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1위 완성차 업체이자 일본 최대 기업인 도요타자동차가 일본 기업 최초로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 5조엔(약 44조원)을 돌파했다. 미국 하이브리드카 판매 호조에 엔저 효과가 더해졌다.

'슈퍼엔저' 장착 도요타, 영업이익 5조엔 넘었다
도요타는 8일 2023회계연도(2023년 4월~2024년 3월)에 매출 45조953억엔, 영업이익 5조3529억엔을 달성했다고 발표했다. 전년 대비 매출은 21.4%, 영업이익은 96.4%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회사 예상치(4조9000억엔)를 웃돌며 사상 처음으로 5조엔을 넘어섰다.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 현상이 해소되면서 생산이 정상화해 판매가 늘어난 덕분이다. 도요타의 지난해 글로벌 판매는 전년 대비 7% 증가한 약 1030만 대로, 처음으로 1000만 대를 넘어섰다. 특히 수익성이 높은 하이브리드카 판매 호조 등이 영업이익을 2조엔가량 끌어올렸다. 엔화 약세도 6580억엔 정도 기여했다.

도요타는 올해 전기차, 인공지능(AI) 등 미래 성장 분야에 1조7000억엔을 투입해 미국 테슬라와 중국 자동차 업체 공세에 대응할 계획이다. 전년 대비 40% 늘린 투자 규모다. 핵심 투자 분야는 AI를 활용한 자율주행 등 소프트웨어와 전기차다. 최근 전기차 시장 성장세는 줄었지만 중장기 성장 시나리오는 변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도요타는 2030년 전기차 판매 350만 대를 목표로 잡았다. 지난해에는 11만여 대를 판매해 테슬라(180만 대), BYD(157만 대) 등에 크게 못 미쳤다. 그러나 하이브리드카에서는 압도적이다. 지난해에만 전년 대비 30% 증가한 355만 대를 판매했다. 역대 최대 규모다. 하이브리드카 판매로 벌어들인 돈을 미래 차에 쏟아붓겠다는 전략이다.

'글로벌 1000만대' 첫 돌파한 도요타…AI 등 미래 투자 확대
영업이익률 11.9% '업계 최고'…올해 최대 1조엔 자사주 매입

도요타가 지난해 달성한 영업이익 5조3529억엔은 2021년 세운 최고 기록(2조9956억엔)의 1.8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과거 2조엔대 영업이익을 기록한 기업은 도요타 외에 소프트뱅크(2018년 2조3539억엔)뿐이다.

핵심은 하이브리드카다. 지난해 전기차 성장세가 주춤한 사이 하이브리드카가 날개 돋친 듯 팔리며 영업이익을 대폭 끌어올렸다. 도요타의 최신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1997년 세계 최초로 출시한 양산형 하이브리드카 프리우스와 비교해 원가를 6분의 1로 절감했다. 하이브리드카를 한 대 팔았을 때 이익률이 가솔린차보다 10% 높은 이유다.

지난해 엔저 현상이 가속화한 것도 영업이익 증가에 크게 도움이 됐다. 미국의 금리 인상, 일본은행의 금융완화 정책에 따른 엔저는 도요타의 수출과 이익이 동시에 개선되는 효과를 불러왔다.

그 덕분에 도요타의 영업이익률은 주요 완성차업체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도요타는 지난해 11.9%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 테슬라(9.2%) 폭스바겐(7%) 등이 한 자릿수에 그친 것과 대조적이다. 자동차사업부문의 영업현금흐름은 약 6조9700억엔으로, 테슬라의 세 배 이상이다.

도요타는 ‘돈 버는 힘’을 미래 투자로 연결하겠다는 계획이다. 사토 고지 도요타 사장은 8일 실적 발표회에서 “의지를 가지고 발판 굳히기에 필요한 돈을 쓰겠다”며 미래 투자를 더 늘리겠다고 밝혔다. 도요타는 올해 설비투자와 연구개발비도 작년 대비 각각 7%, 8% 증가한 2조1500억엔, 1조3000억엔으로 잡았다. 모두 역대 최대 규모다. 인적 자본 확충에도 3800억엔을 투자하기로 했다.

미국 테슬라는 올해 자율주행 등을 위한 인공지능(AI) 개발에 100억달러를 투입할 방침임을 밝혔다. 8월에 자율주행 택시를 내놓을 예정이다. 중국에서는 샤오미 등 신흥 전기차 메이커가 소프트웨어를 강화한 ‘지능형 자동차’로 공세에 나섰다.

도요타는 주주환원 정책도 강화한다. 올해 1조엔을 상한으로 자사주를 매입하기로 했다. 발행 주식 총수의 약 3%다. 5억2000만 주에 달하는 기존 자사주는 소각할 방침이다. 기말 배당은 전 분기 대비 10엔 증가한 주당 45엔, 연간으로는 15엔 늘어난 75엔으로 잡았다.

투자비 증가가 올해 실적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올해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20% 감소한 4조3000억엔으로 전망했다. 매출은 2% 증가한 46조엔으로 예상했다. 생산·판매를 전년과 거의 같은 수준으로 잡았기 때문이다. 계열사인 다이하쓰 등에서 품질 인증 부정이 발생한 만큼 과도한 생산성 추구보다는 기본을 더 다지기로 한 데 따른 것이다.

도요타는 작년 실적 상승에 큰 힘이 된 엔저 효과는 올해 축소될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 엔·달러 평균 환율은 145엔으로 내다봤다.

도쿄=김일규 특파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