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김애란의 시대가 있었다. 2010년대 전후, 문청들에게 김애란 소설은 습작 교본이자 전공 서적이었다. 김영하가 이야기를, 김중혁이 픽션을, 편혜영이 묘사를 한 차원 더 높은 경지로 열어젖혔다면, 김애란은 당대의 ‘문학정신’이었다. 미래에 대한 청년들의 고뇌와 불안한 생활상을 적확한 표현으로 그려낸 그의 소설들은 2030 세대의 마음을 관통했다. 그 뜨거운 공감과 울림, 젊은 작가의 표상과도 같았던 그가 이제 등단 20년을 넘어 한층 깊어진 눈매를 하고 우리 곁에 돌아왔다. 지난 6월 20일 8년 만에 펴낸 신작 소설집 <안녕이라 그랬어>를 통해서다.
전작들의 세계가 갑갑한 현실에 조심스레 가닿는 능청과 딴청, 환상의 위로였다면, 이번에는 일상을 포위하는 공기가 유달리 서늘해졌다. 낯선 공간,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불편한 사회적 감정을 잡아내는 노련한 문장과 묘파의 힘은 더 세졌다. 유연하게, 그리고 단단하게 성장한 김애란 문학의 변천사를 들여다보자.
김애란 작가 / 사진. ⓒ이승재“안녕이란 말, 참 예쁘고 서글프더라”
김애란의 이번 신작 <안녕이라 그랬어>는 2022 오영수·김승옥 문학상 수상작 <좋은 이웃>, <홈 파티> 등 총 7편의 단편소설을 담았다. 출간 직후 소설·종합 부문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등 독자들의 반향이 이어지고 있다. 한 독자는 “문체는 더 정교하고 섬세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우리 사회의 세밀한 부분을 지독하게 후벼파고 있었다”고 평을 남겼다. 해설을 쓴 평론가 신형철도 김애란을 “오랫동안 사회학자”였던 작가라고 규정한다. 실제 7편 개개의 소재나 작중 상황에는 차이가 있지만, 내면적 고뇌를 넘어 생활의 각박함이 공통된 화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 소외나 관계 단절은 경제적 어려움과 긴밀하게 연결되고, 거칠게는 계층 문제까지 연상시킨다.
표제작 <안녕이라 그랬어>는 엄마를 간병하기 위해 사랑은 물론 생활까지 포기했던 주인공이 서서히 고립되는 상황을 그린다. 돈도 잃고 마음도 피폐해진 주인공은 무용해 보이는 원어민 화상영어 배우기로 소일하며, 한 가닥 경제적 희망인 시골집 매매를 기대하지만 돌파구는 요원하기만 하다. 그 가운데 옛 애인과 들었던 팝송의 한 대목 ‘암 영(I'm young)’을 ‘안녕’으로 잘못 알아들은 일화를 떠올리며, 안녕하지 못한 현실을 곱씹는다.
8년 만에 신작 소설집 <안녕이라 그랬어>로 돌아온 김애란은 더욱 서늘해진 현실 인식과 명료한 문학적 시선으로, 공간과 관계에 얽힌 생의 이면과 비애를 묘파해나간다. / 사진출처. 문학동네
“헌수는 내게 두서없는 말을 늘어놓다 엉뚱하게도 우리가 ‘러브 허츠’를 들은 날 자신의 행동에 대해 사과했다. ‘만약 지금 너를 다시 만난다면 네가 틀렸다고, 이건 안녕이 아니라 암 영이라고 고쳐주는 대신 그래, 가만 들어보니 그렇게도 들리는 것 같다고, 콘크리트 보도에 핀 민들레 마냥 팝송 안에 작게 박힌 한국어, 단순하고 오래된 안녕이란 말이 참 예쁘고 서글프다 해줄 텐데’라며 작게 훌쩍였다.” - 김애란 <안녕이라 그랬어> 중
김애란은 지난 6월 27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신간의 중심 키워드 ‘안녕’과 관련, “과거에는 선물처럼 좋은 사건이 생기는 날이 좋은 날이라 생각했지만 요새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이 좋은 날, 안녕한 날로 느껴진다”며 “혹여 어려운 일이 생기더라도 잘 넘길 수 있는 상태면 안녕한 것 같다. 이왕이면 나 혼자 안녕한 것보다 다 함께 안녕하기를 바란다”고 술회한 바 있다.
