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비롯한 유럽연합(EU) 회원국이 경기 부양을 위해 대규모 재정투입 준비에 나섰다. 유럽중앙은행(ECB)이 마이너스 금리 확대 및 양적완화에 나섰지만 통화정책만으로는 유럽 경제를 회복시키기가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13일부터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리고 있는 EU 경제·재무장관 회의에서 EU의 재정준칙을 완화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고 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EU 회원국 정부들이 확장적 재정정책을 통해 경기를 부양시켜야 한다는 ECB의 권고에 따른 것이다.

ECB는 12일 통화정책회의를 열고 예금금리를 현행 연 -0.4%에서 연 -0.5%로 인하했다. 예금금리는 시중은행이 ECB에 자금을 예치할 때 적용하는 금리다. ECB가 금리를 내린 것은 2016년 3월 이후 처음이다. 이와 함께 ECB는 오는 11월부터 월 200억유로 규모의 채권을 매입하는 등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양적완화 정책을 재개하기로 했다. 다만 통화정책만으로는 기대했던 정책 효과를 거둘 수 없다는 것이 ECB의 판단이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경기 약세는 예상보다 더 오래갈 것”이라며 “모든 정부는 효과적이고 적절한 방법을 통해 성장 친화적인 방향으로 재정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밝혔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통화정책은 ECB가 맡지만 재정정책은 회원국이 독자 운영한다. 다만 회원국의 경제적 격차 축소 및 재정위기 확산을 막기 위해 EU는 재정정책 준칙인 안정·성장협약(SGP)을 시행하고 있다.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3% 이내, 정부부채는 GDP의 60% 이하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2011년 남유럽을 강타한 재정위기 이후 이 재정준칙은 지금까지 엄격하게 지켜져왔다.

그러나 올 들어 경기침체가 가속화하면서 이 재정준칙을 완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졌다. 유럽 최대 경제대국인 독일이 지난 2분기에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것이 결정타였다. 독일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도 균형예산 등 엄격한 재정준칙을 강조한 대표적인 국가다. 하지만 올라프 숄츠 독일 재무장관은 10일 경기 부양을 위해 수백억유로에 달하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할 수 있다고 밝혔다. 새 연립정부 출범을 앞둔 이탈리아 역시 막대한 부채 규모에도 불구하고 경기 부양을 위해 대규모 재정을 투입하겠다는 계획이다.

FT에 따르면 재정여력이 충분한 북유럽 국가들은 재정준칙 규제 완화에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독일을 제외한 나머지 유로존 경제대국들은 찬성하고 있어 규제 완화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