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혜준의 인문학과 경제] 의료계 향한 애덤 스미스의 일침
국회에 입성하려는 요란한 선거판 경쟁은 며칠 뒤면 끝나겠지만 의대 정원을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 특히 의학 교육기관의 갈등은 좀 더 지속될 듯하다. 필자는 이 문제를 직접 다룰 전문성을 갖추고 있지 못하지만 의료 서비스 소비자이자 납세자로서 어서 빨리 양측이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 분란이 종식되기를 바라는 마음만은 간절하다. 그런 마음에서 과거 시대 다른 나라 한 인물의 발언을 상기해 본다. 그는 다름 아닌 <국부론>의 저자 애덤 스미스다.

“독점은 항상 나쁘고, 경쟁은 항상 좋다.” 스미스가 <국부론>은 물론 사적인 편지에서도 늘 일관되게 주장한 바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와 같다. 그는 이 원리가 농업이나 제조업뿐 아니라 고급 서비스업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봤다.

예를 들면 대학이 그렇다. 스미스가 살던 당시 대학들은 경쟁하지 않아도 됐다. 교수들은 열심히 연구하거나 성실히 가르치지 않아도 안정된 수입이 보장됐다. 의학 교육기관도 마찬가지였다. 심도 있게 전문교육을 하는 대학도 있었으나, 그렇지 않은 곳이 더 많았다. 스미스 시대 스코틀랜드에서 일부 지방 의대는 부실 교육을 할 뿐 아니라 의대를 다니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학위를 주는 ‘학위 장사’도 하고 있었다.

엉터리 의사들이 범람하는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당시 수도권 최고 명문 에든버러 의대의 학장은 정부 고위권력자에게 문제가 있는 지방 의대의 제재 및 개혁을 요청했다. 이 권력자는 스코틀랜드 최고의 지성인 스미스와 절친한 사이였기에, 스미스의 의견을 먼저 듣기로 했다. 스미스는 1774년 9월 에든버러 의대 학장에게 이 문제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긴 편지에 담아 전달했다. 이 편지의 요지를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독점은 항상 나쁘고 경쟁은 항상 좋다’였다.

스미스의 논리는 다음과 같다. 의사들의 공급이 과잉 상태이고, 그중에 질 낮은 의사들이 많이 끼어 있는 것은 문제다. 하지만 공급되는 의사가 많을수록 이들은 소비자인 환자에게 최선의 진료를 제공하기 위해 경쟁할 것이다. 소비자들은 제대로 치료하는 의사와 그렇지 않은 의사를 경험과 소문을 통해 판단할 것이다.

스미스가 보기에 학위를 주는 공급자 쪽에서 배출되는 학생들의 수를 제한하거나 학위 취득 자격을 복잡하게 만들어놓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다. 오히려 여러 해 별로 유익하지 않은 교육 과정을 이수하도록 학생들을 강제로 묶어둔 채, 의대 교수들이 본인의 봉급만 챙기고 있다면 그런 의대에서 발급한 졸업장이 무슨 품질보증서가 될 수 있겠나?

스코틀랜드 수도 에든버러에는 좋은 의사가 많기로 정평이 나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에든버러 의대가 훌륭한 졸업생을 많이 배출해서? 아니다. 에든버러는 스코틀랜드 다른 지방 및 잉글랜드, 심지어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 의학 공부를 한 이들이 모두 의료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무한경쟁 덕분에 에든버러 의사의 수준은 당대 최고로 유지될 수 있었다.

스미스가 비판한 1770년대 스코틀랜드와 2024년 대한민국의 의료 교육은 전혀 다르다. 그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어떤 면에서는 ‘독점은 항상 나쁘고 경쟁은 항상 좋다’는 명제는 여전히 유효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