김애란은 주로 거대한 도시에서 혼자 살아가는 청년 세대와 여성 직업인의 고독과 결핍을 재기 있는 문체로 핍진하게 그려낸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배우, 자취생, 학원강사 등 김애란 문학의 페르소나들에게 삶이란 한 편의 피에로 연극과도 같다. 먹고살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원래의 표정을 감추고 역할놀이를 하다 지쳐 단칸방과 옥탑방으로 귀소하는 쳇바퀴 인생이다. 인물들은 나만의 공간에서 작은 위로와 안도감을 느끼지만, 한편으론 끊임없이 타인의 온기를 그리워한다. 그래서 연인, 친구, 동료와 관계를 맺지만 서로 교감하거나 끝내 의지하는 사이로 발전하지 못하고 헤어지기에 이른다. 특히 ‘침이 고인다’에서 동거하던 후배의 생리혈이 침대에 묻자 참다못한 주인공이 결별을 선언하는 대목은, ‘혼자 있으면 외롭고 같이 있으면 괴로운’ 현대인의 인간관계 딜레마(?)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윤지관 문학평론가는 KBS 기획 ‘우리 시대의 소설’에서 김애란의 문학세계에 대해 “본인도 젊은 세대의 어려운 현실을 경험하면서 작품을 썼기 때문에 공감대가 넓었다”며 “삶의 애환과 아이러니를 유머스럽게 집어내는 역량을 갖춘 작가, 2000년대 우리 삶의 풍속화를 그려낸 작가다”라고 평했다.
간명한 문장과 정교한 서사를 통해 ‘단편의 미학’을 구사하는 김애란의 대표 소설집들. 왼쪽부터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 <바깥은 여름> / 사진출처. 창비/문학과 지성사/문학동네
“김애란의 청춘들이 사용하는 전략은 공동체에의 합류냐 단독자로서의 길을 가느냐의 양자택일이 아니라 기존 공동체의 존재 형태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균열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들은 공동체를 정면으로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거나, 공동체의 질성을 변화시킨다. 새로운 공동체 형성의 모색은 언제나 성공적인 것은 아니어서, 청춘 주체들은 종종 타자와 만나는 과정에서 장애에 부딪쳐 걸려 넘어진다. 그 과정에서 김애란의 청춘들은 ‘어떻게 타자와 만나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의 끈을 놓지 않으며, 때로는 결핍된 세계보다 한 걸음 먼저 성숙한 자로서 연민의 정동으로 세계를 끌어안는다.” - 오윤주, ‘김애란 소설에 드러난 청춘 모티프의 21세기적 변주’, <한국문학이론과 비평 제83집>, 2019
김애란 문학의 특징은 ‘공간의 사회학’으로 집약된다. <안녕이라 그랬어>의 작은 방과 시골집, <홈 파티>에서는 속물들이 모이는 고급 아파트, <좋은 이웃> 속 정들었지만 이사해야 하는 전셋집 등에서 인물들은 저마다 어려운 현실 여건 때문에 ‘안녕하지 못하다.’ 등단 초기 대표작 <나는 편의점에 간다>에서는 익명성과 소통 부재의 공간으로서 편의점이 등장한다. 사회적 은신도, 인간적 교감도 완벽히 가능하지 않은 편의점은 자취생 주인공에게 불안한 소비공간이다.
