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초 대사는 804년 중국으로 유학해 저장(浙江)성 천태산(天台山) 국청사(國淸寺)에 머물렀다. 그곳은 전설적 은둔자 한산(寒山)이 나무와 바위에 아무렇게나 써두었다는 시를 모은 《한산시집(寒山詩集)》의 무대이기도 하다. 5번 시에 ‘언제나 저 뱁새를 생각하노니 한 가지만 있어도 몸이 편안하다네(常念鳥 安身在一枝)’라는 구절이 나온다. 많은 나무가 있어도 뱁새에겐 한 가지(一枝)면 충분하다는 뜻이다. 우연의 일치로 ‘일지(一枝)’와 ‘일우(一隅)’는 천태산이라는 지역적 배경을 함께한 셈이다.
‘일지’는 조선 초의 선사(1786~1866)에 의해 전남 해남의 작은 암자인 일지암(一枝庵)까지 뻗쳤다. 한동안 끊어진 다맥(茶脈)을 되살리자 차 향기는 다시 한반도 전체로 퍼져 나갔다. 나뭇가지 한 개가 드디어 천 가지(千枝)가 된 것이다. 또 ‘일우’ 등잔불은 오늘까지 천년 이상 이어져 ‘불멸의 등불’로 불렸다. 동시에 일본열도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등잔불 한 심지가 다른 심지로 이어지면서 마침내 천 구석(千隅)을 밝힌 것이다. 결국 사이초 대사의 ‘일우’ 등잔불과 초의 선사의 ‘일지’ 암자는 두 나라의 보배가 됐다.
원철 < 스님 (조계종 포교연구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