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정책이 모두 몇 가지가 있느냐고요? 저도 사실 잘 모릅니다.”

얼마 전 중소기업청 고위관료 출신과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 10년 이상 그곳에서 일한 사람이다. 그는 “중소기업정책 전부를 속속들이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왜 그럴까. 중소기업정책은 중기청으로 일원화돼 있는 게 아니다. 중앙정부·지방자치단체·공공기관 등으로 복잡하게 퍼져 있다. 분야도 인력·창업·기술개발·설비투자·시장개척·디자인 등으로 세분화돼 있고, ‘맞춤형’ 등의 수식어가 붙으면서 더욱 복잡해진다.

게다가 새로운 게 끝없이 쏟아져 나온다. 기술개발 지원만 해도 수십가지가 있고, 지원기관도 여럿 있다. 지원책이 모두 몇 가지냐에 대한 의견도 각양각색이다. 100여가지, 200여가지, 심지어 1000가지가 넘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복잡한 정책 단순화해야

문제는 수요자인 중소기업이다. 이렇게 복잡하다 보니 어디 가서 무엇을 신청해야 하는지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때로는 이곳 저곳 찾아다니다 시간만 빼앗기고, 결국은 ‘자금이 없다’ ‘대상이 안된다’는 대답을 듣고 되돌아서는 경우도 허다하다.

‘중소기업을 위한 정부’를 표방한 새 정부에 많은 사람들은 어떤 정책이 새로 나올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중소기업을 제대로 육성하겠다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한데 예산은 한정돼 있다. 추가 재원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새 정책이 자칫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방식이 될 수도 있다.

역대 정부치고 ‘중소기업 육성’을 부르짖지 않은 정부는 없었다. 김영삼 정부 때는 아예 공업진흥청을 중소기업청으로 바꿨고, 새로운 정책을 내놓으라고 중앙정부에서 닦달하는 통에 중기청 직원들은 거의 매일 야근하기 일쑤였다.

그러면 중소기업청이 개청한 1996년과 비교해서 지금의 중소기업 사정이 월등히 나아졌는가. 제조업 가동률만 놓고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지금도 중소제조업체의 가동률은 70% 안팎에 머물고 있다. 비싼 돈을 들여 장만한 기계 3대 중 1대에는 먼지가 쌓여가고 있다.

소규모 제조업 배려 필요

최근 인사에서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사장이 박근혜 정부의 초대 중기청장으로 발탁됐다. 그의 임무 중 하나는 수요자 입장에서 정책을 재정비하는 일이다. 비슷한 것은 통·폐합하고 단순화하는 것이다. 문제는 새로운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가짓수가 너무 많고 복잡한 데서 생기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선 부처간·기관간 장벽을 허물어야 한다. 각 부처에 나눠져 있는 중소기업 관련 정책과 예산 운용도 중기청이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한다.

또 하나는 정책 사각지대인 ‘소공인(小工人)’에 대한 배려다. 소공인은 종업원 10명 미만의 제조업을 뜻한다. 이들 대부분은 임차공장에서 일한다. 광명·시흥 등 대도시 주변에는 이런 기업들이 즐비하다. 통계청 조사를 보면 32만5082개에 이르는 국내 제조업체 가운데 소공인이 26만3194개로 81%를 차지한다. 그런데도 이들은 정책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한다. 오히려 재개발 등으로 자신의 생산터전이 언제 사라질지 몰라 좌불안석이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도 쇠를 깎아 벤츠나 BMW에 납품하는 게 소공인들이다. 휴렛팩커드나 소니도 처음엔 10인 이하로 출발했다는 것은 소공인의 중요성을 말해준다. 소공인을 위한 정책이야말로 ‘국민행복시대’를 부르짖는 새 정부가 신경써야 할 분야 중 하나일 것이다.

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