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연수원 9~10기(사법시험 1977~1978년 합격)가 법조인의 꿈을 키워갈 무렵 한국의 사법부는 암울했다. 1971년 ‘1차 사법파동’이 일어났고, 이듬해에는 유신헌법이 공표됐다. 1차 사법파동은 정부가 사법부를 탄압하려는 목적으로 검찰이 단순 향응 수수 혐의를 받는 현직 판사 3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전국 판사 415명 가운데 150여 명이 사표를 제출한 사건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3년부터 대법원장을 뒤로하고 직접 법관을 임명했다. 9기가 연수원을 수료한 1979년에는 부마 민주항쟁이, 10기가 연수를 마친 1980년에는 5·18 광주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다. 법조계는 독재의 그림자 속에 숨을 죽여야 했지만 ‘난세의 영웅’도 다수 등장했다.

임승순 ‘조세법’ 20년째 스테디셀러

연수원 9기는 다른 기수에 비해 정계에 진출한 사례가 드물다. 대형 법률회사(로펌)에서 전문성으로 승부를 건 법조인이 많다. 사시 19회 수석은 판사 출신인 권오곤 김앤장 변호사였다. 권 변호사는 국제법 전문가로 유엔의 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ICTY) 부소장을 지냈다. 현재 국제형사재판소(ICC) 당사국총회 의장을 맡고 있다.

사단법인 기술과법연구소 이사장인 손경한 변호사는 지식재산권 분야 선구자로 꼽힌다. 1977년 사시에 합격했지만 정부 신원조회 과정에서 세상을 떠난 줄 알았던 아버지가 북한 고위 관료라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연수원에 제때 들어가지 못했다. 박정희 정부는 뒤늦게 손 변호사 탓이 아니라며 연수원 교육을 허락했다. 그는 1990년 일본 도쿄에서 40년 만에 아버지와 극적으로 상봉했다.

지난해 5월 문재인 정부의 첫 헌법재판소 소장으로 내정됐다가 낙마한 김이수 전 헌재 재판관도 연수원 9기다. 자유한국당은 김 전 헌재 재판관이 통합진보당 해산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임명을 거부했다. 헌재 소장 임명안이 국회에서 부결된 것은 처음이었다.
연수원 9~10기 가운데는 검사보다 판사를 선택한 인물이 많았다. 박정희 정권에 대한 반감으로 행정부(검찰)보다는 사법부(법원)를 선호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을 거친 이인재 태평양 변호사, 서울행정법원장 출신인 김용균 바른 변호사(공익법인 정 이사장), 초대 파산부 재판장(1999년)을 지낸 나천수 태평양 변호사, 서울가정법원장을 맡았던 유원규 광장 변호사 등이 법원에서 두각을 나타낸 연수원 9기 출신이다. 유 변호사의 부친 고(故) 유현석 변호사(1952년 제1회 판검사 특별임용시험 합격)는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사건의 대통령 측 법률대리단 수장이었다.

검찰 출신으로는 임채진 전 검찰총장이 있다. 연수원 9기로 같이 입소했던 한 변호사는 그에 대해 “사형선고를 내리기가 두렵다”는 이유로 판사 대신 검사를 택했던 마음 여린 친구로 기억했다. 일부 인사는 임 전 총장이 매사에 고민이 많다며 ‘임걱정’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세상을 떠나면서 총장직에서 물러났다.

조직폭력배에게 ‘악명’이 높았던 조승식 변호사는 영화 ‘범죄와의 전쟁’의 강골 검사 조범석(곽도원 분)의 실제 모델이다. 1990년 수사관들과 함께 조폭 두목 김태촌 씨를 현장에서 검거한 일화가 잘 알려져 있다. 로펌에선 ‘미스터 조세’로 불리는 임승순 화우 대표변호사가 연수원 9기다. 그가 저술한 《조세법》은 전문 서적 분야에서 20년간 스테디셀러로 자리하고 있다.

대법관·헌재 재판관 5명 배출한 10기

사법시험 합격자 수는 1978년 처음으로 100명을 돌파했는데 이들이 연수원 10기다. 국정농단 의혹 사건의 박영수 특별검사가 연수원 시절 총무를 맡았다. 동기들은 친화력이 좋은 박 특검에게 만장일치로 총무를 맡겼다.

김용원 변호사는 부산지검 울산지청 검사로 재직 중이던 1987년 형제복지원의 인권 유린을 세상에 처음 알렸다. 검찰 내부를 고발한 그의 저서 《브레이크 없는 벤츠》(1993년)는 20만 부가 팔려 나가며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서울중앙지검장 출신인 명동성 변호사는 세종의 대표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권재진 변호사는 이명박 정부 시절에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과 법무부 장관을 지내는 등 승승장구했다. 인천지검장 출신 이훈규 변호사는 2012년 차의과대 총장으로 취임해 지난 2월 세 번째 연임에 성공했다. 천안지청장을 지낸 추호경 대륙아주 고문변호사는 2012~2015년 초대 의료분쟁조정중재원장으로 일했다.

10기 중에선 사법부 고위직까지 올라간 인물이 많다. 민일영 이상훈 전 대법관을 비롯해 법조계 신망이 두터운 조용호 헌재 재판관, 이진성 전 헌재 소장, 목영준 전 헌재 재판관 등이 있다. 목 전 재판관은 지난 4월 풍파에 시달리는 한진그룹의 준법위원장으로 영입됐다.

10기에는 율촌의 핵심 구성원이 모여 있다. 국제조세와 공정거래 전문가인 윤세리 대표와 송무그룹 성장을 이끈 윤용섭 차기 대표(내년 2월부터), 조세그룹을 담당하는 소순무 변호사(공익법인 온율 이사장) 등이 모두 연수원 10기다.

정계에 진출한 이주영 한국당 의원(5선), 여상규 한국당 의원(3선), 이상수 전 새천년민주당 의원(3선) 등 3명은 판사 출신이다. 지난 7월 국회 부의장으로 선출된 이주영 의원은 2014년 세월호 사건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130일 넘게 수염을 깎지 않은 채 진도 팽목항 현장을 지켜 대중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서울대 법대를 수석졸업한 여 의원은 뇌졸중으로 쓰러진 어머니의 간병비를 마련하기 위해 45세 나이(1993년)에 판사직을 던지고 변호사로 개업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법관 탄핵, 검경 수사권 조정 등 이슈가 많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지난 10월 국감에선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을 상대로 지역구(경남 사천) 기업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검찰 감사원의 무리한 수사와 조사 등의 여파로 17조원 규모 국제 입찰에서 떨어진 사건을 지적해 관심을 모았다. 이선희 변호사는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와 양육비이행관리원장을 거쳤고 대법관 후보에도 올랐다. 10기 동기회 회장을 맡고 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