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친러시아 분리주의 세력이 장악한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 문제와 관련해 러시아와 타협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전쟁 장기화에 따른 피해가 커지면서 ‘영토 포기는 없다’던 기존 입장에서 한발 물러선 것으로 관측된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5차 평화협상을 하루 앞둔 27일(현지시간) 러시아 독립 언론인들과의 화상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가 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어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완전히 떠나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모든 것이 시작된 지점으로 돌아가 어려운 돈바스 문제를 해결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러시아가 돈바스 지역 독립을 주장하며 침공한 만큼 이 지역을 내주는 선에서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는 전쟁을 끝내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주요 목표는 가능한 한 빨리 전쟁을 끝내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침공 명령을 내리기 전의 위치로 러시아군을 철수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인터뷰 뒤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보내는 화상 연설에서 “정부는 5차 협상에서 우크라이나의 영토 보전을 우선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투표를 전제로 우크라이나의 중립국화를 추진할 수 있다는 뜻도 시사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가 군대를 철수시키고 키이우(키예프)가 안전을 보장받는다면 우크라이나는 중립을 선언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을 포기할 수 있다”며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겠다고 맹세할 것”이라고 했다. 우크라이나는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한 뒤 NATO 가입을 추진해왔으나 이달 들어 가입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중립국화는 제3자에 의해 보장돼야 한다”며 “러시아군이 철수한 뒤 국민투표에 부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푸틴 대통령이 중립 지역에서 만나 초기 협정에 서명하고 우크라이나에서 병력을 철수시켜야 한다”며 “이 경우 우크라이나가 정책의 큰 변화를 위해 투표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요구하고 있는 비무장화에 대해선 논의를 거부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비무장화를 계속 고집하면 협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교전이 이어지는 가운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5차 평화협상도 시작된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크렘린궁 대변인은 28일 “지금까지 중요 사안에서 성과를 내거나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해 양국 대통령 간 정상회담은 불가능하다”면서도 “29~30일 이틀간 터키 앙카라에서 평화협상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번 협상에 대해 “나쁘지 않다”며 “결과를 지켜보자”고 했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