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글로벌 금융위기 없었으면 트럼프 대통령도 없었다
2007년 8월 9일 오전, 프랑스 대형 금융회사 BNP파리바그룹은 자사가 운영하는 3개 펀드의 자산 동결을 발표했다. BNP파리바는 “미국 증권화 시장의 일부 부문에서 일어난 완전한 유동성 증발로 인해 일부 자산에 대해 공정하게 가치를 평가하는 일이 불가능해졌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불러온 ‘서브프라임 사태’를 공식화한 첫 발표였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훗날 “금융시장에서 이날은 제1차 세계대전이 공식적으로 발발한 1914년 8월 4일의 재현이었다”며 “그날을 기점으로 번영과 평화로 가득찬 좋은 시절이 막을 내리고 신용경색이라는 지루한 참호전이 시작됐다”고 논평했다. 이로부터 약 1년 뒤인 2008년 9월 15일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발생하며 금융시장의 붕괴가 일어났다.

경제사학자인 애덤 투즈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가 쓴 《붕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간의 세계 경제사를 다룬다. 위기의 진앙지 미국 유럽에서부터 중국 신흥시장까지 전 지구적으로 금융위기가 확산되는 상황과 과정을 꼼꼼하게 살핀다. 이후 대응 과정과 방법을 진단하며 세계 정치와 경제가 어떻게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 분석한다.

저자는 조지아와 우크라이나 위기,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등을 금융위기와 연결해 설명한다. 이들 사건을 2008년 이후 각국의 금융위기 탈출 방안이 야기한 ‘부작용’으로 바라본다.

유럽에서는 2010년 이후 발생한 유로존 위기로 유럽 기업과 국민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유럽연합 총생산에서 1~1.5%에 불과한 그리스의 위기는 쉽게 봉합될 수 있었지만 대재앙으로 이어졌다. 2009년 이후 미국 경제는 계속 발전했지만 유로존 국가들은 1930년대를 방불케 하는 대공황을 경험했다. 유로존 위기에 대한 서툰 처리의 결과로 좌파와 우파 간 극한 대립이 일어났다. 정부의 비참한 실패를 목격한 유로존 위기 이후 유럽의 민주주의는 대중 인기에만 영합하는 ‘포퓰리즘’으로 돌변했다.

투즈 교수는 금융위기 이후 10년의 역사가 2016년 미국 대선에서 ‘정치적 이단아’인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2008년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외교정책과 경제정책을 이끌던 부시 행정부가 굴욕적인 실패를 경험한다. 중국은 역사에 기록될 만한 엄청난 규모의 올림픽을 치러내면서 미국과 양강 체제로 올라섰고, 러시아 군대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하기를 희망하는 조지아를 침공하며 서방 국가와 갈등을 빚기 시작했다. 이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대대적 공격과 2016년 미국 대선 개입 의혹으로 미국의 주도권이 흔들리는 징후를 분명히 보여줬다.

저자는 2008년 금융위기로 가장 고통을 겪은 신흥시장 국가로 러시아와 한국을 꼽는다. 두 나라는 수출 주도형 경제 국가라는 점과 미국, 유럽과 금융 측면에서 깊게 연결돼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두 국가는 무역수지에서 흑자를 기록하고 외환보유액이 충분함에도 극심한 위기를 겪었다.

그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한국의 은행 시스템은 달러화를 조달하기 위한 국제 화폐 시장과 원화와 달러를 손쉽게 거래할 수 있는 외환시장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다”며 “한국처럼 막대한 외화를 보유한 국가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다는 것은 경제가 튼튼한 국가라도 세계적인 충격파에 얼마나 취약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고 말한다. 그는 “혼란은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라며 “지난 10년간 후폭풍이 이어졌으며, 위기는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