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수능 가슴앓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나고 입시철이 오면 열병을 앓듯 온 나라가 전전긍긍한다. 필자에게도 두 아들이 있다. 외국에서 오래 생활하고 우리나라에서도 국제학교를 다녔지만 둘 다 수능을 보게 했다. 대한민국에서 대학이라는 의미가 갖는 다양한 포지션을 생각해서 말이다.

첫째 아이가 수능을 볼 때는 너무 떨려서 공식 행사를 빙자해 술을 어찌나 마셨는지 보도블록에 걸려 넘어지면서 바지를 찢고 발목을 삐는 부상까지 당해 기어서 집에 왔다. 내일 볼 수능 때문에 잠든 아이를 들여다보지도 못한 채 철퍼덕 널브러져 조용히 잠든 기억이 있다. 아침엔 아내가 아이를 고사장에 데려다준 것 같다. 수능이 끝날 무렵 고사장에 마중을 나가서는 아이에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연신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짓는 연습을 해댔다. 필자는 내심 시험을 끝낸 아이가 대견스러웠지만 결과에 만족하지 못하는 아이를 위로해줄 방법은 없었고 그런 시험을 보라고 한 나 자신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둘째 아이 때는 제법 익숙해지기라도 한 듯 평소와 달리 일찍 들어와 잠자리에 들었고, 아침 일찍 둘째 아이와 같이 아침을 먹고 고사장에 데려다줬다. 고사장으로 들어가는 아이에게 뭐라고 했던가? ‘우리 아들 사랑해, 잘 다녀와~’ 말 한마디라도 아이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모르겠다. 19년을 고생해 단 한 번으로 승부를 거는 수능이라는 제도에 대해 앞으로도 계속 이래야 하는가 골백번 생각하면서 말이다.

내가 가르쳐본 대학생들의 경험을 토대로 말하자면, 모든 제자가 제각각의 재능과 탁월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수능이라는 제도는 그런 많은 학생의 재능을 한 가지 잣대로만 평가해 순서를 매기는 역할을 한다. 필자 또한 그런 부작용을 익히 알지만 대학입시를 치를 때 평가의 가장 중요한 잣대가 수능 점수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내겐 이것을 바꿀 능력도 권한도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영국의 옥스퍼드대 수학과 재학생들이 우리나라 수능의 수학문제를 실험 삼아 푼 적이 있었다. 그들은 제시간에 문제를 다 풀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너무 시험문제가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왜 이런 지옥과 같은 시험의 구렁텅이에 사랑하는 자녀를 몰아넣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정말 소수만이 승자라고 불릴 수밖에 없는 이 제도를 왜 계속 시행해서 대다수의 패배자를 낳는 것을 방관하고 있는 것일까. 가장 공평한 제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수긍해야 하는가. 매년 수능일을 지나면서 근본적인 변화가 없는 이 제도에 답답하고 쓰린 냉가슴앓이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