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립식 당구대 국내 첫 생산…다양한 신제품 개발·특허 획득
볼트 72개로 테두리 고정…공의 탄성유지…외국서 호평
'한국형 캐롬당구' 해외서 관심…"동남아서 당구한류 일으킬 것"
김낙훈의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
그 옆의 공장 안에 들어서면 직원들이 당구대를 만드느라 분주하다. 목재를 가공하는 소리가 윙하고 들려온다. 밑바닥을 형성하는 발통 위에 철제 H빔을 올려 놓고 그 위에 화강암을 얹는다. 화강암 두께는 55~65㎜에 이른다. 그 위를 두툼한 나사 천으로 두른 뒤 가장자리를 정밀가공한 목재로 에워싼다. 목재 가장자리에는 고무 쿠션을 붙인다. 이 가장자리가 생명이다. 독일제 기계로 몇㎜ 오차 범위 안으로 가공한 여러 조각의 목재와 고무의 요철이 잘 맞아야 당구공의 쿠션이 제대로 살아난다. 정밀기계 부품을 조립하는 듯하다. 이렇게 해서 완성한 당구대의 무게는 대당 750~1050㎏에 이른다. 소형차 무게에 버금간다. 당구대는 미국 캐나다 일본 중국 동남아 호주 등 20여개국으로 수출한다. 요즘엔 콜롬비아에 수출할 10대의 당구대 제작 작업에 분주하다. 남미로는 첫 선적하는 것이다.
홍 회장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조립식 당구대를 만든 업체가 바로 우리 회사”라고 말했다. 그 전에는 당구장을 개업하려면 목수를 불러 현장에서 당구대를 만들었다. 나무를 톱으로 자르고 대패로 깎아 만들었다. 기간이 보름에서 한 달 정도 걸렸다. 하지만 이 회사가 공장에서 만든 당구대를 분해한 뒤 당구장에서 조립하자 설치는 하루 만에 끝났다.
허리우드가 국내 최대 당구대 업체로 성장한 데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 다양한 기술 개발이다. 이 회사는 조립식 당구대를 처음 생산했을 뿐 아니라 개폐식 당구대, 가정용 당구대 등 많은 신제품을 개발했다. 발명 특허를 획득한 개폐식 당구대는 상판을 목재로 덮을 수 있게 설계한 제품이다. 당구를 치지 않을 때는 회의 탁자나 식탁으로 쓸 수 있다. 가정용 당구대는 좁은 공간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홍 회장은 “가족간 대화가 점차 단절돼 가고 있는 요즘 가족들이 오락용으로 쓸 수 있도록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둘째, 숙련공에 의한 정밀가공이다. 이 회사 직원은 25명이다. 이들 가운데 10년 이상 장기근속자가 3분의 2에 이른다. 정년은 58세지만 일할 능력이 있으면 60세가 넘어도 근무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20년 이상 근무했다. 이들은 목재 가공이나 수평 잡기의 장인들이다.
셋째, 해외 시장 개척이다. 당구대는 주로 해외 동포에게 팔려 나간다. 홍 회장은 “미국이나 유럽 사람들이 즐기는 당구는 우리와 다르다”며 “그러다 보니 해외 동포들이 한국식 당구(4구 혹은 3구 당구)를 즐길 수 없어 우리 제품을 사간다”고 덧붙였다.
당구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스누커(snooker) 포켓(공식용어는 pool), 캐롬(carom) 이다. 영국의 식민지였거나 영향을 받은 나라들은 스누커를 즐긴다. 22개의 공을 갖고 하는 게임으로 당구대 상판 면적이 6×12피트에 이른다. 대개 4.5×9피트 수준인 한국의 당구대에 비해 77%나 넓다.
미국의 영향을 받은 곳은 포켓 당구를 즐긴다. 16개의 공으로 6개의 구멍에 넣는 게임이다. 한국의 당구대와는 모양 자체가 다르다. 캐롬은 한국인들이 즐기는 게임이다. 일본에서 건너왔지만 일본은 당구 문화가 쇠퇴한 상태여서 지금은 한국이 사실상 종주국 역할을 하고 있다.
허리우드는 홍 회장의 형인 고(故) 홍영선 대표가 창업했다. 홍 전 대표는 당구선수 출신으로 종로2가 허리우드극장 부근에서 허리우드 당구장을 인수하면서 당구와 인연을 맺었다. 그는 한·일 교류전을 치를 만한 당구장이 없자 1975년 자신이 당구장을 인수한 뒤 일부 당구대를 교체해 시합을 갖기도 했다. 그 뒤 1985년 경기도 광주에 거산산업을 창업(허리우드 전신)해 당구대 제조에 나섰고 1990년에 이천으로 공장을 옮겼다. 이천 공장은 대지 1만4000㎡에 건평 5400여㎡에 이른다. 창업자인 홍 전 대표가 1997년 숙환으로 타개하자 동생인 홍 회장이 경영을 이어받았다.
홍익대 토목공학과를 나온 홍 회장은 고급 주택건설업을 해왔다. 그러던 중 형에게서 경영에 동참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1995년에 합류했고 1997년부터 허리우드 경영을 총괄해왔다.
그는 다양한 신제품을 개발하고 특허를 획득했다. 예컨대 상판 쿠션 테두리를 설치할 때 옆볼트와 밑볼트를 동시에 쓰는 복합볼트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홍 회장은 “한 대의 당구대에는 옆볼트가 48개 들어가는데 여기에 밑볼트 24개를 추가해 하나의 시스템으로 구성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옆볼트와 밑볼트를 합쳐 72개가 든든하게 테두리를 받춰주면 공의 탄성 유지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를 동시에 설치하기 위해서는 간격이 정확해야 한다. 불과 몇㎜ 오차가 있어도 조립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는 “작년 가을 수원에서 열린 ‘스리쿠션 당구월드컵대회’에 우리 제품을 설치했는데 해외 유명 선수들이 우리 제품에 대해 호평했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 대표직을 동생인 홍용선 사장(58)에게 물려주되 회장직은 유지하면서 회사의 중장기 발전 계획 수립과 투자 및 신제품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홍 회장이 꿈꾸는 것은 캐롬으로 해외에서도 바람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는 “전자오락 등의 영향으로 일본에서는 당구 문화가 거의 쇠퇴했기 때문에 이제는 캐롬이 한국형 당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홍 회장은 “드라마와 음악이 한류의 선봉에 서고 있지만 앞으로 중국 동남아 등지에서 당구 한류 바람이 일어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단순 오락에서 스포츠로 격상된 당구가 이제는 한걸음 나아가 하나의 한류 문화로 자리잡길 기대하고 있다.
한국의 당구 역사는 100년이 넘었다. 구한말 궁중에서 즐기기도 했던 당구는 1960년대와 1970년대를 지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당구대는 정밀가공 제품이다. 상판 바닥의 수평이 엄격하게 맞아야 하고 고무 쿠션의 반발력이 적당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까다로운 가공을 필요로 한다. 경기도 이천의 허리우드(Hollywood)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조립식 당구대를 만든 업체로 20여개국에 이를 수출하고 있다.
김낙훈의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