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사진)의 삼성전자 방문을 앞두고 김 부총리와 청와대 정책실 간 이상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김 부총리의 방문에 대해 청와대가 ‘투자 구걸’이란 표현까지 쓰며 제동을 건 것으로 알려지자, 김 부총리가 반박 입장문을 발표하는 등 양측 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일각에선 지난 5월 최저임금을 둘러싸고 빚어진 김 부총리와 청와대 정책실 참모 간 갈등이 이번 삼성 방문 건을 계기로 2라운드로 확대되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김 부총리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간 격주 회동이 한 달째 감감무소식인 것도 이런 관측에 힘을 보태고 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갈등 2라운드… 이번엔 '투자 구걸' 논란
◆靑, 부총리 ‘투자 세일즈’ 제동

이번 갈등은 김 부총리가 지난달 삼성 방문 계획을 직접 밝히면서 촉발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부총리는 지난달 2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8월 초 삼성을 방문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혁신성장에 도움이 된다면 기업의 규모·업종을 따지지 않고 만날 것”이라고 방문 배경을 설명했다.

김 부총리가 지난해 말 LG를 시작으로 현대자동차, SK, 신세계 등 대기업을 연이어 방문한 터라 삼성 방문 자체는 어느 정도 예상된 수순이었다. 문제는 이어진 돌발 발언이었다. 김 부총리는 삼성 방문 계획을 밝히면서 “조만간 한 대기업에서 3조~4조원 규모, 중기적으로 15조원 규모 투자계획이 발표될 것으로 알고 있다”고 소개했다. 해당 기업이 투자계획을 발표하기 전에 김 부총리가 선수를 친 모양새였다. 김 부총리가 지목한 대기업인 SK하이닉스는 다음날 경기 이천에 15조원을 투입해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 공장을 신설한다는 사업계획을 발표했다. 김 부총리가 지난 3월 SK를 방문해 이번 투자를 이끌어냈다는 취지로 해석될 만한 발언이었다.

이를 놓고 청와대 정책실에서는 김 부총리가 ‘오버하고 있다’는 부정적 기류가 형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참모는 특히 삼성의 경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뇌물공여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김 부총리의 행보가 ‘팔 비틀기’로 보일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는 후문이다.

◆‘투자 구걸’ 논란에 갈등 증폭

갈등은 지난 3일 청와대가 한 언론에 ‘기업에 투자·고용을 구걸하는 것처럼 비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드러내면서 증폭됐다. 기재부는 김 부총리의 삼성 방문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청와대가 일부러 언론에 흘린 것으로 보고 있다. 김 부총리는 이례적으로 본인 명의의 입장문을 통해 “정부는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대기업에 의지해 투자나 고용을 늘리려는 의도도, 계획도 전혀 없다”고 반박했다. 특히 ‘구걸 논란’에는 “삼성전자 방문 계획과 관련해 의도하지 않은 논란이 야기되는 것은 유감”이라며 “국민이 바라는 혁신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한 불쾌감을 나타냈다. 언론 보도를 반박하는 형식을 갖췄지만 실제로는 청와대 정책실을 겨냥한 불만의 표출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번 갈등에도 김 부총리는 6일 오전 10시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을 방문할 예정이다. 이 부회장과의 간담회도 예정대로 한다. 다만 갈등의 여파로 삼성은 당초 김 부총리 방문에 맞춰 100조원 이상의 투자 계획을 발표하려던 것을 잠정 연기했다.

◆‘돌아올 수 없는 강’ 건너나

김 부총리와 청와대 정책실 간 갈등의 골은 깊어질 대로 깊어졌다. 양측은 소득주도 성장의 부작용을 놓고 이미 한 차례 거세게 부딪쳤다. 문재인 대통령이 올해 1분기 저소득층 가계소득 감소와 관련해 지난 5월 청와대에서 정책참모 및 경제장관들을 소집해 연 ‘가계소득동향 점검회의’에서다. 김 부총리는 이 자리에서 올해 최저임금 16.4% 인상 등 소득주도 성장 정책의 부작용을 언급했고, 정책실은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옹호하는 발언을 쏟아내면서 대립했다.

김 부총리와 장 실장 간의 불화설도 끊이지 않고 있다. 김 부총리는 지난 6월 고위당정청회의가 끝난 뒤 “장 실장과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다”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침묵으로 응수했다. 김 부총리와 장 실장은 팀워크 강화를 위해 지난달 6일 조찬회동을 시작으로 2주에 한 번씩 정례 모임을 하기로 했으나 아직까지 두 번째 회동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표면적으로는 해외 출장 등 일정상 문제를 들고 있지만 최근 벌어진 갈등과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도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김 부총리는 혁신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대해 자신만의 확고한 신념이 있다”며 “앞으로도 청와대 정책실과 부딪칠 일이 적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