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시기에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르에서는 포도 수확 축제가 열린다. 참가자들은 몽마르트르 거리 장터에서 와인잔을 부딪치며 “아 보트르 상테( votre sant)”를 외친다. 런던의 퇴근시간, 펍(pub)에 모인 사람들은 “치어스(cheers)”라고 건배하며 우정의 대화를 나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건배는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의식 중 하나다. 서양에서는 건배가 독살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잔을 부딪칠 때 술이 넘쳐 섞이게 함으로써 독이 없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시작됐다고 한다. 기원전 27년 로마 상원에서 토론 후 키케로가 잔을 꺼냈다. 노예가 와서 큰 주전자에 있던 와인을 따랐다. 상원 의원들의 잔도 같은 와인으로 채워졌다. 이윽고 키케로가 잔을 머리 위로 올리며 외쳤다. “주신(酒神) 바쿠스를 위하여!” 상원 의원들도 잔을 들어 제창했다. 그러나 대부분 상원 의원들은 키케로가 잔을 들이켜고 한참이 지난 후 이상 없음을 확인한 뒤에야 비로소 와인을 마셨다. 음모와 암살이 난무하던 시기에 건배가 신뢰와 진실을 상징하는 의식이 된 배경이다. 이에 비해 동양에서의 건배는 우의와 친목 도모의 성격이 강하다.
유럽에선 주로 "건강을 위하여"
영미권에서 건배를 “토스트(toast)”라고 한다. 셰익스피어가 쓴 희극 ‘윈저의 즐거운 아낙네들’에서 볼 수 있듯이, 와인이나 맥주를 마실 때 토스트 한 조각을 담가 먹던 관행에서 유래했다. 술에 토스트를 넣으면 신맛을 없애면서 맛을 더 좋게 한다고 믿었던 데서 시작됐다고 한다. 토스트를 아침식사로 먹는 것은 비교적 현대적 현상이다.
17~18세기에 서양에서는 건배가 유행했고 건배 사회자(toastmaster)가 등장했다. 그는 건배가 지나치지 않도록 조절하면서 사람들에게 건배 제의의 기회를 주는 역할을 맡았다. 당시에는 여성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기 위한 건배가 성행했다. 어떤 신사는 자기 몸을 칼로 찔러 나온 피를 술과 섞은 다음 여성을 위해 건배함으로써 애정과 헌신을 과시했다. 여성의 아름다움을 찬미하기 위해 여성의 신발에 술을 채워 건배하는 사람도 있었다. 과도한 건배나 만취로 인한 사고가 잦자 건배를 금지하자는 움직임도 있었으나 점차 문명화되고 절제된 건배 의식이 확립됐다.
건배사는 나라에 따라 다르다. 유럽에서는 “건강을 위하여”가 주로 사용되나 동양에서는 잔을 비우자는 “건배”가 많이 쓰인다. 영미권에서는 “치어스”가 주로 쓰이나 잔을 비우자는 “보텀스 업(bottoms up)”도 사용된다.
프랑스에서는 “아 보트르 상테”, 독일에서는 “프로스트”나 “줌 볼(Zum Wohl)”, 스페인어 사용국가에서는 “살룻(Salud)”, 브라질에서는 “사우지(Saude)”, 덴마크, 스웨덴 등 북유럽에서는 “스콜”하고 외친다. 모두 ‘건강을 위해’라는 뜻이다. 러시아에서는 다 마시자라는 뜻의 “다 드나”가 쓰인다. 한국에서는 “건배”, 중국에서는 “칸페이”, 일본에서는 “간파이”라고 말한다.
물을 채우고 건배하면 안돼
한국에서는 군사문화의 잔재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위하여”가 자주 사용된다. 최근에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유머 건배사와 스토리 건배사가 유행하고 있다. 재미있고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건배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서양에서는 건배를 외친 후 약간만 마시는 것이 일반적이다. 술을 못하는 사람의 경우 주스로 건배하거나 술잔을 살짝 입에 댄 후 내려놓는 것이 좋다. 물을 채워 건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고대 그리스에서 죽은 이를 보낼 때 잔에 물을 채우고 건배를 한 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물로 건배하는 것은 상대방의 죽음 또는 불행을 비는 것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 동양에서는 제의자가 ‘건배’를 제안하면 잔을 비우는 것이 예의다. 중국이나 홍콩에서는 잔을 비웠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뒤집어 식탁 위에 세우기도 한다.
건배는 우정과 화합의 상징이다. 외국인의 식사 초대를 받았을 경우 그 나라 말로 건배사를 하면 상대방과의 거리를 좁히는 데 도움이 된다. 건배사를 영어로 하는 경우에도 마지막은 그 나라 언어로 하는 것이 좋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룰라 전 브라질 대통령이 주최한 만찬에서 포르투갈어 “사우지”로 건배사를 마쳤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스페인어 사용국가에서 늘 “살룻”을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