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그레이스와 로키 이야기

안녕? 나는 이곳, 행성 에리드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그레이스야. 내가 지구를 떠나온 뒤로 지구의 시간은 많이 흘렀고 나는 지구의 나이로 71살이 되었을 거야. 물론 에리드와 지구의 중력이 다르고 나는 시간 팽창 여행을 몇 번 했으니 그보다는 훨씬 젊은 육체를 가지고 있지만.
© unsplash
© unsplash
지구에서 16광년 떨어진 에리드에서 전혀 다른 종족과 살고 있는 내가 신기하게 보이겠지. 지구의 언어도 아닌 외계 행성의 언어를 어떻게 습득했는지도 궁금할 테고 생존 조건이 완전히 다른데 어떻게 생명을 유지하고 살고 있는지도 궁금할 거야.

이야기를 하자면 너무 길고 긴 이야기이니 간단하게 말해 줄게. 아주 짧게 핵심적인 내용만 말하면 이래. 지금 당신이 살고 있는 지구를 구한 것이 나와 내 친구 로키란 말야. 전에 태양이 이상하게 어두워지던 일을 기억하는지. 그렇게 태양이 급격히 어두워지면 지구의 생물들은 더이상 생존할 수 없었기에 전 세계적 비상이 걸렸지.

그리고 그 원인이 (우리가 이름을 붙이긴 했지만) 아스트로파지 때문인 것을 알아내고 어떻게 하면 태양을 살리고 지구를 구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연구하기 시작했어. 어쩌다보니 그 프로젝트의 중심에 내가 들어가게 되었는데 ... 아니야, 나는 그저 과학자이고 박사이고 중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였어. 무슨 대단한 연구소 직원이거나 우주적 프로젝트를 관장하는 사람이 아니었다구.

어느날 지구 살리기 프로젝트의 핵심 인물인 스트라트 (그는 오직 인류를 구하는 데 모든 관심과 노력을 쏟았지)가 예전에 썼던 내 논문을 발견하고 나를 찾아내서 이런저런 자문을 구하며 실험을 하게 만들더니 ... 아아 ... 내가 우주선에 타게 된 그 과정은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아. 이 부분은 생략할게.

그렇게 나는 지구와 인류를 살리기 위한 프로젝트의 일환이 되어 헤일메리호에 탑승했고 내가 깨어났을 때 동료 우주인 두 명은 이미 숨을 거두고 말았지. 처음에는 기억상실에 시달리고 멍청한 상태였지만 차츰 내가 우주선에 있는 이유와 우주로 날아와 있는 이유, 지구와 인류를 위해 해야 할 일을 떠올리게 되었어.

그리고 그곳에서 행성 에리드의 우주선과 만났던 거야. 우주선에는 나의 친구 로키가 (역시 그쪽 우주선 승무원도 예기치 못한 조건으로 모두 숨을 거두고 로키 혼자 남아 있었지) 있었어. 우리는 각자의 과학적 지식과 기술로 소통을 시작했고 서로의 행성과 인류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어.
© unsplash
© unsplash
가장 놀라운 것은 지구와 에리드가 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는 것이었지. 우리의 태양이 말도 안되게 작은 아스트로파지에 의해 점점 어두워지고 빛을 잃어가는 것처럼 에리드의 태양 또한 바로 그 아스트로파지 때문에 힘을 잃고 있었던 거야. 내가 지구를 구하기 위해 우주의 이 지점에 도착한 것처럼 로키 또한 에리드를 구하기 위해 우주의 이 지점에 도착했지.

우린 정말 많은 노력을 하고 시도를 하면서 가까워졌고 정밀 연구를 하고 실험을 하면서 아스트로파지를 없앨 방법을 찾아냈어. 그 순간은 아직도 잊을 수 없네. 우리는 서로의 행성을 구할 타우메바 군집과 배양기를 나눠 싣고 서로의 고향으로 향했지. 로키와 헤어지는 것이 얼마나 섭섭했는지. 하지만 우리는 각자의 고향 행성이 있으니까.

이 광활한 우주에서 서로 16광년 떨어졌을 뿐인 곳에 지적 생명체로 존재하고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곳에 도달한 나와 로키. 우리는 서로에게 의존했고 서로를 존중했고 서로 도왔고 서로를 아꼈지. 생각해 봐. 각자의 행성의 안위를 걸고 마주친 우리 둘을.

