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멘 라인하트 교수 "대박 시기 보낸 신흥국, 연쇄위기 올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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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 인터뷰 / 금융위기 전문가 카르멘 라인하트 美 하버드대 교수
자본유입에 취했던 터키·브라질, 美 양적완화 축소로 자금 '썰물'
한국 경제 기초체력 좋지만 가계부채 급증은 경계해야
中 '그림자 금융' 걱정…위기 초기 단계일 수도
파워 인터뷰 / 금융위기 전문가 카르멘 라인하트 美 하버드대 교수
자본유입에 취했던 터키·브라질, 美 양적완화 축소로 자금 '썰물'
한국 경제 기초체력 좋지만 가계부채 급증은 경계해야
中 '그림자 금융' 걱정…위기 초기 단계일 수도
“유동성이 넘쳐나 자산가격이 급등하는 ‘보난자 시기(bonanza period)’ 이후에는 언제나 금융위기와 같은 경착륙이 오게 마련입니다.”
금융위기 분야에 정통한 카르멘 라인하트 미국 하버드대 교수(사진)는 “지금 신흥국 경제는 선진국들이 금융위기 전에 겪었던 모습과 비슷하다”며 이같이 경고했다. 그는 선진국이 2008년부터 2013년까지 금융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동안 신흥국은 글로벌 자금유입에 힘입어 신용확대, 내수팽창, 자산가격 급등이라는 ‘보난자’를 즐기다가 금융위기와 인플레이션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고 진단했다. 한국에 대해서는 “다른 선진국과 달리 경상수지 적자, 외채 과다 등의 문제는 없다”면서도 “가계부채가 급증한 점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최근 미국 워싱턴DC의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 강연 후 그를 만나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경제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들어봤다.
▷금융위기 발생 6년째다. 위기를 극복했다고 보나.
“여러 가지 판단 기준이 있는데 1인당 실질 국내총생산(GDP)으로 보는 게 가장 유용하다. 이 기준으로 보면 미국은 회복됐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은 ‘안정’됐지만 회복에는 수년이 걸릴 것이다. 금융위기를 겪은 12개국, 즉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그리스 아이슬란드 아일랜드 이탈리아 네덜란드 포르투갈 스페인 우크라이나에서 1인당 실질 GDP가 위기 이전으로 회복된 곳은 미국과 독일뿐이다.”
▷미국의 실업률(6.7%)은 위기 전인 4~5%보다 여전히 높다.
“많은 사람이 왜 이번 경기침체는 회복이 더디냐고 묻는다. 그건 예금인출 사태와 대규모 금융부실 발생, 은행의 연쇄파산, 그리고 정부의 유동성 지원으로 이어지는 시스템적 금융위기 탓이다. 금융위기는 일반적인 경기침체보다 극복하는 데 더 오래 걸린다. 1814~1817년 금융위기 때는 회복에 10년이 걸렸다. 1907년 위기 때는 9년, 1929~1933년 대공황 땐 10년이 걸렸다. 이번 위기는 전 세계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됐고 외환위기, 국가 디폴트 위기, 증시폭락 등이 중첩되면서 상처가 컸다.”
▷유로존의 회복이 더딘 이유는.
“미국이 유럽보다 위기를 빨리 극복한 것은 디레버리징(부채축소)이 빠르게 진행된 덕분이다. 2009년 유럽 선진국의 공공부문 및 민간부문의 부채비율은 200%를 웃돌았다. 당시 미국은 100% 수준이었다. 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등이 금융위기 충격을 상대적으로 적게 받은 것은 1990년대 외환위기 이후 부채비율을 크게 줄였기 때문이다.”
▷금융위기 이후 신흥국이 글로벌 성장을 이끌어왔는데.
“선진국은 금융위기 이후 지난해 초까지 디레버리징이 지속되면서 저성장과 고실업률을 겪었다. 반면 이 기간 브라질 터키 등 신흥국들은 글로벌 자금유입에 따른 ‘보난자 시기’를 보냈다. 선진국의 양적완화로 값싼 자금이 유입되면서 대출이 늘고 내수시장이 팽창하고 자산가격이 상승했다. 그런데 이제는 선진국과 신흥국의 상황이 바뀌고 있다.”
▷신흥국 경제가 침체될 것으로 보나.
“역사를 보면 보난자 시기 이후에는 언제나 경착륙이 뒤따랐다. 지난해 1분기부터 경상수지 적자 확대와 신용과잉, 인플레이션 등이 나타나면서 신흥국의 성장이 둔화되기 시작했다. 이는 선진국이 금융위기 직전에 겪었던 현상들과 비슷하다. 지난해 6월 미국 중앙은행(Fed)이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을 예고하자 신흥국에서 자금이 빠지면서 통화가치가 급락했다.”
