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 우려 속에서도 투자가 몰리는 곳이 있다. 190여 개국에서 중계권이 팔리는 유럽 축구 시장이다. 최근 리오프닝(경제 활동 재개) 영향으로 유럽 대형 축구팀의 소유주가 잇따라 바뀌고 있다. 이탈리아 명문 축구구단인 AC 밀란은 12억유로(약 1조6300억원)에 미국 투자사에 팔렸다. 매각 가격이 5년 새 60% 이상 뛰었다. 잉글랜드 인기 구단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는 영국 최대 부호가 눈독을 들이고 있다.

잉글랜드 축구구단인 첼시 FC 인수에 참여했던 컨소시엄 관계자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는 190개국에서 1년에 9개월 동안 팔 수 있는 글로벌 상품”이라며 “미디어를 통한 수익 창출 기회가 널려 있다”고 했다.

몸값 무섭게 뛴 AC 밀란

"축구는 투자다"…AC밀란 1.6조원에 팔렸다
AC 밀란은 “미국 투자업체인 레드버드캐피털이 구단을 12억유로에 인수했다”고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발표했다. 레드버드캐피털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축구구단인 리버풀 FC와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팀인 보스턴 레드삭스를 소유한 펜웨이스포츠그룹의 주요 투자사이기도 하다. AC 밀란은 이탈리아 프로축구 최상위 리그인 세리에A에서 19차례 우승한 축구 명가다. 2021~2022시즌에도 리그 우승컵을 들었다. 2017년 중국 광산 사업가인 리융훙이 7억4000만유로(약 1조원)에 인수했지만 이 과정에서 빌린 돈을 상환하지 못해 채권자인 엘리엇이 구단 소유권을 보유하고 있었다.

레드버드캐피털은 5년 전보다 63% 비싼 가격에 구단을 매입했다. 인수 비용을 넘어서는 수익을 낼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번 인수에는 레드버드캐피털과 함께 메이저리그 야구팀인 뉴욕 양키스를 소유한 양키글로벌엔터프라이즈(YGE)도 참여해 AC 밀란 지분 일부를 보유하게 됐다. 메이저리그의 수익 창출 역량을 축구팀 경영에 접목하겠다는 포석이다.

레드버드캐피털은 골드만삭스 출신인 게리 카디날이 설립한 투자사다. 그간 중동, 동남아시아, 중국 등에서 막대한 부를 축적한 부호들이 축구에 대한 열정을 내세워 투자를 주도했다면 레드버드캐피털은 대회 성공과 사업적 성공을 추구한다. 실리적 성향이 강하다.

프리미어리그 매출 20년 새 8배 ‘껑충’

잉글랜드 인기 축구팀인 맨유도 영국 최대 부호가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CNN은 최근 영국 석유화학 기업인 이네오스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짐 래트클리프가 맨유 인수에 나선다고 보도했다. 포브스에 따르면 맨유의 시장 가치는 46억달러(약 6조2300억원)에 달한다.

첼시 FC도 올해 구단주가 바뀌었다. 지난 5월 30일 토드 보엘리 엘드릿지 CEO와 클리어레이크캐피털이 참여한 컨소시엄이 첼시 FC를 42억5000만파운드(약 6조6700억원)에 인수했다.

미국 투자사인 엘드릿지를 운영하는 보엘리도 스포츠를 유망 산업으로 꼽는다. 이미 메이저리그의 LA 다저스, 미국 프로농구팀 LA 레이커스 등의 대형 구단을 운영한 경험이 있다.

지난해 10월엔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가 주도하는 컨소시엄이 잉글랜드 프로축구팀인 뉴캐슬 유나이티드를 4억900만파운드(약 6400억원)에 인수하기도 했다.

유럽축구의 인기는 숫자로도 드러난다. 컨설팅업체인 딜로이트에 따르면 1997~1998시즌 5억8000만파운드(약 9100억원) 수준이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매출은 20년 뒤인 2017~2018시즌 48억2000만파운드(약 7조5700억원)로 약 8배로 늘었다. 2022~2023시즌 매출은 60억파운드를 웃돌 것이란 전망이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