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가위바위보
넥센의 4번 타자 박병호는 홈런을 치고 그라운드를 돌 때마다 3루 코치와 이벤트를 벌인다. 요즘 야구팬 사이에 화제가 되고 있는 가위바위보 세리머니다. 이렇게 친숙한 게임도 없다.

시시한 놀이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가위바위보는 세계대회가 열릴 만큼 글로벌한 게임이다. 세계가위바위보협회(World RPS Society)는 1918년 창립돼 100주년을 눈앞에 두고 있다. 2002년에는 각국 대표들을 초청, 세계대회도 열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 맞춰 미국 캐나다 아일랜드 등 6개국 대표가 참여한 베이징 국제가위바위보대회도 열었다. 맥주회사가 후원한 이 대회 우승상금은 5만달러(약 5000만원)나 됐다.

가위바위보는 가위와 종이가 보편화된 5세기 중국에서 아이들 손놀이로 시작됐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 또 쥐(가위) 호랑이(주먹) 코끼리(보)를 상징하는 놀이로 그 이전부터 인도에서 행해졌다는 설도 있다. 유럽에는 17세기에 전해졌고 우리나라엔 일제강점기 일본을 통해 소개됐다. 아동문학가 윤석중이 가위바위보라는 명칭을 붙였다고 한다.

가위바위보 놀이는 ‘승복’을 상징한다. 누구라도 같은 조건에서 같은 규칙으로 승부를 가린다. 실제로 세계가위바위보협회의 전신인 PSS클럽은 1842년 런던에서 창립됐는데 가위바위보의 승패를 사적계약에 준하는 것으로 인정하는 법률이 제정된 직후였다. 당시 법령은 “두 신사가 가위바위보와 같은 절차를 통해 결정한 것은 구속력 있는 계약으로 인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게임 잘못했다가 패가망신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경찰까지 가위바위보 게임을 감시하게 되면서 애호가들이 마음 놓고 게임할 수 있도록 공식화한 것이 세계가위바위보협회의 출발점이었다.

승복의 문화를 상징하는 동시에 누구에게나 공평한 가위바위보는 난제를 푸는 열쇠이기도 했다. 2006년 미국 플로리다에서는 1년여 합의를 보지 못하고 있는 두 변호사에게 판사가 가위바위보로 결정하라고 판결했다. 또 일본에선 2004년께 크리스티와 소더비가 미술품 경매주관사 선정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하자 의뢰인이 가위바위보로 결정하자고 제안한 일도 있었다.

재보선을 앞두고 여야 모두 한바탕 공천 홍역을 치렀다. 오랜 세월 지역을 지켜온 터줏대감과 당에서 전략공천된 사람이 드잡이를 하는 일도 있었다. 곳곳에 불복의 문화가 넘친다. 차라리 깨끗하게 가위바위보로 결정하시라!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