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길곤의 행정과 데이터과학]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는 정부는 없다
건강관리를 위해 매일 아침 조깅을 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도 달리기를 해야 할까? 이 딜레마의 근원에는 인간의 선택에 자리잡고 있는 비용과 편익의 문제가 있다.

정책을 세울 때 항상 편익과 비용 그리고 누구의 비용과 편익인지를 같이 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2021년 11월 취업자는 전년 동월 대비 55만 명 정도 증가했다. 2019년(30만 명)보다 약 25만 명의 추가 취업자 증가가 일어났다. 그런데 비용적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상황이 좀 달라진다. 2021년 일자리 사업에 약 30조원의 예산이 배정됐다. 이 예산은 2020년 대비 4조6000억원 정도 증가한 규모다. 추가적인 일자리 하나를 위해 약 1800만원을 지급한 것이다. 물론 이런 해석은 단순계산에 근거한 것이지만 편익만 강조하다 보면 투입된 비용의 효과성을 간과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비용편익을 균형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정책의 우선순위를 판단하기 어렵다. 2020년 한국에서 자살로 사망한 사람은 약 1만3000명이다. 반면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3000명이며, 코로나19 사망자는 900명에 달했다. 사람의 생명에 경중이 없음을 감안하면 교통사고나 코로나19 사망자를 예방하는 데 투입한 예산 일부를 자살 예방 관련 정책에 투입했다면 더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탈모로 고생하는 분들, 구직자, 무주택자를 보며 정부는 고민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 해답이 그분들에게 모발 이식을 해주고,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고, 모든 사람에게 집을 주는 건 아닐 것이다. 예산은 정해져 있어 영양실조로 고생하는 어린아이를 지원하거나, 등록금을 못 내 대학을 자퇴해야 하는 청년을 지원하는 등 더 효율적인 정책에 예산을 쓰지 못해 기회비용을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피터 싱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효율적 이타주의자》라는 책에서 이타적 행위의 효율성을 언급하고 있다. 예를 들어 4만달러를 들여 시각장애인 안내견을 훈련시켜 보급하는 정책도 중요하지만 같은 비용으로 실명 위기에 처한 400~2000명의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정책도 있음을 보여준다. 즉, 이타적 행위에도 효율성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것이다.

정부가 겸손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너무 많지만, 제한된 자원으로 인해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물론 국민의 생활 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큰 정부의 유혹’은 언제나 크고, 큰 정부가 해결할 수 있는 성취도 역시 절대 작지 않다. 하지만 제한된 자원과 그로 인한 효과에 대한 비용편익 분석이 반드시 필요하다. 500억원 이상 재정사업에 대해 예비타당성조사, 규제영향평가, 환경영향평가 등의 각종 평가제도를 정부가 운영하는 것도 관료나 정치인이 신중하게 정책을 결정하게 하려는 의도가 있다. 정부 정책에도 비용이라는 위험 부담이 필연적으로 수반된다. 때론 정부가 기업가처럼 이런 위험을 부담하며 적극적으로 정책을 밀어붙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정부 조직 특성상 수많은 이해관계를 조율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해본다면 정책은 더욱 조심스러워야 한다.

그럼 세상의 문제는 누가 풀 수 있을까? 그 답은 시민 역량에 달려 있다. 필자가 사는 동네는 쓰레기통이 거의 없어도 쓰레기로 뒤덮이지 않는다.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면 안 되고, 자발적으로 쓰레기를 줄이고자 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의 문제는 위대한 지도자나 강력한 정부가 풀기에는 너무 복잡하다. 수많은 복잡한 문제를 푸는 법을 배우려면 시민들의 역량을 강화하고 시민과 정부가 협력해 문제를 풀어가도록 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수많은 공약을 제시하며 정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 같은 환상을 심어주는 것을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강력한 정부를 강조하다 보면 어느 순간 시민의 문제해결 능력은 사라지기 때문이다. 중국의 강력한 코로나19 봉쇄정책이 지금 당장에는 좋아 보일 수 있으나 시민의 자발적 방역을 통한 전염병 극복 기회를 놓칠 수 있다. 민주주의 경험은 시민 역량과 민주주의가 함께 간다는 것이다. 큰 정부보다 겸손한 정부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