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당시 일본 총리가 이나모리 가즈오(稻盛和夫) 교세라 명예회장(사진)을 찾았다. 2조3000억엔(약 34조원)에 달하는 빚을 안고 침몰한 일본항공(JAL)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이나모리 회장의 나이는 78세. 아무리 ‘경영의 신(神)’이라도 부담이 컸다.

하토야마 총리의 끈질긴 삼고초려 끝에 이나모리 회장은 소매를 걷어붙였고, 또 하나의 기적을 일궈냈다. 파산 직전의 JAL을 8개월 만에 흑자로 돌려세웠고, 2년 연속 사상 최고 실적을 냈다. JAL 부활의 ‘마지막 퍼즐’로 불리던 도쿄증권거래소 재상장 승인도 얻어냈다.

국회 심의를 통과하면 다음달 19일 도쿄 증시 1부 시장에 다시 이름을 올린다.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상장이 폐지된 지 2년8개월 만이다.

◆법정관리에서 재상장까지

니혼게이자이신문은 5일 “도쿄증권거래소가 JAL의 재상장 신청을 승인했다”며 “올해 전 세계에서 이뤄진 기업공개 가운데 미국 페이스북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JAL의 매각주식 수는 총 1억7500만주. 일본 내에서 1억3152만주, 나머지는 해외 투자자에게 발행할 예정이다. 예상 공모가격은 주당 3790엔으로 전체 매각 규모는 6800억엔(약 10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JAL의 지분 96.5%를 갖고 있는 일본 기업재생지원기구(ETIC)는 이번 기업공개를 통해 JAL에 투입한 3500억엔의 공적자금을 전액 회수할 계획이다.

마지막 걸림돌은 7일로 예정돼 있는 국회 심의다. 글로벌 경기 침체, 저가 항공사 증가 등을 이유로 야당인 자민당에서 재상장 회의론이 일고 있지만 JAL의 실적이 탄탄한 만큼 심의 통과에는 무리가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JAL은 작년 3월 14개월 만에 법정관리에서 벗어났을 정도로 회생 속도가 빨랐다. 지난 회계연도(2011년 4월~2012년 3월)엔 사상 최대인 1870억엔의 영업이익을 거뒀고, 올 회계연도(2012년 4월~2013년 3월) 첫 분기(4~6월)에도 314억엔의 영업이익을 냈다. 첫 분기 기준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또 한번 이뤄낸 기적

이나모리 회장은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파나소닉 창업자), 혼다 소이치로(本田宗一郞·혼다자동차 창업자)와 함께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3대 경영인’으로 꼽힌다. 1959년 종업원 28명으로 출발한 세라믹 제조업체 교세라는 현재 전 세계에 221개 계열사를 두고 6만명이 넘는 직원을 거느린 글로벌 전자기업으로 성장했다. 이나모리 회장은 1984년 다이니덴덴(第二電電·현 KDDI)이라는 회사를 설립, 일본 2위 통신업체로 성장시키기도 했다.

교세라와 KDDI 등을 통해 축적한 경영 노하우는 JAL의 회생에도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우선 방만한 조직의 군살부터 뺐다. 45개 적자노선을 폐지했고, 1만여명을 감원했다. 직원들의 의욕을 북돋우는 작업도 병행했다. 경영간부 50여명을 모아 매주 리더십 교육을 직접 진행했고, 교육이 끝난 뒤에도 생맥주를 기울이며 토론을 이어갔다.

일본 각지의 공항을 방문, 현장 직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사업부문별로 독립 채산시스템을 도입해 사내 경쟁을 부추긴 것도 성공요인으로 꼽힌다. ‘JAL의 2차 부도는 필연’이라던 일본 언론도 이젠 ‘새로운 성공신화’를 분석하느라 바쁘다. 올해 80세인 이나모리 회장은 내년 2월께 JAL을 떠날 예정이다.

도쿄=안재석 특파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