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갔던 제비는 돌아오는 법이다. 따뜻한 남쪽으로 겨울을 지내러 갔다가 봄이 되면 원래 있던 자리로 복귀한다. 일시적인 이탈의 회복이나 순환, 혹은 귀환의 비유(比喩)로도 쓰인다.
마그다(Magda)는 파리 사교계의 아름다운 여성. 사실은 코르티잔(Cortesan)이다. 상류층을 상대하는 정부(情婦)를 뜻한다. 람발도(Rambaldo)가 그녀를 후원하는 부유한 중년의 은행가다. 두 사람이 베푼 연회가 사건의 시작이었다. 시인(詩人)이자 람발도의 친구인 프루니에(Prunier)가 새로운 사랑에 빠졌다가 익숙한 일상으로 돌아오는 여인에 관한 노래를 부른다. 이때 람발도의 친구 아들인 미남 청년 루제로(Ruggero)가 들어오고 마그다는 첫눈에 반한다. 매력적인 클럽이라고 소문이 자자한 뷜리에(Bullier)로 일동은 장소를 옮기는데 여기서 마그다가 선포한다. 옛사랑을 닮은 루제로와 사랑에 빠졌다며 리비에라(Riviera, 풍광 좋은 지중해 연안)로 떠나겠노라고. 람발도의 분노와 허탈을 뒤로하고 말이다. 사랑의 커플은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마그다는 구속 없는 느슨한 이 관계가 너무 좋다. 그러나 순진한 루제로는 결혼을 생각했고, 급기야 보수적인 가족에게 허락을 구하고자 한다. 조건은 ‘품행이 방정하고 평판이 좋은 여성’. 잘못된 운명임을 직감한 마그다는 강남 갔던 제비처럼 파리로 향한다.
샌프란시스코 오페라단에서 공연한 푸치니 오페라 <제비> 포스터 / 출처. IMDb
푸치니 오페라 <제비(La Rondine)>의 줄거리다. 1막에 마치 꿈결 같은 아리아가 나온다. 프루니에가 대학생과의 순수한 사랑을 위해 왕의 청혼을 거절하는 여인에 관한 즉흥 노래를 하다 막히자 뒤를 이어받는 마그다의 아리아, ‘도레타의 꿈(Chi il bel sogno di Doretta)’이다. 도레타는 그러니까 마그다의 빙의(憑依)인 셈.
"누가 도레타의 아름다운 꿈을 상상할 수 있을까? 미스터리 같은 이야기는 어떤 끝맺음이 될까. 아! 어느 날 한 대학생이 그녀와 입맞춤을 했다네. 그것은 열정이었고 사랑이었네. 미친 듯한 행복이었지. 누가 그런 미묘한 애무를 할 수 있을까. 그렇게 불타는 듯한 키스는 다시 없으리라. 아, 나의 꿈이여! 아, 나의 삶이여! 돈 많다는 게 그렇게 대단한 것인가. 행복을 다시 꽃피우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닌가. 이런 사랑이야말로 황금빛 꿈일 터!"
이상과 현실 사이에 놓인 사랑 이야기. 비극도 희극도 아닌 형태의 오페라 <제비>. 전체적인 극 분위기는 섬세하고 감미로운 편이다. 그러나 뛰어난 작품이라기엔 무리가 있어 자주 상연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도레타의 꿈’만큼은 너무도 아름다워 많은 영화에 삽입되었다. 대표작은 아무래도 <전망 좋은 방>(1984)일 터. 주인공 조지가 루시에게 줄기차게 키스를 퍼붓는 장면에서 이 아리아가 흐른다.
[♪ 프랑스 소프라노 포스틴 드 모네가 부르는 푸치니 오페라 <제비> 중 마그다의 아리아 ‘도레타의 꿈’]
1917년 푸치니는 회갑을 앞둔 59세였다. 7년 남은 수명을 의식하기라도 한 것일까. 기존과는 다른 터치의 작품을 시도했다. 비엔나풍의 오페라와 오페레타 사이쯤 되는 형식을 취하되 분위기는 프랑스 샹송적 우아함에 섬세한 선율미를 지향했다. 여주인공의 비극적 죽음이라는 특유의 클리셰도 과감히 지우고 외려 성찰과 절제, 혜안을 견지하게끔 만들었다. 오페라 <제비>는 덧없고 조용한 감정선이 주조(主潮)를 이루면서 이상적 사랑의 추구와 현실적 이별을 대비시키고 있다.
1917년 59세의 푸치니 모습 / 필자 제공
‘도레타의 꿈’은 날아갈 듯한 고음의 곡선미를 잘 살려 불러야 제맛이 난다. 가늘고 매끈하고 상큼한 소리의 소프라노가 제격이다. 프랑스 프리마돈나 포스틴 드 모네(Faustine de Monès)가 기막히게 부른다. 프로필에 나이를 안 밝히고 있으나, 커리어로 미루어 보건대 대략 30대 중후반으로 추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