>은 베르베르가 지금 시점에서 10년 뒤를 가정하고 쓴 이야기다. 허무맹랑한 공상과학(SF) 소설을 쓰기보단 과학적으로 접근 가능한 혼종을 다루려 했다. 소설엔 박쥐의 유전자가 섞여 하늘을 나는 사람들, 두더지 DNA와 섞인 사람들, 돌고래 DNA와 섞인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베르베르는 “이미 돼지의 DNA가 인간 장기 이식용으로 쓰이고 있다”며 “배트맨처럼 단일 개체가 아니라 여러 혼종들이 사는 커뮤니티를 생각해봤다”고 말했다. 이어 “소설에선 저마다의 혼종이 공동체를 꾸려 살면서 나름의 식문화와 공간구성을 갖추고 있다”고 덧붙였다.
1일 열린 '제8회 힉엣눙크! 뮤직페스티벌' 온라인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프랑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 사진출처. 기자간담회 영상 캡처.
소설 속 혼종 인간들은 여러 동물의 특성을 띠고 있다. 박쥐와 섞인 인간들은 하늘을 날 수 있을 뿐 아니라 초음파로 자기 위치를 가늠할 수 있다. 돌고래와 섞인 인류는 오래 잠수할 수 있다. 두더지 인간은 개미의 지하굴처럼 거대한 지하 세계를 일궈낼 정도로 땅파는 능력이 좋지만 시력이 나쁘다. 베르베르는 “무언가가 발달하면 뭔가가 뒤떨어지는 자연의 규칙을 따랐다”고 강조했다. 소설을 쓴 이유에 대해 그는 “폭력의 주기, 두려움의 주기를 반복하지 않는 신인류를 만들어내고 싶었다”며 “겉모습의 형태만 바꾸는 걸론 충분하지 않고 우리의 의식을 바꿔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베르베르, 독창자로 공연 참여
소설을 바탕에 두고 작곡된 <키메라 모음곡>은 8개 곡 구성이다. 4개 곡은 각각 다른 키메라들을 다룬다. 이들 곡 뒤엔 베르베르가 자신의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내레이션을 별개의 악장 형태로 들려준다. 기악곡 4개, 베르베르의 독창곡 4개가 맞물린 구성이다. 이 곡의 미완성본만 들어봤다는 베르베르는 “음악이든 책이든 사진이든 제가 중요하게 여기는 건 이야기”라며 “김택수 작곡가의 작품에서 기승전결의 줄거리가 주는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번 곡에선 연주자들의 활약도 두드러질 예정이다. 물에 사는 혼종에 대한 이야기를 음악으로 표현하는 일은 기타리스트 드니 성호가 맡는다. 하늘을 나는 혼종을 다룰 땐 플루티스트 최나경이 공기를 표현한다. 땅 속 세계를 그리는 일은 세종솔로이스츠 바이올린의 몫이다. 세 혼종이 섞인 샐러맨더(불을 뿜는 용)를 묘사할 땐 모든 연주자가 소리를 빚는다. 강경원 세종솔로이스츠 총감독은 “스토리가 확실한 음악”이라며 “형식은 현대적이지만 바로크 스타일에 기반한 곡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플루티스트 최나경. / 사진제공. 세종솔로이스츠 ⓒHyemi Kim.
클래식 음악과 공연을 결합하게 된 건 기타리스트인 드니 성호의 도움이 컸다. 부산에서 태어나 생후 9월때 벨기에로 입양된 그는 10여년전 한국에서 베르베르를 만난 뒤로 그와 인연을 이어왔다. 세종솔로이스츠에 베르베르를 소개해 준 그는 강 감독과 의기투합해 소설과 클래식 음악을 연결시키겠다는 아이디어를 발전시켰다. 드니 성호는 “재료(소설)가 좋으니 좋은 식사(음악)가 나왔다”며 “강 감독님께서 관객을 소비자가 아니라 음악을 즐기는 똑똑한 관객으로 바라보시는 점이 좋았다”고 말했다.
베르베르가 소설 쓰며 들은 음악은
베르베르에게도 이번 클래식 음악 공연이 각별하다. 그는 11살 때 비발디의 피콜로 협주곡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아 피콜로를 배우게 됐다고 한다. 소설을 쓸 때도 클래식 음악을 듣는다고. 그는 “락이나 팝도 좋아하지만 가사가 없고 폭력적이지 않은 클래식 음악이 글을 쓸 땐 더 좋다”며 “소설 <타나트노트>를 썼을 땐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 전주곡’을 즐겨 들었다”고 말했다. 이번 소설을 쓸 땐 바흐의 아리아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주로 들었단다.
“문학엔 언어장벽이 있고 번역을 통해서 변형이 생기기 마련이지만 음악은 보편적이고 누구에게나 똑같은 언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책을 읽을 때도 베르베르는 플레이리스트를 꾸려 음악을 듣는다고. “카페에선 헤드폰으로 음악을 들어요. 그럼 공간과 분리되면서 음악 속에 빠진 기분이 들죠. 이럴 땐 주로 영화 음악을 많이 듣는데요. 김택수 작곡가의 작품을 들으면서도 마치 하나의 장면에 몰입하게 해주는 영화음악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작곡가 김택수. / 사진제공. 세종솔로이스츠 ⓒ Estro Studio, Haksoo Kim.
이번 공연에서 내레이션을 들려줄 자신의 역할에 베르베르는 “모닥불 옆에서 말하는 이야기꾼”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글을 쓴다는 건 이야기의 연장선에 있는 만큼 제 직업도 이야기꾼”이라며 “그간 글을 쓰면서 독자들의 반응을 바로 볼 수 없는 게 아쉬웠는데 이번 공연을 통해 바로 그 반응을 볼 수 있게 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과 달리 프랑스에선 작가들의 낭독회가 활발하지 않은데요. 전 이런 기회가 더 많아졌으면 합니다. 우리의 목소리로 감동을 전할 수 있고, 게다가 억양과 어조로 많은 느낌을 바꿀 수 있잖아요.”
<키메라 모음곡> 공연은 다음 달 24일 광주, 29일 세종에서도 열린다. 모처럼 지방에서도 베르베르를 만날 수 있는 기회다. 그는 “서울에만 있지 않고 다른 곳들에 가는 아이디어가 좋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11살에 플루트 협주곡을 처음 들었을 때 예술작품이 주는 강렬한 감동을 온몸으로 느끼는 ‘스탕달 신드롬’을 경험했다”는 베르베르는 “공연에 오시는 관객분들도 김택수 작곡가의 음악을 들을 때 스탈린 신드롬을 경험했으면 한다”며 끝을 맺었다.
프랑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 사진제공. 세종솔로이스츠.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