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 바꾼 '혁명적 추상'…러시아 국보급 작품을 만나다
중·고등학교 미술 교과서에서 러시아의 바실리 칸딘스키(1866~1944)는 네덜란드의 피터르 몬드리안(1872~1944)과 함께 현대 추상미술의 양대 산맥으로 꼽힌다. 칸딘스키는 ‘뜨거운 추상’을, 몬드리안은 ‘차가운 추상’을 대표한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하지만 건물 외벽 및 가전제품 디자인 등으로 국내에 친숙한 몬드리안에 비하면 칸딘스키의 인지도는 상대적으로 낮다. 칸딘스키로 대표되는 러시아의 아방가르드 사조가 서구 모더니즘을 통해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 사조인 단색화 탄생에까지 기여했는데도 말이다.

현대 추상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지만 국내에서 제대로 접할 기회가 드물었던 러시아 아방가르드 거장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자리가 있다.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고 있는 ‘칸딘스키, 말레비치 & 러시아 아방가르드 : 혁명의 예술전’이다.

러시아 아방가르드는 1917년 러시아 혁명을 전후로 등장한 전위적 예술 운동이다. 당시 러시아 예술가들은 기존의 사회 체계와 관습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시대상에 맞춰 혁명적인 예술적 시도를 거듭했다. “세상의 진리는 순수한 형상(도형)으로만 표현될 수 있다”는 절대주의를 주장한 카지미르 말레비치(1987~1935), 복잡한 현실을 점·선·면으로 단순화한 칸딘스키, 몽타주와 타이포그래피 등 새로운 기법을 개척해 디자인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 알렉산드르 로드첸코 등 기라성 같은 거장들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러시아 아방가르드 작품은 미국과 유럽의 모더니즘 미술이 탄생하는 데도 큰 영향을 미쳤다. 한국의 단색화가 모더니즘 영향을 받은 점을 감안하면 단색화 탄생에도 기여한 셈이다. 그런데도 러시아 아방가르드는 동서 이념 대립과 냉전 때문에 서구권에서 저평가됐다.

이번 전시에서는 칸딘스키와 말레비치를 비롯한 아방가르드 작가 49명의 작품 총 75점을 만날 수 있다. 전시작 중 말레비치의 ‘절대주의’(1915년작·사진)는 현재까지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절대주의 초기작 중 하나로, 보험가액이 1200만유로(약 165억원)에 달할 정도로 가치가 높은 작품이다. 칸딘스키가 1909~1917년에 그린 ‘즉흥’ 연작 세 점에서는 그의 추상 세계 변천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로드첸코의 회화 ‘비구상적 구성’(1919년작), 러시아 전통 회화 양식을 기반으로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만들어낸 곤차로바의 ‘추수꾼들’(1911년작) 등도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전시는 오는 4월 17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