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분야 거장 프랭크 게리가 5층짜리 건물 외벽을 치장할 은빛 금속 외장재를 필요로 할 때 가장 먼저 전화를 건 업체가 있다. 이 회사는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2005년)을 수상한 또다른 건축가 톰 메인과도 인연이 깊다. 메인이 2009년 뉴욕 맨해튼 이스트빌리지에 금속이 녹아 흘러내리는 듯한 외형을 지닌 쿠퍼스퀘어 건물을 설계했을 때도 외장재를 공급해 건축가의 고민을 덜어줬다.

전문가들조차 ‘그런 외장재를 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한 외장재였다. 스타 건축가를 뜻하는 ‘스타키텍트(starchitect)’를 위한 맞춤형 외장재로 새로운 고부가가치 시장을 개척해온 미국의 건축 외장재 전문 기업 자너(Zahner) 얘기다. 이 회사는 금속 외장재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평을 듣고 있다.


◆거장 건축가들의 파트너

미국의 금속가공업체들은 중국 기업들의 저가 공세에 밀려 대부분 문을 닫았다. 하지만 중서부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에 있는 자너는 상황이 다르다. 자하 하디드, 프랭크 게리, 렘 쿨하스, 톰 메인 등 이름만 나열해도 20~21세기 세계 건축사를 써내려갈 수 있는 ‘거장’들의 파트너로 활약하면서 이름값을 올리고 있다. 자너는 고부가가치 특수 외장재분야 최고 업체로 명성을 얻으면서 중국 기업들의 도전을 물리치고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최근 “지난 10년간 미국 제조업은 560만개의 일자리를 잃을 정도로 경쟁력을 상실했지만, 중서부 중소도시에 있는 중견 금속업체인 자너를 통해 생존 비법을 배울 수 있다”고 평가했다. 자너가 미국 제조업 생존의 새 모델이 된 계기는 30여년 전 파격적인 건축 디자인으로 유명한 프랭크 게리와 손잡은 것이다. 자너는 게리와 30여개 건축 프로젝트에서 협력하며 기술력을 세계시장에 알렸다.

1988년 국제금속가공협회 기념 건축물을 만든 뒤 스페인 빌바오에 있는 구겐하임박물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드용뮤지엄, 뉴욕 맨해튼의 9·11 추모 기념관 등에 자너가 특수 제작한 초대형 구리 외장재 등이 사용됐다. 건물 모든 면의 형상과 질감이 다른 독특한 건축물은 자너의 마감재가 없었다면 태어날 수 없었다는 평가다.

이후 자너는 유명 건축가들과 줄줄이 계약을 맺었다. 하디드와는 미시간주 렌싱에 있는 브로드아트뮤지엄을 지을 때 협력했다. 쿨하스의 주요 작품에도 자너의 제품이 들어갔다. 또 랜덜 스타우트와는 거대한 금속리본으로 장식한 캐나다 앨버타아트뮤지엄을 함께 만들었다.

◆틈새시장을 기술로 점령하다

특수 건축외장재는 글로벌 경기불황에도 비교적 수요가 꾸준하다. 중국 베이징이나 상하이는 “글로벌 건축가들의 경연장이 됐다”는 평이 나올 정도로 실험적인 건물들이 계속 들어서고 있다. 아랍에미리트(UAE)나 카타르 같은 중동 국가들의 대형 건물 수요도 줄어들지 않고 있다. 대형 건물에 들어가는 마감재 양은 상상 이상이다. 예를 들어 이라크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내년 7월 완공 예정)에는 4만5000여개의 특수 은빛 외장 패널이 들어간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등 최신 건물 중에는 비정형 건물이 많다. 들어가는 패널도 모양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전문업체가 아니면 건축가의 세세한 요구를 수용하기 어렵다. 외장재 제조원가를 맞추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자칫 첨단건축물이 요구하는 품질을 맞추지 못해 외장업체가 ‘망신’만 당할 우려도 크다. 시장 진입장벽이 높은 것이다. 이에 따라 대부분 업체들은 독특한 디자인의 대형 외장재는 생산을 포기한다.

자너는 다른 기업이 포기한 고위험 사업군을 핵심 시장으로 삼아 집중했다. 1970년대까지 건축 부재(部材)인 금속 코니스 등 단순 금속가공품이 주력 사업이었다. 그러나 이후 기술 개발에 집중, 예술품에 가까운 초정밀 건축 외관 자재 전문업체로 변신했다.

고위험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기술력 확보가 핵심 요건이었다. 창업자의 증손자인 빌 자너 최고경영자(CEO)는 1980년대 초 특수 외장재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일본과 독일의 중소업체들을 일일이 방문하면서 벤치마킹했다. 연구·개발(R&D)에 집중한 것은 당연한 후속조치. 그는 회사를 금속 가공업체가 아니라 과학연구소라고 주장했다. 직원 구조도 생산인력 위주에서 기술개발 인력 위주로 바꿨다. 현재는 직원의 90%가 넘는 105명이 연구와 개발을 담당하고 있다.

빌 자너 CEO는 “캔자스시티 내 다른 금속 가공업체들은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에 밀려 줄줄이 공장 시설을 경매에 내놓고 있지만, 자너 공장에는 중국 카타르 일본에서 견학 오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다”고 말했다. 금속가공을 예술과 과학의 수준을 끌어올리고자 하는 노력의 결과였다는 평가다. 미국과 유럽의 대규모 건축시장이 침체에 빠졌지만, 기술력을 바탕으로 중동·중남미·중국 등지의 대형 건축 프로젝트에 참여해 ‘불황을 모르는’ 기업이 됐다. 캔자스시티의 두 개 공장에 있는 120여명의 금속 전문가들은 연간 4000만달러(약 45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초기 단계부터 협업이 성공비결

자너가 창의성 넘치는 건축가들과 독특한 건물을 짓고 싶어하는 건물주들의 단골이 된 이유는 또 있다. ‘고객 생산자 일체형’ 협업체제다. 고객이 독특한 건축 구상을 갖고 자너를 방문하면 연구진이 각종 기술력을 뒷받침해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드는 방식이다. 자너 디자인 연구소에서 엔지니어와 디자이너, 장인이 고객과 함께 컴퓨터 스크린에 뜬 예비모형을 살펴보며 밤을 새우는 광경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FT는 자너가 다른 미국 제조업체들과 달리 고부가가치 첨단 제품에 집중하고, 글로벌 고급 건축 시장을 개척해 슬럼프에 빠지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또 유명 예술가 및 건축업체와 협력 체제를 구축한 것도 성공비결이라고 덧붙였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