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한국은행이 저신용등급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을 매입할 특수목적기구(SPV) 운영을 놓고 막판까지 힘겨루기를 벌이고 있다.

14일 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은성수 금융위원장과 이주열 한은 총재는 최근 만나 저신용등급 회사채 및 CP 등 20조원어치 매입을 위한 SPV 설립 문제 등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양측은 한은이 산업은행에 대출한 다음 산은 산하에 SPV를 두는 방안과 한은이 SPV에 직접 대출하는 방안을 두고 토론을 벌였다. 정부와 한은은 다음주께 해당 방안 중 하나를 발표할 예정이다.

저신용등급 회사채 매입을 위한 SPV 설립은 지난달 22일 비상경제회의에서 발표한 고용 및 기업 안정대책에 포함된 내용이다. 당시 함께 발표된 40조원 규모 기간산업안정기금은 발표 직후 국회에서 관련법 개정안이 상정되고 통과되는 등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반면 20조원 규모 저신용등급 회사채 매입 문제는 3주 동안 갑론을박이 이어지며 지지부진하다. 한은이 자금을 제공한다는 큰 방향은 잡혔지만 구체적인 방법을 놓고 정부와 한은의 생각이 달라서다.

기획재정부와 금융위 등은 한은이 SPV에 직접 대출하는 미국 방식을 도입하자고 한은을 설득하는 중이다. 미국은 SPV에 정부가 출자하고 중앙은행이 대출해 준 뒤 해당 SPV에서 회사채 등을 사들이고 있다.

반면 한은 내에서는 산은을 징검다리 삼아 우회적으로 대출을 해주자는 목소리가 크다. 중앙은행이 직접 대출에 나섰다가 손실을 볼 경우 중앙은행의 정당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직접 대출을 다루기 위한 전문성 측면에서도 기업 여신 업무를 맡아온 산은이 더 적합하다는 논리도 내세우고 있다. 산은이 대출에 대한 담보로 국채 및 통화안정증권 등을 제공하는 방안까지 거론됐다.

기재부와 금융위는 각국 중앙은행의 역할이 점점 더 강해지는 추세인데 산은에 돈만 지원하고 손실은 전혀 보지 않겠다고 빠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막판까지 한은을 압박하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SPV에 직접 대출하는 방안도 완전 배제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