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보라’라는 아파트 브랜드로 잘 알려진 반도건설의 권홍사 회장(70)은 ‘빨간 펜’을 옆에 두고 산다. 실무자들이 만들어온 아파트 평면도를 고치기 위해서다. 거실과 방 3칸 등 4개 공간을 전면 발코니로 배치, 채광과 통풍을 강조한 이 회사의 ‘4베이(bay)’ 특화설계도 권 회장의 ‘빨간 펜’에서 나왔다.

2012년과 지난해 2년 연속 아파트 분양실적 3위에 오른 중흥건설의 정창선 회장(72)의 책상 앞엔 ‘36개월짜리 현금 흐름표’가 붙어 있다. 3년간의 자금 계획을 미리 짜고 3개월마다 이를 점검한다.

국내 100대 건설사 중 18개사가 법정관리 및 워크아웃에 들어가 있을 정도로 건설업계는 어려움을 겪었다. 이런 가운데 사업 위험이 상대적으로 큰 것으로 알려진 주택 사업을 통해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중견 주택업체들이 있어 화제다. 호반·우미·반도·중흥건설(시공능력평가순)이 주인공이다. 최대주주가 직접 경영을 맡고 있는 이들 중견 주택업체는 한발 빠른 경영판단을 통해 수도권과 지방 택지지구에서 잇따라 분양에 성공했다는 평가다.

이들은 올해 전국 분양예상물량(25만가구)의 17%가량인 4만3438가구를 공급할 예정이다.

1988년 창립 이후 26년 만에 시공능력평가 24위로 뛰어오른 호반건설의 김상열 회장(53)은 건설업계에서 대표적인 내실경영 강조론자다. 김 회장은 먼저 분양한 단지들의 누적분양률이 90%를 넘어야 신규 분양에 나서는 ‘분양률 90% 룰’을 지키고 있다. 덕분에 ‘호반 베르디움’ 누적분양률은 99%에 달한다.

우미건설 창업주인 이광래 회장의 장남인 이석준 사장(50)은 숫자에 기반한 ‘면도날 분석력’을 자랑한다. 서울대 전자공학과와 KAIST 전자공학석사 출신인 그는 공학도 출신답게 지역 인구와 과거 공급량 등을 꼼꼼하게 따져 토지를 매입, 분양여부를 결정한다. 공급이 적었던 경북 경산에서 이달 ‘경산 신대·부적지구 우미 린’을 분양해 성공한 게 대표적이다.

섬세함을 앞세운 이들 50대 오너와 달리 70대인 권 회장과 정 회장은 동탄2신도시와 세종시 등 유망지역에 공급을 집중하는 ‘통 큰 베팅’을 선호한다. 권 회장은 “교통(수서발 KTX 동탄역)이 좋고 일자리(동탄 삼성전자)가 많은 곳엔 사람이 모인다”며 동탄2신도시에서만 3개 단지 2938가구를 분양, 모두 성공했다. 반도건설은 올 하반기에도 3개 단지(2112가구)를 더 분양할 예정이다.

정 회장의 뚝심은 한 술 더 뜬다. 2011년 세종시의 행정도시 기능을 축소하는 ‘세종시 수정 논란’이 불거지면서 대형 건설사들은 분양 실패를 우려해 세종시 아파트 용지를 포기했다. 하지만 정 회장은 “정부가 국민과의 약속을 깰 수 없을 것”이라며 오히려 공격적으로 토지를 사들여 12개 단지 8800여가구를 쏟아내 모두 성공시켰다. 중흥건설은 올해도 2개 단지 1576가구를 분양해 세종시에만 1만가구 규모의 ‘중흥 S-클래스’ 브랜드 타운을 조성할 예정이다.

김보형/김진수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