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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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해 집단 행동에 나선 전공의(인턴, 레지던트)들이 혼합진료 금지 등 정부가 필수의료 강화를 위해 내놓은 정책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개원의들은 컴퓨터단층촬영장치(CT)와 자기공명영상촬영장치(MRI) 설치 기준을 강화해 과잉 진료를 막겠다는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성명을 냈다. 혼합진료와 MRI는 그간 과잉진료를 유발해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늘리는 ‘주범’으로 여겨져온 분야다. “꼭 필요한 진료를 못하게 된다”는 것이 의사단체들이 내건 명분이지만 결국 ‘밥그릇’ 사수 투쟁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공의도 개원의도 “혼합진료 금지 철회하라”

22일 의료계에 따르면 최근 집단 행동을 주도하고 있는 전공의 단체인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을 비롯해 대한의사협회(의협)등 주요 의사 단체들이 정부가 추진 중인 혼합진료 금지에 대해 공식적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대전협은 20일 발표한 의대 증원 반대 성명에서 “정부의 필수의료 패키지에는 비급여 항목 혼합진료 등 최선의 진료를 제한하는 정책들로 가득하다”고 밝혔다. 의협 역시 21일 “(정부가)혼합진료를 금지해 개원가의 씨를 말리겠다고 한다”는 내용을 담은 광고를 게재했다.

혼합진료 금지는 의료계 내에선 의대 증원만큼이나 뜨거운 이슈로 꼽힌다. 혼합진료는 건강보험 급여 진료와 비급여 진료를 함께 하는 진료 형태다. 물리치료를 하면서 도수치료를 하거나 백내장 수술에 다초점렌즈를 끼워 수술하는 식으로, 일본, 영국 등 선진국에선 금지 또는 금지에 준하는 수준으로 통제가 이뤄지고 있다.

정부는 그간 혼합진료가 사실상 방치된 사이 비급여 진료가 과잉 팽창하면서 의료 생태계 자체가 교란됐다고 보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환자의 비급여 본인부담액은 2013년 17조7139억원에서 2022년 32조3213억원까지 늘었다. 의사가 몰리고 있는 소위 ‘피안성정재영(피부과·안과·성형외과·정신과·재활의학과·영상의학과)’로 불리는 인기과들은 비급여 진료를 늘려 돈을 벌기 쉽거나 근무 강도가 낮은 곳들이다. 정부가 혼합진료 금지를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한 핵심 과제로 제시한 이유다.

일각에선 의사 단체들이 혼합진료 폐지 철회를 들고 나온 것은 결국 집단 행동의 목적이 밥그릇 지키기에 있다는 것을 인증한 셈이란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이미 수술이나 분만 등 필수적인 의료 행위에 활용되는 비급여 항목은 혼합진료 금지 항목이 아니라고 밝힌 바 있다. 그마저도 혼합진료 금지가 의료계에 미칠 여파가 크고 의견이 다양한만큼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를 꾸려 심층 논의한 뒤 확정하기로 했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부 교수는 “의대 증원 반대나 혼합진료 금지 철회 요구 모두 결국 수익이 줄어드는 걸 용인할 수 없다는 것”이라며 “필수의료 패키지가 효과가 없어서 반대하는 게 아니다”고 지적했다.

○CT·MRI 설치 규제에도 ‘반대’

의사 단체들은 CT, MRI 등 특수의료장비의 설치 기준을 강화하는 정부 정책에도 반발하고 있다. 대한개원의협회의(개원협)은 21일 성명서를 내고 “정부의 무책임하고 파렴치한 계획을 국민에게 알릴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병·의원이 특수의료장비를 설치할 수 있는 시설 기준(200병상 이상)을 만족하지 못하더라도 다른 병원에서 병상을 빌려 설치할 수 있도록 한 ‘병상 공동활용제’를 폐지하는 안을 검토 중이다. 병원 간 병상 거래를 통해 장비 공급이 과도하게 이뤄지면서 과잉 진료 문제가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 정부의 진단이다.

실제 MRI 진료비는 장비 공급 확대와 문재인 정부 시절 보장성 확대가 맞물리며 2018년 513억원에서 2021년 5939억원으로 3년 새 10배 넘게 불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