▷일각에선 2차 신흥국 위기를 우려하고 있다.
“가능성이 높다. Fed의 테이퍼링에 이어 금리인상도 다가오고 있다. 자금이탈이 지속되고 신용거품이 꺼지면서 은행위기와 인플레이션 위기가 올 수 있다. 1994년 멕시코 외환위기가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로, 1998년엔 러시아·브라질 위기로 전염됐다. 이번에도 신흥국에 연쇄 위기가 닥칠 가능성이 있다.”
▷한국에도 위기 징후가 보이나.
“1990년대 외환위기와 같은 우려는 없다고 본다. 당시엔 경상수지 적자와 과도한 대외부채가 문제였지만 지금은 경제의 기초체력이 그때와 완전히 달라졌다. 다만 가계부채가 급증했다는 게 걱정된다. 가계 부채의 질을 잘 따져봐야 한다. 성장률이 하락해 가계의 소득이 정체되거나 떨어지면 이자와 원금을 제때 갚지 못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은행의 부실자산이 늘어나 금융시스템을 위협할 수 있다. 정책당국은 가계부채를 면밀히 모니터링해야 할 것이다.”
▷중국의 경제위기 가능성은 없나.
“위기에는 여러 유형이 있다. 은행위기와 통화위기가 동시에 발생하는 ‘쌍둥이 위기’만 있는 게 아니다. 중국은 외환보유액이 많고 대외부채는 적다. 다른 신흥국과 달리 통화위기를 겪을 가능성은 낮다. 문제는 막대한 규모로 추정되는 ‘그림자금융’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국제통화기금(IMF)에 보고되는 부채일 뿐 아무도 그림자금융의 실체와 규모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정확한 시기는 예측할 수 없지만 금융부실이 조만간 곪아터질 것으로 본다. 은행위기의 초기 단계일 수 있다.”
■ 라인하트 교수는
2009년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와 함께 글로벌 금융위기를 분석한 책 ‘이번에는 다르다(This Time is Different)’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주목을 받은 금융위기 전문가다. 쿠바 태생으로 11세 때 미국으로 이민을 했다. 컬럼비아대에서 경제학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1980년대 투자은행 베어스턴스 수석이코노미스트를 거쳐 2001~2003년 국제통화기금(IMF)에서 이코노미스트로 일하며 금융위기를 집중 연구했다. 메릴랜드대 국제경제연구소장,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 등을 거쳐 2012년부터 하버드케네디스쿨에서 국제금융시스템을 가르치고 있다.
워싱턴=장진모 특파원 jang@hankyung.com
금융위기 분야에 정통한 카르멘 라인하트 미국 하버드대 교수(사진)는 “지금 신흥국 경제는 선진국들이 금융위기 전에 겪었던 모습과 비슷하다”며 이같이 경고했다. 그는 선진국이 2008년부터 2013년까지 금융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동안 신흥국은 글로벌 자금유입에 힘입어 신용확대, 내수팽창, 자산가격 급등이라는 ‘보난자’를 즐기다가 금융위기와 인플레이션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고 진단했다. 한국에 대해서는 “다른 선진국과 달리 경상수지 적자, 외채 과다 등의 문제는 없다”면서도 “가계부채가 급증한 점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최근 미국 워싱턴DC의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 강연 후 그를 만나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경제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들어봤다.
▷금융위기 발생 6년째다. 위기를 극복했다고 보나.
“여러 가지 판단 기준이 있는데 1인당 실질 국내총생산(GDP)으로 보는 게 가장 유용하다. 이 기준으로 보면 미국은 회복됐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은 ‘안정’됐지만 회복에는 수년이 걸릴 것이다. 금융위기를 겪은 12개국, 즉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그리스 아이슬란드 아일랜드 이탈리아 네덜란드 포르투갈 스페인 우크라이나에서 1인당 실질 GDP가 위기 이전으로 회복된 곳은 미국과 독일뿐이다.”
▷미국의 실업률(6.7%)은 위기 전인 4~5%보다 여전히 높다.
