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전문가 집단의 죽음'
서울대병원 교수들이 끝내 무기한 집단 휴진에 들어갔다. 설마설마하던 일이 현실이 됐다. 교수들이 응급·중증환자 진료는 이어가겠다고 했지만 환자단체는 벌써부터 “환자 안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불안해하고 의료산업노조연맹은 “환자들에게 ‘사망 선언’을 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환자를 살리는 인술로 의료계는 물론 사회적으로 존경받아야 할 서울대병원 교수들이 환자에게도, 간호사 등 병원 동료들에게도 원성을 사는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이들은 어제 ‘전문가 집단의 죽음’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다고 하는데, 환자를 버리고 집단 휴진하는 행태야말로 ‘전문가 집단의 죽음’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로 기억되지 않을까.

서울대병원 교수들은 집단 휴진을 철회하는 조건으로 전공의 행정처분 완전 취소와 내년도 의대 정원 재조정 등을 내걸었지만 과연 국민에게 얼마나 설득력 있게 들릴지 모르겠다. 정부는 이미 수련병원을 이탈한 전공의 사직을 허용하고 복귀 시 행정처분 철회 방침을 밝히며 한발 물러섰다. 그런데도 미복귀 전공의까지 행정처분을 취소하라는 건 국민들 눈에 ‘법 위에 서겠다’는 발상으로 비치지 않을까. 아무리 제자를 위하는 마음에서라고 하지만 4개월 넘게 진료 현장을 이탈한 제자들의 복귀를 설득하기는커녕 환자들을 외면한 채 집단행동에 나선 건 ‘삐뚤어진 제자 사랑’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내년도 의대 증원은 이미 대입 모집요강까지 발표된 터라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다. 그보다는 2026학년도 이후 의대 증원 규모와 전공의 처우 개선, 필수·지방의료 대책 등 의료개혁 방향을 놓고 정부와 머리를 맞대는 게 맞지 않을까. 정부도 그에 대한 논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서울대는 2011년 국립대 법인으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막대한 혈세를 지원받고 교수들은 공무원에 준하는 대우를 받는다. 그런 서울대병원 교수들이 진료 파업에 앞장선 건 국민의 기대와 신뢰를 저버린 행동이다. 정부는 법 위반 소지도 들여다본다고 한다. 법도 법이지만 국민의 존경과 신뢰를 잃어버리는 건 더 무서운 일이다.

주용석 논설위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