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7월 21일 오전 6시11분

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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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이 서울 비핵심 권역에 있는 업무용(오피스) 빌딩 매각에 나섰다. 대신 가격은 다소 높지만 임차 수요가 안정적인 중심업무지구를 비롯해 강남, 여의도 등 핵심 권역 오피스 빌딩과 전자상거래 증가로 수요가 급증하는 물류센터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서울 오피스 빌딩 시장의 활황이 이어지고 있는 올해를 본격적인 경기 하강에 대비해 국내 부동산 포트폴리오를 조정할 적기로 판단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비핵심 권역 부동산 잇단 ‘팔자’

21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최근 서울 충무로에 있는 남산스퀘어(옛 극동빌딩)를 팔기 위해 매각주관사 선정 작업에 들어갔다. 이번주에 주관사 선정을 마무리하고 매각 작업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남산스퀘어는 국민연금이 2009년 지이자산관리(현 코레이트투자운용)가 설립한 리츠(위탁관리부동산투자회사)를 통해 사들인 빌딩이다. 1997년 외환위기로 극동건설이 부도를 내면서 호주계 투자은행인 맥쿼리은행에 팔렸다가 2009년 국민연금이 약 3200억원에 사들였다.
[마켓인사이트] 경기 하강기 대비?…非핵심 부동산 내다팔고 '노른자위' 투자하는 국민연금
국민연금이 투자한 신도림 디큐브시티 오피스(호텔·백화점 제외)도 지난 6월 딜로이트안진을 매각주관사로 선정해 매각 작업을 하고 있다. 디큐브시티는 2011년 완공된 대규모 복합단지로, JR투자운용이 세운 리츠가 소유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이 리츠 지분 53.94%를 가지고 있는 최대 투자자다.

업계에선 올해 하반기 중 국민연금이 순화동 오렌지라이프 빌딩(2007년 인수), 쌍림동 CJ제일제당센터(2010년 인수) 등도 매물로 내놓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2007년과 2008년에 각각 인수한 영등포 YP센터와 수서 로즈데일빌딩을 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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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이 매물로 내놓은 오피스 빌딩의 공통점은 서울 3대 도심으로 꼽히는 중심업무지구(CBD), 강남권역(GBD), 여의도권역(YBD)이 아니라 외곽 지역에 있거나 도심권에 있더라도 핵심 지역에선 다소 벗어나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국내 오피스 빌딩 시장이 침체기를 맞았을 때 국민연금이 위탁운용사를 통해 사들인 자산이다.

국민연금의 최근 투자는 종로, 강남 테헤란로 등 핵심 도심권에 쏠리고 있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총사업비 2조1000억원 규모인 강남 르네상스호텔 부지 재개발 사업에 5000억원을 투자했다. 최근 이지스자산운용이 조성한 ‘밸류애드(가치부가형) 펀드’를 통해 물류센터로 활용될 것으로 예상되는 한진중공업 인천 율도 부지에 투자하기도 했다.

국민연금은 올 4월 기준 국내 부동산에 7조3479억원, 인프라에 8조1847억원을 각각 투자하고 있다. 총운용자산(689조9599억원)의 약 2.2% 수준이다.
남산스퀘어 빌딩·오렌지라이프 빌딩·CJ제일제당센터
남산스퀘어 빌딩·오렌지라이프 빌딩·CJ제일제당센터
“지금이 투자회수 적기”

부동산투자업계에선 국민연금이 경기 하강에 대비해 앞으로 수익성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비핵심 자산을 팔기 시작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지난해 서울 오피스 시장에는 사상 최대 규모인 11조6000억원의 투자금이 몰렸다. 올 상반기에도 6조4000억원이 흘러들어 상반기 기준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하지만 경기 하강이 본격화하면 중소·중견기업이 주로 임차해 쓰고 있는 도심 변두리나 서브마켓(도심 외곽지역)을 중심으로 부동산 가격이 약세로 돌아설 것이란 전망이 많다. 글로벌 부동산 컨설팅업체인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의 진원창 리서치팀장은 “국민연금이 매물로 내놓은 빌딩들은 대부분 안정적인 대형 임차인을 확보하고 있지만, 오피스 시장의 활황이 끝나면 매각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있는 곳들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연금이 도심 외곽 지역까지 활황세가 퍼져 있는 지금을 투자회수(exit)의 적기로 본 것 같다”고 분석했다.

홍지은 세빌스코리아 상무는 “경기 하강기엔 수익률은 다소 낮더라도 안정적인 도심 핵심 자산에 투자하는 것이 낫다”고 했다. 그는 “안정적인 임차 수요를 보장하는 대기업뿐 아니라 사모펀드, 벤처캐피털,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등 최근 성장하는 산업군 역시 네트워킹에 이점이 있는 도심을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황정환/이현일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