“많은 사람이 왜 이번 경기침체는 회복이 더디냐고 묻는다. 그건 예금인출 사태와 대규모 금융부실 발생, 은행의 연쇄파산, 그리고 정부의 유동성 지원으로 이어지는 시스템적 금융위기 탓이다. 금융위기는 일반적인 경기침체보다 극복하는 데 더 오래 걸린다. 1814~1817년 금융위기 때는 회복에 10년이 걸렸다. 1907년 위기 때는 9년, 1929~1933년 대공황 땐 10년이 걸렸다. 이번 위기는 전 세계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됐고 외환위기, 국가 디폴트 위기, 증시폭락 등이 중첩되면서 상처가 컸다.”
▷유로존의 회복이 더딘 이유는.
“미국이 유럽보다 위기를 빨리 극복한 것은 디레버리징(부채축소)이 빠르게 진행된 덕분이다. 2009년 유럽 선진국의 공공부문 및 민간부문의 부채비율은 200%를 웃돌았다. 당시 미국은 100% 수준이었다. 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등이 금융위기 충격을 상대적으로 적게 받은 것은 1990년대 외환위기 이후 부채비율을 크게 줄였기 때문이다.”
▷금융위기 이후 신흥국이 글로벌 성장을 이끌어왔는데.
“선진국은 금융위기 이후 지난해 초까지 디레버리징이 지속되면서 저성장과 고실업률을 겪었다. 반면 이 기간 브라질 터키 등 신흥국들은 글로벌 자금유입에 따른 ‘보난자 시기’를 보냈다. 선진국의 양적완화로 값싼 자금이 유입되면서 대출이 늘고 내수시장이 팽창하고 자산가격이 상승했다. 그런데 이제는 선진국과 신흥국의 상황이 바뀌고 있다.”
▷신흥국 경제가 침체될 것으로 보나.
“역사를 보면 보난자 시기 이후에는 언제나 경착륙이 뒤따랐다. 지난해 1분기부터 경상수지 적자 확대와 신용과잉, 인플레이션 등이 나타나면서 신흥국의 성장이 둔화되기 시작했다. 이는 선진국이 금융위기 직전에 겪었던 현상들과 비슷하다. 지난해 6월 미국 중앙은행(Fed)이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을 예고하자 신흥국에서 자금이 빠지면서 통화가치가 급락했다.”
▷일각에선 2차 신흥국 위기를 우려하고 있다.
“가능성이 높다. Fed의 테이퍼링에 이어 금리인상도 다가오고 있다. 자금이탈이 지속되고 신용거품이 꺼지면서 은행위기와 인플레이션 위기가 올 수 있다. 1994년 멕시코 외환위기가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로, 1998년엔 러시아·브라질 위기로 전염됐다. 이번에도 신흥국에 연쇄 위기가 닥칠 가능성이 있다.”
▷한국에도 위기 징후가 보이나.
“1990년대 외환위기와 같은 우려는 없다고 본다. 당시엔 경상수지 적자와 과도한 대외부채가 문제였지만 지금은 경제의 기초체력이 그때와 완전히 달라졌다. 다만 가계부채가 급증했다는 게 걱정된다. 가계 부채의 질을 잘 따져봐야 한다. 성장률이 하락해 가계의 소득이 정체되거나 떨어지면 이자와 원금을 제때 갚지 못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은행의 부실자산이 늘어나 금융시스템을 위협할 수 있다. 정책당국은 가계부채를 면밀히 모니터링해야 할 것이다.”
▷중국의 경제위기 가능성은 없나.
“위기에는 여러 유형이 있다. 은행위기와 통화위기가 동시에 발생하는 ‘쌍둥이 위기’만 있는 게 아니다. 중국은 외환보유액이 많고 대외부채는 적다. 다른 신흥국과 달리 통화위기를 겪을 가능성은 낮다. 문제는 막대한 규모로 추정되는 ‘그림자금융’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국제통화기금(IMF)에 보고되는 부채일 뿐 아무도 그림자금융의 실체와 규모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정확한 시기는 예측할 수 없지만 금융부실이 조만간 곪아터질 것으로 본다. 은행위기의 초기 단계일 수 있다.”
■ 라인하트 교수는
2009년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와 함께 글로벌 금융위기를 분석한 책 ‘이번에는 다르다(This Time is Different)’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주목을 받은 금융위기 전문가다. 쿠바 태생으로 11세 때 미국으로 이민을 했다. 컬럼비아대에서 경제학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1980년대 투자은행 베어스턴스 수석이코노미스트를 거쳐 2001~2003년 국제통화기금(IMF)에서 이코노미스트로 일하며 금융위기를 집중 연구했다. 메릴랜드대 국제경제연구소장,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 등을 거쳐 2012년부터 하버드케네디스쿨에서 국제금융시스템을 가르치고 있다.
워싱턴=장진모 특파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