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출산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압도적 꼴찌다. 그 영향을 가장 직접적으로 받는 아동복 시장은 급격히 쪼그라드는 게 상식적이다.

그런데도 국내 아동복 시장 규모는 되레 커지고 있다. 중저가 아동복 수요가 줄어드는 대신 고가 아동복 수요는 커졌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이후 나와 연관된 소비에는 돈 쓰는 걸 아끼지 않는 패턴이 굳어진 게 이런 흐름을 야기한 것으로 분석된다.

8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국내 아동복 시장은 지난해 총 1조648억원에 달해 전년 대비 16.8% 증가한 것으로 추산됐다. 올해에도 비슷한 추세가 이어져 롯데·신세계·현대백화점의 올 들어 지난 8월까지 아동복 평균 매출 증가율(전년 동기 대비)은 48%에 달했다.

그동안 유통회사들은 출생아 수가 급격히 줄어드는 흐름이 이어지는 만큼 전체 아동복 시장 규모도 시간이 갈수록 축소될 것으로 예상해 왔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 양상이 펼쳐지고 있다.

여기에는 한 자녀 가정이 많아지면서 아이에 대한 씀씀이가 커진 게 영향을 미쳤다는 게 유통업계의 설명이다. 조부모·부모·삼촌·이모까지 총 여덟 명이 한 명의 아이를 공주나 왕자처럼 챙긴다는 뜻의 ‘에잇 포켓(여덟 명의 주머니)’이라는 용어가 등장했을 정도다.

이에 따라 주요 백화점은 100만원이 훌쩍 넘는 해외 고가 아동복 브랜드 매장을 작년부터 속속 선보이고 있다. 신세계 서울 강남점은 프랑스 브랜드 ‘디올’의 아동복 라인 ‘베이비 디올’의 국내 첫 매장을 열었다.

롯데는 지난해 8월 새로 연 경기 동탄점에 명품 아동복 편집숍 ‘퀴이퀴이’를 열었다. 여기에는 ‘끌로에키즈’ ‘오프화이트키즈’ ‘마르지엘라키즈’ 등 해외 유명 브랜드의 아동복 라인이 입점했다.

국내 성인 명품시장이 매년 급격히 성장하는 것도 소비 트렌드 변화와 연관이 깊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명품시장 규모는 141억달러(약 19조3437억원)를 기록해 전 세계 7위를 차지했다.

김민정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자녀 수가 줄면서 한 아이에 대한 부모의 애착이 전보다 강해졌다”며 “아동복 시장의 역설은 인구 감소 시대의 산업 변화가 예상과 달리 흘러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