그의 소설 속에서 도시의 생활공간은 인생의 먼 항로 가운데 스쳐 지나가는 정거장이자 지친 심신을 잠시 의탁하는 여관 같은 곳으로 그려진다. 작은 방이지만 마음 놓고 휴식할 수 있는 사적인 공간이라는 인식, 그 이면에는 이 방마저도 온전히 소유할 수 없고 언젠가 떠나야 한다는 불안이 잠재하고 있다. 우리네 현대인의 정처 없는 일상, 뿌리 내리지 못하는 삶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김애란은 도시의 풍경과 도시인의 얼굴을 씁쓸하게 담아내면서도 위트를 잃지 않는다. 가독성 높은 간명한 문체, 무심한 듯한 필치로 서사의 구석구석에 농담의 장치들을 매복시켜 놓는다. 김애란의 농담은 다소 무거운 소설의 분위기를 적절한 타이밍에 환기시키고, 침울해지려는 독자들의 기분에 산뜻한 긴장을 부여한다. 인생은 실전이라는 중압감, 때로는 다 때려치우고 싶다는 욕망, 그 사이에서 낭만과 절망의 외줄타기를 시현하는 김애란의 소설들. 그래서 그의 문학은 왠지 모르게 ‘아껴 읽고 싶은’ 묘미가 있다.
김애란은 도시의 풍경과 도시인의 얼굴을 씁쓸하게 담아내면서도 위트를 잃지 않는다. 김애란의 농담은 다소 무거운 소설의 분위기를 적절한 타이밍에 환기시키고, 침울해지려는 독자들의 기분에 산뜻한 긴장을 부여한다. / 사진출처. 2023년 8월 27일 자 <한국경제신문> 김애란 작가 기사 캡처, 창비
“김애란 소설의 서사 공간은 현대사회의 단자화되고, 물화된 존재의 정체성을 대변해 준다. 청년실업 문제, 가족관계의 약화, 인간소외와 인간의 도구적 존재로서 전락 등 현대사회의 심각한 문제는 반지하 셋방, 옥탑방, 원룸, 고시원, 합숙소, 편의점과 같은 인물의 거주공간과 생활공간, 경험공간 등을 통해 구체화되고 있다. 그러나 김애란 소설 속 인물은 개인의 한계를 결핍으로 인식하고 주저앉는 대신 자기만의 방식으로 척박한 현실을 마주하고 적응하고 있다는 점에서 세상과 소통의 여지를 발견할 수 있다.” - 장미영, ‘청년의 고립된 자아와 디스토피아적 상상력: 김애란 소설을 중심으로’, <여성문학연구> 제32호, 2014
19살 상경해 문단 섭렵…“초고 30%는 버린다”
김애란은 1980년 인천에서 태어나 서산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이발업을, 어머니는 손칼국수 장사를 했다. 그의 인생관과 작가정신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건 어머니다. 김애란의 어머니는 시댁 살림에 의지하기보다 식당 운영으로 독립생계를 가꿔나가며 한 가족의 생활을 일궈냈다. 세 딸의 학비·방세·생활비를 지원했고 집까지 마련할 수 있었다. 김애란은 지난 2017년 <한국일보>에 기고한 산문에서 “(어머니의 칼국수집) ‘맛나당’은 내 어머니가 경제적 주체이자 삶의 주체로서 자의식을 갖고 꾸린 적극적인 공간이었다”며 “어머니는 가방끈이 짧았지만 상대에게 의무와 예의를 다하다가 누군가 자기 삶을 오려 가려 할 때 단호히 거절할 줄 알았고, 내가 가진 여성성에 대한 긍정적인 상이랄까 태도를 유산으로 남겨주셨다”고 회고했다.
