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라플라스의 악마 vs 천사
《라플라스의 마녀》는 일본 추리소설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東野圭吾)가 데뷔 30주년을 기념해 2015년 내놓은 작품이다. 이 소설은 온천 지역에서 발생한 자연재해를 가장한 황화수소 중독 사망 사건과 이를 추적하는 과정을 촘촘하게 그려낸다. 히가시노 특유의 치밀한 구성과 예상치 못한 반전이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한다.

소설 제목의 라플라스는 18세기 프랑스 수학자이자 수리물리학자 피에르시몽 라플라스를 말한다. 그는 매우 정치적인 인물로 나폴레옹과도 친분이 두터웠다. 실제 나폴레옹이 집권하자 내무부 장관으로 임명됐지만 6주 만에 해고됐다. 그의 행정력은 수학과 물리학에 대한 연구 능력보다는 못했던 것 같다.

제목 ‘라플라스의 마녀’는 ‘라플라스의 악마’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라플라스는 “우주에 있는 모든 원자의 정확한 위치와 운동량을 알고 있는 존재가 있다면 뉴턴 운동법칙에 의해 과거와 현재의 현상을 설명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가설을 세웠다. 이때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초월적인 존재를 후세 사람들은 라플라스의 악마라고 명명했다.

소설 속에서 뇌수술을 받고 라플라스의 악마와 같은 예지력을 갖게 된 겐토와 마도카는 엄청난 능력을 정반대로 사용한다. 겐토는 황화수소를 발생시켜 살인에 이용한다. 마도카는 겐토의 추가 살인을 막는 한편 토네이도와 같은 불가항력적 자연재해를 예측하는 데 사용하고자 한다.

현실에서 라플라스의 악마를 꼽자면 슈퍼컴퓨터와 인공지능(AI)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날씨를 예보하기 위해선 온도와 습도, 풍속, 풍향, 기압, 강수량 등 다양한 변수를 포함하는 미분방정식을 세워 정보를 입력한 후 슈퍼컴퓨터로 계산한다. 일기예보의 정확도를 높여주는 슈퍼컴퓨터가 지금까지는 인류에게 ‘라플라스의 천사’로 기능하고 있다. 슈퍼컴퓨터는 물론, 한시도 쉬지 않고 스스로 기계학습과 딥러닝을 통해 진화하는 인공지능도 아직은 천사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천사의 얼굴을 하고 있는 슈퍼컴퓨터와 인공지능이 언제 악마의 모습으로 변할지 모를 일이다. 뛰어난 예지력의 겐토와 마도카가 각각 라플라스의 악마와 라플라스의 천사가 된 것을 보며, 약한 인공지능을 넘어서는 강한 인공지능의 대두 등 과학기술의 발전 가능성과 한계를 윤리적 측면에서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박경미 <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kparkmath@na.g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