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김대건 신부 성상. 바티칸 설치 전 조각가의 작업실에서 찍은 사진. 한진섭 작가·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제공
성 김대건 신부 성상. 바티칸 설치 전 조각가의 작업실에서 찍은 사진. 한진섭 작가·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제공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에 성(聖)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성상이 세워졌다. 한국 최초 사제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177년 전 오늘 순교했다. 동양 성인의 상이 성 베드로 대성당에 세워지는 건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16일 현지 시각 오후 3시(한국 시각 오후 10시)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는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성상 설치 기념 미사가 봉헌됐다. 성상은 성 베드로 대성당 벽감(벽이나 기둥 등에 조각상을 둘 수 있도록 움푹하게 만든 부분)에 설치됐다. 성 베드로 대성당은 베드로의 무덤 위에 세워진, 전 세계 가톨릭의 본산이다.

기념 미사는 유흥식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추기경)의 주례로 거행됐다. 유 추기경은 김대건 신부 성상 봉헌을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건의한 인물이다. 뒤이어 성상 인근에서 축복식이 성 베드로 대성전의 수석 사제 마우로 감베티 추기경의 주례로 이뤄졌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최초의 한국인 사제다. 1821년 8월 21일 태어나 1846년 9월 16일 25세의 나이로 순교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때인 1984년 시성(諡聖·성인으로 선포함)됐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탄생 200주년’ 희년(2020년 11월 29일~2021년 11월 27일)을 마무리하며 김대건 신부의 탄생 200주년을 기억하고자 그동안 성상을 제작해 왔다. 희년(禧年·Jubilee)은 교회 역사상 중요한 사건을 50년 혹은 100년 단위로 기념하는 것을 말한다. 주교회의 2022년 추계 정기총회의 결정에 따라 16개 교구가 성상 제작비를 지원했다.
지난 9월 5일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 외부 벽감에 김대건 신부 성상을 설치하고 있는 모습.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제공
지난 9월 5일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 외부 벽감에 김대건 신부 성상을 설치하고 있는 모습.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제공
지난 5일 설치된 성상은 갓을 쓰고 도포를 입은 한국의 전통적인 모습으로 제작됐다. 부드러운 곡선을 강조했다. 두 팔을 벌려 모든 것을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을 표현했다. 높이 3.7m, 가로 1.83m, 세로 1.2m 규모다. 비앙코 카라라 대리석으로 제작됐다. 한진섭 작가(한국조각가협회 이사장)의 작품이다.

이날 기념 미사와 축복식에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이용훈 주교를 비롯해 염수정 추기경(전 서울대교구장), 유수일 주교(전 군종교구장), 서상범 주교(군종교구장), 김종강 주교(청주교구장), 신호철 주교(부산교구 총대리)가 참석했다.

이날 기념미사와 축복식이 열리기 전 오전 10시에는 주교들과 함께 공식 순례단, 로마 거주 한국인 사제, 수도자, 평신도들이 프란치스코 교황을 특별 알현했다. 강승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은 정부 특사로 파견됐다. 교황은 교황사도궁 클레멘스홀에서 이들을 맞이한 뒤 "저마다 삶의 자리에서 '평화의 사도'가 돼 달라"고 당부했다. 또 "한반도의 평화를 언제나 생각하고 기도하고 있다"며 "한반도 평화라는 꿈을 우리 함께 김대건 성인에게 맡기자"고 했다.

앞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5월 24일 수요 일반알현 교리 교육에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를 언급하기도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약 200년 전, 한국 땅은 매우 혹독한 박해의 현장이었다"며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과 다른 한국 신자들은 핍박받는 상황에서도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 신앙의 큰 열매를 맺게 한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