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반도체 업황 회복에 힘입어 수출을 비롯한 실물경제 지표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국민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여전히 싸늘하다. 고금리·고물가 장기화에 따른 민간소비 부진과 건설경기 침체가 겹쳐 체감경기로 온기가 확산하는 게 더디다는 분석이 나온다.

18일 통계청의 경기순환시계에 따르면 핵심 10개 지표 중 서비스업생산지수, 건설기성액, 수출액 등 세 개 지표가 올 1월 기준 상승 국면에 진입했다. 소매판매액지수, 수입액, 기업경기실사지수, 소비자기대지수 등 네 개 지표는 회복 국면에 접어들었다. 하강·둔화 국면에 들어선 지표는 설비투자지수, 취업자 수, 광공업생산지수 등 세 개에 그쳤다.

경기순환시계는 대표적 경기지표 10개가 각각 ‘상승→둔화→하강→회복’의 경기 순환 국면 중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작년 10월만 해도 상승·회복 국면에 놓인 지표는 네 개에 불과했다. 하지만 같은 해 11월 다섯 개에 이어 12월 여덟 개로 늘어나는 등 경기 흐름이 회복세에 접어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도체 업황 회복에 힘입어 전(全)산업 생산지수는 작년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석 달 연속 전월 대비 ‘플러스’를 기록했다. 생산이 석 달 이상 연속 증가한 것은 2022년 1월 이후 24개월 만에 처음이다.

내수경기 등 국민 실생활과 직결된 체감경기 부문에서는 싸늘한 기류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1월 재화 소비 동향을 보여주는 소매판매(불변)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3.4% 감소했다. 기획재정부는 이달 15일 발간한 최근 경제동향(그린북)에서 민간소비 둔화와 건설투자 부진 등으로 부문별 회복 속도에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내수 살리기 고민하는 정부…건설경기대책 조만간 발표

실물-체감경기 커지는 '엇박자'
정부는 산업활동에서 높은 반도체 의존도가 수출·내수 격차로 이어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반도체발(發) 경기 개선과 체감경기 회복에 적잖은 괴리가 있다는 뜻이다. 전·후방 산업 연관 효과가 큰 자동차·조선업 등과 달리 반도체는 성장과 고용 모두 파급 효과가 작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실제로 지난 1월 재화 소비 동향을 보여주는 소매판매(불변)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3.4% 감소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문소매점(-11.4%), 슈퍼마켓 및 잡화점(-15.2%) 등에서 판매 감소폭이 컸다. 2월 들어서도 금리에 민감한 국산 승용차 내수 판매는 전월 대비 15.2% 급감했다. 고금리로 인한 이자 부담과 고물가에 따라 가계 실질 소득이 줄면서 민간 소비 여력이 크게 위축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특히 과일을 비롯한 식료품 물가 급등은 민간소비를 짓누르는 원인으로 꼽힌다.

내수의 또 다른 축인 설비투자도 좀처럼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작년 10월(-1.9%), 11월(-2.0%) 감소하다가 같은 해 12월 2.3% 증가세로 돌아선 설비투자는 한 달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감소폭은 6개월 만의 최대치다. 특히 태영건설의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작업) 신청으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이 터진 가운데 건설투자 감소가 가뜩이나 싸늘한 체감경기를 더 위축시킬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부는 내수 회복을 위해 올 상반기 역대 최대 규모인 389조원의 재정을 투입할 방침이다. 특히 건설투자를 보강하기 위한 세부 방안을 이르면 이번주 발표할 예정이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8일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수출과 내수의 균형있는 경제 회복을 위해 내수의 주요 축인 건설·지역·기업투자 등 분야별 투자 활성화 대책을 조속히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정부로서도 당장 경기를 활성화할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점이다. 일각에선 총선이 끝난 후 조기 경기 회복을 위해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된다. 이에 대해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올해 석 달도 안 된 시점에 추경을 언급하기는 너무 이르다”며 “올 하반기부터 기준금리가 인하되면 체감경기에도 온기가 확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