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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은 엄격해야 할까, 융통성이 있어야 할까 [서평]
알고리즘, 패러다임, 법
로레인 대스턴 지음
홍성욱·황정하 옮김/까치
464쪽|2만3000원
로레인 대스턴 지음
홍성욱·황정하 옮김/까치
464쪽|2만3000원
규칙은 언제 생겨났을까. 왜 사람들은 이를 따르는 걸까. 저명한 과학사학자인 로레인 대스턴 막스 플랑크 과학사연구소 명예소장도 궁금했다. 그가 독일 북부의 해변에 갔을 때였다. 입구에 규칙이 적혀 있었고, 구역을 지정해 놓았다. 사람을 위한 곳, 개를 데리고 온 사람을 위한 곳, 수영복을 입지 않은 사람을 위한 곳, 비치 발리볼 같은 스포츠를 하고 싶은 사람을 위한 곳 등이었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이 해변의 규칙을 따르는 것에 놀랐고, 이후 규칙의 역사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알고리즘, 패러다임, 법>은 그 결과물이다. 우리가 당연하게만 생각했던 규칙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책이다.
규칙은 다른 사람을 따라 하는 데서 시작한다. 아이들은 예절 책을 공부해서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관찰하고 모방한다. 성인도 마찬가지다. 잘 모르는 외국의 식당에 갔을 때, 우리는 주변 사람을 관찰한다. 웨이터를 어떻게 부르는지, 주문은 어떻게 하는지, 음식은 어떤 방식으로 먹는지. 이를 ‘모델’로서의 규칙’이라고 한다.
수백 년 전 체스 규칙 책은 더 두꺼웠다. 비숍과 나이트가 움직이는 방법을 설명하지만, 예외 조항, 단서 조항 등이 여럿 붙었다. 상대방이 나이트에 심리적으로 애착하는 경우 상대방의 나이트를 차지하기 위해선 자신의 비숍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식이다. 이렇게 두꺼운 규칙은 예시, 예외 조항, 문제, 단서 조항, 주의 사항, 재량권의 필요성 등을 모두 기재한다.
두꺼운 규칙은 중세 시대까지 유럽에서 우세했다. 예를 들어 7세기 수도원의 수도원장은 ‘성 베네딕토의 규칙서’(수도사들이 지켜야 하는 계율)를 적용하는 방법에 상당한 재량권을 가졌다. 그러다 근대 이후 얇은 규칙이 선호되기 시작했다. 모호함이 없었고, 규칙 적용의 예측 가능성이 높은 덕분이었다.
또 얇은 규칙은 두꺼운 규칙과 달리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다. 2005년부터 지금까지 미국 대법원장을 맡고 있는 존 로버츠는 한 의견서에 이렇게 썼다. “내가 당신에게 예외를 만든다면, 모든 사람에게 예외를 만들어야 하므로 예외는 없습니다.” 예외를 허용하기 시작하면 규칙이 무너지고, 사회 무질서가 커질 것이란 우려를 표현한 말이었다.
하지만 저자는 두꺼운 규칙과 얇은 규칙 사이에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딜레마가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도둑질하지 말라’는 얇은 규칙은 이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도둑이 부자의 식탁에서 빵 한 덩어리를 훔친 가난한 사람이고, 굶주린 데다 일자리도 구할 수 없었다면 어떨까. 법의 엄중함으로 처벌해야 할까, 아니면 자비의 이름으로 예외를 두어야 할까. 이는 수 세기 동안 도덕 철학자, 신학자, 법학자, 소설가들을 괴롭힌 문제였다.
저자는 규칙이 너무 구체적이면 오히려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도 말한다. 1300년대부터 1800년대까지 이어진 유럽의 사치 금지법이 그랬다. 12세기 제노아의 검은담비 장식 금지, 15세기 페라라의 찢어진 소매 금지, 17세기 파리의 금 단추 금지는 독창적인 회피와 과격한 반항 끝에 모두 실패로 끝났다.
규칙을 지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고민하게 되는 시기에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책이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