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선 무장군인 삼엄한 경비…신분증 확인 후 엿새만에 짐 찾아
"5일 밤은 내 생애서 가장 길고 불안한 밤"…아시아나 여객기 13일 한국행
[르포] 알마티 공항, 긴급대피 한국 승객들 뒤늦게 입국 수속
대규모 반정부 유혈사태가 발생하면서 한때 무장 시위대에 장악당했던 카자흐스탄 알마티 국제공항이 정상화되어가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 5일 밤 아시아나 항공 여객기 편으로 입국했던 한국 승객들의 입국 수속이 11일(현지시간) 뒤늦게 진행됐다.

당시 긴급 대피 과정에서 입국 수속을 생략한 채 공항을 빠져나와 현지 거주지나 호텔 등에 머물렀던 탑승객들은 아시아나 항공 측의 안내에 따라 이날 정오 무렵부터 알마티 공항에서 수화물을 찾고 입국수속을 밟았다.

알마티 공항으로 가는 도로는 이미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어 며칠 전 벌어졌던 유혈사태의 흔적을 찾기 어려웠다.

하지만 알마티 시내를 벗어나기 전 도로변 가게들의 깨진 유리창과 합판을 이용해 임시로 막아놓은 매장 쇼윈도들은 시위대의 약탈로 살벌했던 당시 상황을 증언해 주고 있었다.

알마티 공항 입구에는 방탄복을 입고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옛 소련권 평화유지군 소속 러시아 공수부대원들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평소에는 주차 카드를 뽑으면 차단기가 올라가고 차량 진입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누구도 차량으로 진입할 수 없고 모두 차에서 내려 걸어서 공항 터미널로 들어가야 했다.

공항 터미널 내에는 카자흐 군경들도 보였다.

1층 공항 입국장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러시아 군인들에게 신분증 검사를 다시 받아야 했다.

늘어선 군인들 때문에 수화물을 찾으러 온 교민과 승객들이 혼란스러워하거나 긴장하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르포] 알마티 공항, 긴급대피 한국 승객들 뒤늦게 입국 수속
다행히 승객뿐 아니라 도와주는 사람들도 신분만 확인되면 입장시켜줘 평소 출입이 통제되던 입국장 안 보세구역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컨베이어벨트를 따라 승객들의 짐이 공항 도착 엿새만에 나왔다.

승객들은 각자 수화물을 찾은 뒤 터미널 2층으로 올라가 여권을 제시하면서 긴급 대피 과정에서 미처 하지 못했던 입국수속을 밟아야 했다.

수화물을 찾기 위해 기다리던 모 한국기업의 알미티 주재원 K씨(60)는 "기내에서 나와 긴급 대피한 후 공항 내 소방시설에서 보낸 지난 5일 밤은 내 생애 가장 길고 불안한 밤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날 아침 공항을 무사히 빠져나와 마중 나온 직원과 만나서 내뱉은 첫마디가 '아이고, 살아서 만나네요'"였다고 덧붙였다.

두 자녀와 함께 알마티에 온 교민 O씨(49)는 "항공기가 착륙할 때 환하게 불이 켜져 있던 알마티 공항이 갑자기 칠흑 같은 어둠으로 변하더라"면서 "마중 나온 현지인 기사가 전화를 걸어와서 '무장 시위대가 공항에 들이닥치고 있으니 조심하라'고 말해줘서 위기 상황이 발생했음을 알았다"고 했다.

당시 아시아나 항공 여객기 기장은 안내방송을 통해 알마티 소요사태가 심각해 주유 후 인접국 공항이나 인천공항으로 회항하겠다고 알렸으나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순식간에 무장 시위대가 공항을 점령하면서 여객기 주유를 지원해줄 인력은 사라졌고, 공항 활주로도 이미 암흑 속에 빠져 기능이 정지된 상태였다.

한국인 29명을 포함한 69명의 승객과 8명의 승무원은 서둘러 비행기에서 내린 후 불 꺼진 공항버스를 타고 활주로 끝 쪽에 위치한 소방대 체력단련실로 긴급대피했다.

일부 승객들은 비상 상황에서 운항한 아시아나 항공 측에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승객은 긴급상황임을 고려해 공항 시설에서 밤을 지새운 후 다음날 알마티 주재 한국 총영사관과 항공사 측의 안내에 따라 공항을 무사히 빠져나와 현지 거주지로 가거나 시내 호텔에 투숙했다.

알마티 공항이 정상기능을 회복해 가면서 아시아나 여객기는 오는 13일 정오(현지시간) 인천공항으로 돌아갈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으로 갈 승객들은 출발 당일 주알마티 총영사관에 모여 버스 편으로 공항으로 이동할 예정이다.

사긴타예프 알마티시장은 10일 알마티 공항이 위치한 투르쉽스키 구역에서 대테러작전이 진행되었다고 국영언론을 통해 밝혔다.

[르포] 알마티 공항, 긴급대피 한국 승객들 뒤늦게 입국 수속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