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 출신들이 윤석열 정부 요직을 꿰차고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와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 최상목 경제수석에 이어 13일 차관급 인사에서도 기재부 출신이 대거 등용되면서 관가에선 ‘기재부 전성시대’란 말이 돌 정도다. 문재인 정부에서 ‘적폐’ 취급을 받으며 한때 ‘불이익’을 받았던 기재부 출신들이 윤석열 정부에선 출범 초부터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능력주의 인사에 따른 결과란 평가도 있지만 일각에선 ‘기재부 독식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尹의 기재부 사랑? 총리·부총리·비서실장 이어 차관급도 8명

차관급 8명이 기재부 출신

윤석열 정부가 이날 발표한 2차 차관급 인사에는 기재부 출신이 4명 포함됐다. 체육 분야를 담당하는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에 기재부 기획조정실장을 지낸 조용만 대한체육회 사무총장이 발탁됐다. 조 차관은 1986년 행정고시 30회로 공직에 입문해 2017년 기획조정실장을 끝으로 기재부를 떠난 ‘기재부 올드보이(OB)’다. 문체부 2차관에 기재부 출신이 임명된 건 2012년 예산총괄심의관 출신인 김용환 차관 이후 10년 만이다.

관세청장, 조달청장, 통계청장 자리엔 모두 기재부 현직 1급이 승진 이동했다. 윤태식 세제실장이 관세청장에, 이종욱 기획조정실장이 조달청장에, 한훈 차관보가 통계청장에 임명됐다. 기재부 외청장 자리이긴 하지만 정권 교체 후 첫 인사에서 전 정부 1급들이 모두 등용된 건 이례적이다. 특히 통계청장에 기재부 출신이 임명된 건 2011년 우기종 청장 이후 11년 만이고, 조달청장에 기재부 출신이 온 건 2018년 정무경 청장 이후 4년 만이다.
尹의 기재부 사랑? 총리·부총리·비서실장 이어 차관급도 8명
지난 9일 있었던 1차 차관급 인사에서도 기재부 재정관리관을 지낸 조규홍 전 유럽부흥개발은행 이사가 보건복지부 1차관에 임명됐다. 차관급인 최상목 경제수석과 방기선·최상대 기재부 1·2차관까지 포함하면 현 정부에서 8명의 차관급 인사가 기재부 출신으로 채워졌다. 이 밖에 대통령실 1급 자리인 김병환 경제금융비서관과 박성훈 기획비서관도 기재부 출신이다.

“경제 원팀” vs “집중 과도”

문재인 정부 때 기재부 출신들은 당시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으로부터 “기재부의 나라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홀대받았다. 대규모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두고 민주당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일각에선 민주당 소속인 오거돈 전 부산시장 때 경제부시장(현 박성훈 비서관)이 국민의힘 부산시장 예비후보로 나가고, 문재인 정부가 임명한 문성유 전 캠코(자산관리공사) 사장이 국민의힘 제주지사 예비후보로 나가면서 민주당에서 기재부 출신에 대한 불신이 쌓였다는 말도 나온다.

새 정부 들어 분위기가 바뀌면서 기재부는 고무된 분위기다.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총리·부총리와 각 부처, 대통령실이 ‘경제 원팀’을 이뤄 긴밀하게 소통하게 될 것”이라며 “부처 간 장벽도 허물어지게 됐다”고 말했다. 기재부 내에선 고질적인 인사적체가 풀릴 것이란 기대도 있다. 8년 전 최경환 전 부총리처럼 추 부총리가 ‘실세 부총리’로서 인사적체를 풀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부처에선 ‘기재부 집중’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한 경제부처 관계자는 “기재부는 예산권을 갖고 있어 원래 힘이 막강한 부처”라며 “다른 부처 차관까지 기재부 출신 인사로 채워지면서 정책 주도권이 완전히 넘어갈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각종 정책 수립 과정에서 내각의 다양한 의견보다 기재부 중심의 논리가 득세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