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남산자락에 있는 회현(會賢)동은 ‘어진 선비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다산 정약용, ‘오성과 한음’의 이항복·이덕형, 정승 12명을 배출한 정광필 집안 등이 살았던 지역이다. 하지만 지금은 쪽방과 소규모 노후 점포들이 어지럽게 자리잡고 있다. 남산 고도제한에 막혀 개발의 사각지대에 머문 탓이다. 회현동 일대 50만㎡가 북촌, 서촌과 같은 서울 도심 내 역사적 명소 ‘남촌’으로 재탄생한다. 서울시가 지역 내 역사적 거점을 개발하는 방식의 재생사업을 통해 남촌만의 브랜드와 지역 문화를 만들기로 했다. 서울시는 이를 위해 내년까지 총 158억원을 투입한다.
북촌·서촌처럼…'낡은 주거지' 남촌도 서울명소 된다
조선시대 양반문화의 한 축

회현동 일대는 북촌과 함께 옛 서울의 대표적인 주거지였다. 청계천을 기준으로 위쪽인 가회동 일대는 북촌, 아래인 남산 일대는 남촌으로 불렸다. ‘남산에서 빚은 술이 맛이 좋고 북부에서 지은 떡이 맛이 좋다(남주북병·南酒北餠)’는 옛말이 내려올 정도로 조선시대 양반문화의 한 축을 차지했다.

하지만 현재는 가회동과 회현동의 명암이 극명하게 갈려 있다. 가회동 일대 북촌은 2000년부터 ‘북촌 가꾸기 기본계획’, ‘한옥 조례 제정’, ‘한옥선언’ 등의 정책지원을 바탕으로 서울의 관광 명소로 자리잡았다. 반면 남촌은 1979년 ‘회현 도시환경 정비구역’ 지정 이후 관심에서 멀어졌다. 남산, 남대문시장, 명동 등 주요 명소에 접해 있으면서도 20세기 초반의 모습에 머물러 있다.

서울시는 이 지역의 역사·문화자원을 발굴해 남촌만의 브랜드와 지역 정체성을 만들기로 했다. 우선 지역 내 5대 거점을 발굴키로 했다. 우리은행 본점 앞에 있는 500년 수령의 은행나무가 대표적이다. 조선 중종 때 영의정 정광필이 꿈에서 이 나무에 허리띠 12개를 묶은 뒤 집안에서 400여 년간 12명의 정승을 배출했다는 설화를 품고 있다. 서울시는 이 주변을 보행 중심 광장으로 조성해 남촌의 얼굴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단원 김홍도의 스승인 표암 강세황의 집터는 남촌 기념공간으로 꾸민다. 현재는 경로당이 들어서 있다. 회현제2시민아파트는 문화예술인을 위한 주거 겸 창작공간으로 조성키로 했다. 홍콩 복합문화예술공간인 PMQ를 벤치마킹했다. 일식 가옥 등 20세기 초 건축양식이 밀집한 회현동 1가 100의 116 일대는 ‘건축자산 일번지’로 재생한다. 주택 개량 비용을 최대 6000만원까지 보조하고, 건축조례 개정 등 제도적 지원에 나선다. 서울시 관계자는 “재생 대상 선정을 위해 지역 내 건축물의 가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남산 소파로 아래 1만7872㎡에는 무장애 산책로와 잠두봉 전망쉼터, 아이들을 위한 생태숲 놀이터를 설치한다. 서울시는 이들 5대 거점을 잇는 남촌 옛길을 되살려 ‘서울로 7017’부터 남산, 명동 등을 연결하는 ‘보행 네트워크’를 완성할 계획이다.

“축제 통해 남촌 정체성 만들 것”

주민과 상인이 주도적으로 남촌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사업도 지원한다. 옛길과 건축자산을 활용한 탐방로를 조성하고 남산 백범광장, 은행나무 축제와 연계해 지역 축제도 상설화하기로 했다. 옛말 ‘남주북병’을 되살려 남촌지역의 전통주를 개발하고 방문객 유치를 위해 게스트하우스를 통합 운영하는 프로그램도 마련한다.

서울시는 올해 80억원을 투입해 건축자산 앵커시설, 남산공원 생태숲 개발을 우선 추진키로 했다. 이번 계획은 회현동을 비롯해 중림동, 서계동, 남대문시장, 서울역 일대 등 총 195만㎡를 아우르는 ‘서울역 일대 도시재생활성화계획’의 세부계획 중 하나다. 서울시는 이번 계획을 ‘남산 예장자락 재생사업’, ‘남산애니타운사업’, ‘남산 역사탐방로 조성사업’과 연계해 통합재생을 완성할 방침이다. 진희선 서울시 도시재생본부장은 “역사·문화자산을 다양하게 보유한 남촌이 북촌과는 또 다른 특색 있는 명소로 자리매김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