아쉬움을 뒤로 하고 우리의 우주선은 방향을 잡았지. 이제 지구로 돌아가는구나. 감개무량한 마음이 되었는데 갑자기 떠오른 사실이 나를 충격으로 몰아넣었지. 타우메바 배양기의 문제 말이야. 과학자인 나는 어찌저찌 그 혼란을 막아냈지만, 대단한 기술자이긴 하지만 로키의 경우는 다르지. 고민했어. 로키가 잘못되었으면 어쩌나 너무나 무서웠지. 로키가 잘못되는 건 그의 행성도 구할 수 없다는 것이었지. 생각 끝에 지구를 구할 모든 데이터와 배양기를 쏘아 보내고 나는 로키를 찾아 나섰어. 그렇게 극적으로 로키를 발견하고 함께 문제를 해결하고 에리드로 온 거야.

에리드인들은 내가 그곳에서 생존할 수 있도록 온갖 연구를 했고 방법을 찾아냈지. 그리고 지금 막 로키에게서 우리의, 지구의, 나의 태양의 밝기가 완전히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지. 우리가, 해낸 거야.

# 2. <E.T>의 이티와 엘리어트의 이야기

나와 동료들이 지구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환호했지. 다양하고 신기한 생명체의 가짓수가 엄청나게 많았거든. 지적 생명체가 있는 행성이라는 것 자체로 놀라운데 말이야. 내가 좀 흥분했었나 봐. 표본 채집을 마치고 얼른 우주선으로 돌아갔어야 했는데 이것저것 채취를 하다보니 하나만 더, 하나만 더 마음이 부풀어서 뒤처지게 된 거야. 내가 우주선을 향해 달려갔을 때는 이미 우주선은 문을 닫고 날아올랐고 낯선 행성에 동그마니 남겨진 나는 두려움에 떨었지.
영화 <E.T.> 스틸컷 / 출처. IMDb
영화 <E.T.> 스틸컷 / 출처. IMDb
그때였어. 엘리어트를 만난 것이. 엘리어트에게는 형과 꼬마 동생이 있었는데 삼남매는 나를 남들에게 들키지 않게 신경 쓰면서 돌봐 주었지. 나는 나의 동료들이 탄 우주선과 교신을 해야 했고 통신 장비를 만들어야 했기에 시간이 필요했지. 그러는 동안 나는 특별히 엘리어트와 친해졌어. 그 아이는 내가 그와 다르다고 이상하게 보지 않았고 나를 이해하려 노력했고 진심으로 소통하고 싶어했지. 그래서일까. 그와 나는 텔레파시로 서로 통하게 되었고 신체의 체력까지 공유하게 되었어.

하지만 지구의 모든 이들이 어디에서 왜 왔는지도 모르는 낯선 생명체를 환대하고 호의적으로 대할 수는 없지. 그건 어느 행성이나 마찬가지일 거야. 자기들은 아직 가지지 못한 우주선을 타고 왔으니 분명 지적 수준이 높을 테고 어디에서 얼마나 걸려 왔는지, 어떤 생태 환경에서 어떤 신체 구조를 가지고 있는지, 어떤 수단으로 의사소통이 이뤄지는지 아무 정보도 없는 대상은 공포감을 주기에 충분하니까.

하지만 그건 알아 둬. 우주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서로에 대해 무지하고 그렇기 때문에 서로를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걸 말이야. 그리고 설마 우주의 지적 생명체들이 모두 적대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이 강하겠어?
영화 <E.T.> 스틸컷 / 출처. IMDb
영화 <E.T.> 스틸컷 / 출처. IMDb
어쨌든 우리도 지구를 정복하거나 공격하러 온 것이 아니야. 우린 우리 행성과 다른 토양과 조건에서 이렇게 많은 생명체들이 아름답게 공존하고 있는 것이 신기했고 감격스러웠다구. 생각해 봐. 낯선 행성에 홀로 뚝 떨어진 내가 더 무서움을 느끼겠어? 지구인들 무리가 더 무서움을 느끼겠어?

지구에서 나는 오직 엘리어트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었어. 아직 어린 소년인 그에게 나의 생존과 마음과 몸을 의탁할 수밖에 없었던 거야. 그리고 그 소년은 나의 외로움과 두려움을 알아채고 나를 보호해 주었지. 내가 나의 행성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내가 외롭고 슬프지 않게 지켜 주었어.

