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어로 자장가는 비겐리트(Wiegenlied)라고 불린다. wiegen 동사는 ‘이리저리 흔들다’의 뜻. 즉 아기를 요람에 눕혀놓고 흔드는 행위를 말한다. 요람이라는 명사 Wiege(비게)도 바로 여기서 유래했다.
신중하고 묵직한 이미지의 브람스. 그러나 그의 자장가만큼은 보드랍고 다사롭다. "잘 자라 내 아기 내 귀여운 아기, 아름다운 장미꽃 너를 둘러 피었네". 누구나 한 번쯤 부르고 들어봤으리라. 작품번호 49-4. 1868년 35세 때 작품이다. 그런데 사실은 두 개의 자장가가 더 있다. 하나는 이른바 종교적 자장가(Geistliches Wiegenlied, Op.91-2)로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재우며 부르는 장면을 가정해 만든 곡. 피아노와 비올라(첼로) 반주에 알토가 노래하는 형식이다. 나머지 하나는 바로 잔트맨헨(Sandmännchen)이란 이름의 사랑스러운 자장가다. 잔트맨헨은 직역하면 모래 아저씨(Sandman)겠으나 보통은 ‘잠의 요정’으로 번역된다. 여기엔 흥미로운 이야기가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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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의 요정 인형. / 필자 제공
독일을 비롯한 북유럽 전설에 따르면 아이를 재우기 위해서 잠의 요정이 필요하다. 그가 모래를 아이 눈에 뿌려 눈을 비비게 하는 게 신호인 것. 안데르센의 동화 <잠의 요정>에도 이 스토리가 나온다.
"꽃들이 달빛 받으며 자고 있어요/줄기로 지탱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자요/꽃나무는 꿈꾸듯이 살랑살랑 흔들리고/자장자장 속삭이며 자장자장 노래 불러요/자거라, 자거라, 자거라 내 작은 아가야" (1절) "작은 새들은 햇살 아래서 참 예쁘게 노래하죠/이제는 다들 조그만 둥지로 돌아가 쉬렴/밀밭에는 귀뚜라미 혼자서 조용히 소리를 내요/자거라, 자거라. 자거라 내 작은 아가야" (2절, 2절은 보통 생략되는 경우가 많다) "모래 요정이 살금살금 다가와 창문을 들여다봐요/혹시 아직도 안 자는 아이가 있는지/잠자고 있지 않은 아이가 보이면 눈에다 살짝 모래를 뿌려요/자거라, 자거라, 자거라 내 작은 아가야" (3절) "모래 요정은 이제 방을 떠났어요/우리 아가는 곱게 잠들었답니다/그 눈망울은 꼭꼭 닫혀 꿈나라로 갔지요/내일이면 다시 반짝이며 나를 반겨줄 거예요/자거라, 자거라, 자거라, 내 작은 아가야". (4절)
브람스는 민요풍으로 구전되던 노래를 가다듬어 포근한 느낌의 자장가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소프라노 엘리자베트 슈바르츠코프가 노래하는 '잠의 요정'
엘리자베트 슈바르츠코프(Elisabeth Schwarzkopf, 1915~2006)야말로 이런 유의 노래에 맞춤한 소프라노. 빼어난 금발 미인에 격과 멋을 두루 갖췄다. 오늘날 폴란드 땅인 야로친 태생으로 당시엔 프로이센 왕국의 동쪽 땅이었다. 1946년 빈. 그녀에겐 퀀텀 점프의 때와 장소였는데 바로 카라얀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당시 31세로 가능성이 무한했던 이 소프라노에게 눈 밝고 야심에 찬 EMI 음반사의 프로듀서 월터 레그(Walter Legge, 1906~1979)를 소개한 것. "이보게 월터. 저기 짧은 금발 머리 보이나? 장래가 촉망되는 스타 감이야. 만나 보게나. 독일-오스트리아에선 최고 같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장미의 기사'에서 마르살린을 맡아 연기하고 있는 엘리자베트 슈바르츠코프.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월터 레그와 카라얀. / 필자 제공
당시 레그는 담대하게도 영국 최고 아티스트를 불러 모아 녹음을 전문으로 하는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를 창단하고 그 조련을 카라얀에게 부탁한 상태. 거장 부탁도 들어주고 오케스트라는 세(勢)를 얻었으며 슈바르츠코프는 미모와 실력으로 화답하기에 이른다. ‘원님 덕에 나발 분다’ 격일 터. 둘은 8년 협업 끝에 결혼했고 음악사에 보기 드문 잉꼬부부로 오래도록 명성이 자자했다. 슈바르츠코프는 레그의 사별 후 죽을 때까지 27년 동안 레그-슈바르츠코프(Legge-Schwarzkopf)로 남편의 성을 병기함으로써 그를 기렸다. 음반계의 아성 EMI의 대표 가수로 활약한 독일인으로서의 존재감을 뽐냈음을 물론이다. 모차르트⸱슈베르트⸱브람스⸱슈트라우스⸱말러 등 리트(독일가곡)에 강점을 보인 그녀는 칼라스를 제외하곤 독일어권 국가에서 역대 가장 유명한 소프라노라고 할 만하다.
레그의 유산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Philharmonia Orchestra)는 크고 작은 부침을 겪다가 이제 안정을 찾은 분위기다. 어언 80년 역사를 지탱해왔다. 에사-페카 살로넨,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 크리스토프 폰 도흐나니 등의 상임지휘자를 거쳐 지금은 1985년생 젊은 핀란드인 산투-마티아스 루발리가 수석지휘자다. 작곡가 진은숙도 이 악단에서 9년간 현대음악 부문 감독으로 활약한 바 있다.
엘리자베트 슈바르츠코프와 월터 레그 부부의 묘비석. /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강성곤 음악 칼럼니스트⸱전 KBS아나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