김애란은 2003년 데뷔 이후 ‘나는 편의점에 간다’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 등 발표하는 단편마다 “21세기 문학의 징후”라는 평단의 주목을 받으며 신예 작가로 문명을 떨친다. (2017년 당시 김애란 작가 모습) / 사진출처.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원 유튜브 캡처
어머니는 사범대학 진학을 권유했지만, 김애란은 예술학교 시험을 봤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극작과에 합격해 19살 때 서울로 상경했다. 대학 4학년 때인 2003년 단편 ‘노크하지 않는 집’으로 <창작과비평>이 주관하는 제1회 대산대학문학상을 받으며 문단에 나왔다. 서산시 대산읍 대산면 출신 문청의 작가적 운명(?) 같은 데뷔였다.
김애란은 이후 <나는 편의점에 간다>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 등 발표하는 단편마다 “21세기 문학의 징후”라는 평단의 주목을 받으며 신예 작가로 문명을 떨친다. 등단 2년 만인 2005년, 작품집도 아직 출간하지 않은 25살 이른 나이에 <한국일보> 문학상을 거머쥔 이래 이효석문학상, 신동엽창작상, 김유정문학상 등을 휩쓸게 된다. 2011년 조로증을 앓는 아이의 삶과 가족 이야기를 다룬 장편 <두근두근 내 인생>은 3년 후 강동원·송혜교 주연의 동명 영화로 상영되기도 했다. 2013년에는 당시 기준 최연소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스타 작가의 자리를 공고히 했다.
김애란은 지금까지 이번 신작을 포함해 단편집 5권, 장편소설 2권, 산문집 1권을 펴냈다. 20년이 넘는 작가 경력에 비하면 다작은 아닌 편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작품 하나를 완성하고 책 한 권을 출간하는 데 유독 공을 많이 들인다고 한다. 소설 퇴고를 하면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초고의 30%는 미련 없이 버리는 식이다. 무게 잡는 분위기도 빼고, 공부가 부족한 부분도 뺀다. 책으로 엮을 때는 작품마다 ‘리타이핑’까지 할 정도로 글의 실오라기 하나 허투루 흘리지 않는다. 처음보다 많이 달라진 소설을 읽으면 스스로 만족스럽다는 게 그의 집필 철학이다.
“글쓰기는 지난한 노동 과정과 비슷해요. 반복과 반복이 필요합니다. 영감을 받아 아름다움과 특정한 리듬, 유려한 표현이 나올 수 있지만 그런 경우는 드뭅니다. 대부분의 경우 지난한 노동과 반복의 과정에서 그런 것들이 나옵니다. (…) 내가 겪는 어려움은 성인이라면 누구나 일하면서 겪는 어려움과 같은 것입니다. 그들의 무거움보다 더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어려움입니다. 작업할 때 엄살 부리지 말자고 생각합니다.” - 2023년 11월 3일 자 <연합뉴스> 인터뷰 중
관조하는 용기, 무례한 시대를 건너는 법
이번 김애란 신작의 백미는 소설집 내 첫 단편, 계층 문제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홈 파티>에서 도드라진다. 배역 하나 얻기 어려운 코로나 시기, 무명 배우 주인공은 동료의 초대로 한 고급 아파트 사교 파티에 초대받는다. 교양 있는 척 함부로 떠드는 군상들의 대화에도, 인내하고 흘려들었던 그는 마침내 사양했던 와인 한 모금 취기에 힘입어 소심한 일갈을 날린다. 고아원 출신 아이들의 자립정착금 소비 패턴을 아전인수격으로 매도하는 그들의 교만함만큼은 참을 수 없어, 아이들의 서글픈 처지를 공감하며 입장 대변에 나선 것. 주인공은 초대받은 손님으로서 파티를 망칠 수 없기에 최대한 저들의 생각을 이해해 가며 일종의 ‘연극’을 했지만, 용납할 수 없는 최후의 순간이 있었고 그때 그는 작지만 강한 용기를 냈다. 그것은 우리가 쉽게 잊고 살았던 ‘자존’이라는 감정이자, ‘인간 존엄’의 양심인 것이었다.