나의 엘리어트. 지금 너는 너의 행성 지구에서 나의 행성을 바라보고 있을까? 너의 소년 시절 나와 함께했던 우정의 시간을 기억하고 있을까? 만약 내가 다시 지구로 돌아가 너와 만난다면 너를 알아볼 수 있을까?

아무래도 괜찮아. 나의 마음속에 엘리어트는 아직도 따스하게 남아 있으니까. 너의 환대와 친절, 우정은 영원하니까.
영화 <E.T.> 스틸컷 / 출처. IMDb
영화 <E.T.> 스틸컷 / 출처. IMDb
# 3. <엘리오>의 엘리오와 글로든의 이야기

내 이름은 엘리오. 나는 지구에서 살고 있지만 지구에는 내가 있을 곳이 없는 것 같아. 부모님도 안 계시고 바쁘고 중요한 일을 하는 올가 고모에게 짐만 되는 것 같고. 친구도 없고 늘 외롭고 슬플 뿐이야.

내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 외계인이 와서 나를 데려갔으면 좋겠어. 외계인은 분명히 있다고. 외계인들과 있으면 오히려 외롭지 않을 것 같아. 지구에는 내가 있을 곳이 없어. 나를 반기는 사람이 없다고.
애니메이션 <엘리오> 스틸컷 / 출처. 네이버 영화
애니메이션 <엘리오> 스틸컷 / 출처. 네이버 영화
어라? 정말 외계인이 나를 찾아 왔네. 우주 각지에서 모인 이 생명체들은 정말 매력적이야. 커뮤니버스의 이들이 나를 지구 대표라고 착각한 것은 마음에 걸리지만 뭐 어쩌겠어. 이곳에 오니 마음이 편안하고 즐거운걸.

잠깐만. 이름이 글로든이라고? 내 또래구나. 반가워. 어라, 아빠가 그 무서운 그라이곤이야? 너는 곧 네 갑옷에 들어가게 되는 게 싫구나. 하지만 너희 행성에서는 일정한 나이가 되면 갑옷을 입어야 하니.

외계 행성도 지구와 크게 다르지는 않네. 싫은 것도 있고 억지고 해야 하는 것도 있고 하기 싫지만 티낼 수 없기도 하고. 무엇보다 글로든, 너와 친구가 되고 우정을 느낄 수 있게 되어서 너무 좋아. 처음으로 가져보는 친구, 처음으로 느껴보는 친밀함. 고맙고 소중하다, 친구야.
애니메이션 <엘리오> 스틸컷 / 출처. 네이버 영화
애니메이션 <엘리오> 스틸컷 / 출처. 네이버 영화
야, 지금 좋은 생각이 났어. 나 대신 복제품을 고모에게 보낸 것처럼 글로든 너도 복제품에게 갑옷을 입게 하자. 그리고 우리 둘은 신나게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즐기며 사는 거야.

...

이제 알겠어. 나도 너도 사실은 외로운 존재가 아니었다는 걸. 나는 내가 고모의 길을 막는 짐 같다고 생각했는데 고모는 나를 진심으로 아끼고 있었어. 너의 아버지도 네가 위험해지니까 갑옷을 벗어 던지고 (이건 정말 있을 수 없고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잖아) 너를 끌어안고 고치를 만들었지. 정말 눈물이 날 뻔했어. 내가 고립되고 외롭고 쓸쓸하다고 느낀 건 나의 생각이었을 뿐, 실제로는 이렇게 따스한 배려 속에 있었다는 걸 알게 되고 얼마나 후회하고 반성했는지 몰라.

그리고 이걸 깨닫는 데는 글로든, 너의 우정의 힘이 커. 너와의 만남이 없었더라면 너와의 모험과 우정이 아니었다면 깨닫지 못했을 거야. 있는 그대로의 나로 보아주고 인정해주고 친구가 되어줘서 고마워.

신지혜 칼럼니스트•작가


[참고도서]
『프로젝트 헤일메리』, 앤디 위어, RHK

[참고영화]
<E.T.>, 스티븐 스필버그
<엘리오>, 매들린 샤라피안, 도미 시, 아드리안 몰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