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제만 신풍제약 대표가 서울 역삼동 사무실에서 회사의 혁신 신약 개발 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유제만 신풍제약 대표가 서울 역삼동 사무실에서 회사의 혁신 신약 개발 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이르면 내년 뇌졸중 신약의 임상시험 2상이 마무리됩니다. 진행상황이 상당히 고무적입니다. 이를 시작으로 ‘혁신 신약(first in class)’ 개발에 적극 나설 계획입니다.”

유제만 신풍제약 대표(62)는 개발 중인 뇌졸중 신약 후보물질(파이프라인) ‘SP-8203’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신풍제약은 최근 SP-8203의 임상 2a상을 마치고 식품의약품안전처에 2b상 허가 신청을 냈다. 결과는 이르면 이달 말 나온다.

유 대표는 “8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a상에서 SP-8203가 부작용이 없고 인체 안전성이 높다는 걸 확인했다”며 “약효 측면에서도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를 얻었다”고 말했다. 그는 “2b상에서는 임상 대상을 162명으로 대폭 늘려 약물의 유효성을 입증하는데 주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유 대표는 1979년 서울대 약대를 졸업했다. 1981년 동화약품 연구원으로 제약업계에 첫 발을 디뎠다. 현업에 종사하며 서울대 약대 대학원에서 석사(1988년), 박사(1998년) 학위를 받았다. 이후 동화약품 연구소장, 제일약품 부사장 등을 거쳤다. 2011년 신풍제약 R&D본부장으로 영입됐고 2014년 대표를 맡았다. 2001년 한국경제신문이 주관하는 다산기술상을 받았다.

현재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뇌졸중 약은 베링거인겔하임의 혈전용해제(tPA) ‘액티라제’가 유일하다. 그런데 액티라제는 투약 골든타임이 짧다는 단점이 있다. 뇌졸중이 발병하고 3~4시간 내에 투약하지 않으면 약효가 떨어지고 부작용이 커진다.

SP-8203은 액티라제와 병용투여 용법으로 개발된다. 액티라제의 골든타임을 6시간으로 늘리고 부작용을 줄이는 게 목표다. 유 대표는 “2b상에서 환자군을 2개로 나눠 한 쪽에는 액티라제만, 다른 쪽에는 액티라제와 SP-8203을 함께 투약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2b상 종료 예상시기는 내년 말이다.

SP-8203는 체내에서 어떻게 약효를 낼까. 뇌졸중은 크게 출혈성과 허혈성으로 나뉜다. 출혈성은 뇌혈관이 터지는 것, 허혈성은 막히는 것을 말한다. 뇌졸중의 90% 정도는 허혈성이다.

허혈성 뇌졸중이 생기면 인체가 막힌 혈관을 뚫기 위해 단백질 성분을 제거하는 내인성 인자 ‘MMP’를 활성화한다. 유 대표는 “MMP를 지나치게 활성화하면 추가적인 출혈이 생기기 쉽다”며 “혈관이 갑자기 뚫려 뇌에 활성산소가 과다공급되고 이 때문에 뇌세포가 죽는 부작용도 발생한다”고 말했다.

유 대표는 “SP-8203은 MMP 활성화를 억제하는 약”이라며 “뇌졸중으로 인한 사망자는 세계적으로 매년 600만명에 이르는 만큼 개발에 성공하면 큰 수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라이선스아웃 가능성도 열어놓고 있다.
유제만 신풍제약 대표가 서울 역삼동 사무실에서 말라리아 치료제 ‘피라맥스’의 수출 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앞에 놓인 게 피라맥스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유제만 신풍제약 대표가 서울 역삼동 사무실에서 말라리아 치료제 ‘피라맥스’의 수출 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앞에 놓인 게 피라맥스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신풍제약은 최근 말라리아 약 '피라맥스'의 판로를 넓히는데도 주력하고 있다. 지금까지 아프리카 18개국 및 캄보디아의 정부·기업과 피라맥스 수출 계약을 맺었다. 개발도상국에 피라맥스를 공급하기 위해 세계보건기구(WHO), 유니세프 등과 협력하고 있다. 말라리아 약 시장의 10~15%를 점유하는 게 목표다.

앞서 신풍제약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가 설립한 비영리단체 말라리리아의약품벤처재단(MMV)과 WHO의 지원을 받아 2000년 피라맥스 개발을 시작했다. 피라맥스는 2011년 식약처에서, 이듬해 유럽의약품청(EMA)에서 판매 허가를 받았다. 지난 9월에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돼 현지 허가 절차를 빠르게 진행할 수 있게 됐다.

유 대표는 “피라맥스는 어린이가 먹기 편한 과립제(가루약의 일종)로도 나온다는 점에서 알약 제형인 다른 말라리아 약과 다르다”고 말했다. 과립제 말라리아 약은 신풍제약이 세계 최초로 만들었다. 그는 “세계 말라리아 사망자 수는 연간 100만명이며 이 가운데 70%는 5세 이하 어린이여서 과립제 수요가 크다”고 설명했다.

다른 말라리아 약은 우유 같은 고지방식을 먹어야 체내 흡수가 잘 되는데 피라맥스는 음식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도 장점이다. 피라맥스과립은 2015년 EMA, 2016년 식약처 허가를 받았다.

피라맥스 매출이 아직 크지는 않다. 주로 개도국에서 필요로 하는 공중보건 의약품이기 때문에 판로가 지금보다 넓어져도 수익 확대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유 대표는 다른 면에서 피라맥스 개발의 의의를 높이 평가했다.

유 대표는 “피라맥스 개발 경험을 통해 회사의 신약 개발 역량이 크게 높아졌다”며 “이런 경험이 SP-8203 개발로 이어졌다”고 강조했다. 그는 “공중보건 의약품을 만들어 제약회사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덧붙였다.

유 대표는 “SP-8203을 시작으로 앞으로 다른 혁신 신약도 줄줄이 개발할 것”이라며 “혈관질환 등에 쓰는 항혈소판제 파이프라인 ‘SP-8008’의 전임상을 마쳤으며 내년 상반기에 유럽에서 임상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골관절염 파이프라인 ‘하이알원(HyalOne)’으로는 국내 임상 1상을 하고 있다.

신풍제약은 1970년대 구충제를 개발해 보급하는 등 정부를 도와 기생충 퇴치사업을 한 것으로 잘 알려진 회사다. 전문의약품 판매가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대표약은 관절 기능 개선제인 ‘하이알’과 ‘하이알포르테’다.

신풍제약은 최근 우여곡절을 여러 번 겪었다. 분식회계를 했다가 2011년 적발돼 상장폐지 위기를 겪었다. 직후 불법 리베이트 자금 조성으로 재판을 받았다.

최근에는 재고정리를 하느라 실적이 나빠졌다. 2013년 248억여원이었던 영업이익은 2015년 42억여원까지 떨어졌다. 지난해에는 90억여원으로 개선됐으나 아직 하락 전 수준에는 못미친다.

유 대표는 “재고정리가 거의 끝나 올해 약간 개선된 실적을 낸 뒤 내년에는 크게 치고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며 “영업마케팅 전략을 강화하는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혁신 신약 개발을 위해 바이오벤처기업에서 파이프라인을 사오는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