“살면서 어떤 긴장은 이겨내야만 하고, 어떤 연기는 꼭 끝까지 무사히 마친 뒤 무대에서 내려와야 한다는 걸, 그건 세상의 인정이나 사랑과 상관없는, 가식이나 예의와도 무관한, 말 그대로 실존의 영역임을 알았다. 처음 여기 왔을 때만 해도 임원 연기를 위해 최대한 저 사람들처럼 생각하자, 저 사람들 입장에서 느끼고 즐기자 다짐했는데,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안 되는 게 있어서였다.” - 김애란 <홈 파티> 중
분쟁이 아닌 관조로써 불안과 슬픔을 직면하고 응시할 수 있는 용기. 김애란은 신간 <안녕이라 그랬어>를 통해 우리가 ‘안녕할 수 있는 용기’를 독자의 마음속에 각인한다. / 사진출처. 김애란 신간 관련 문학동네 출판사 홍보물 및 유튜브 캡처
‘이건 참아내야만 하는 현실의 과제, 세상을 살아가려면 적당히 타협하고 때로는 기어가는 척도 해야 한다’는 꽤나 어른스러운 자기 최면에도 불구하고, 누구에게나 ‘그래서는 결코 안 되는 것’이 있었다. 나만의 안녕이 아닌 우리 모두의 안녕을 위해, 김애란은 ‘안녕할 수 있는 용기’를 독자의 마음속에 각인한다. 분쟁이 아닌 관조로써 불안과 슬픔을 직면하고 응시할 수 있는 용기. 생각은 자유롭게 열어놓되 자기 목소리는 잃지 않는 평정. 어쩌면 무례한 시대를 견디고 건너는 힘은, 도피하지 않고 관조하는 여유에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김애란은 최근 <Attention Book> 신작 출간 기념 인터뷰에서 “중년에 접어들면 또래가 저와 같은 전투병들, 부상병들처럼 보인다”며 “인생의 긴 시간에 영원한 승리도 없고, 그저 분투하는 사람들이 보이면서 누군가의 생애 주기를 보는 시선이 깊고 넓어지는 것 같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모든 사람의 화양연화가 각자 시기도 다르고 리듬도 다르고 심지어 누군가는 그걸 경험하지 못하고 흘러가 버리는 게 인생이라는 걸 알게 되니까, 누군가 좋은 시절을 맞았을 때 그게 영원하지 않다는 걸 알아서 질투도 덜 나고 반대로 누군가 어려운 시절을 겪을 때 그 시간이 오래가지 않기를 바라게 되더라고요. 저 사람의 인생에서 또 좋은 순간이 올 거라는 믿음도 갖게 됐고요. 잠깐의 스포트라이트가 아니라 숯처럼 오래가는 빛, 그건 결국 바깥의 권위가 아니라 내 옆의 사람이 줄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그 빛이 얼마나 힘이 센지도요.” - 김애란 <Attention Book> 인터뷰 중
대도시의 고독한 군중 속 결핍된 자아의 뒤척이던 밤잠이 지나고, '바깥은 여름'이나 나의 일상은 차가운 스노우볼과도 같았던 시절도 흘러갔다. 냉소와 해학 그 어딘가에서 톡톡 속삭이던 신예 작가는, 어느덧 조곤조곤 소신을 논하는 지긋한 중진으로 거듭났다. 김애란은 이제 불안의 잠재성 대신 안녕의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설익은 자기 고백이나 때아닌 억지 희망이 아닌, 현실을 진지하게 살아갈 용기를 준다. 누구에게나 안녕할 수 있는 용기는 있다고. 세상만사와 인간군상을 차분히 관조하면서 일희일비하지 않는 힘, 나 자신을 믿고 동요하지 않고 나아가는 힘. 김애란이 펼쳐내는 불안과 안녕의 변주곡이 아름답게 들리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