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ㆍ공정거래 소송 급증…경제학 교수 '몸값 급등'
증권·금융·공정거래 등 소송에서 손해액 산정이 갈수록 복잡해지면서 이를 감정하는 경제학과 교수들이 ‘귀한 몸’이 되고 있다. 감정 한 건에 적게는 1000만~2000만원, 많게는 수억원을 들이는데도 교수 감정인을 구하기 어렵다.

황윤재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2005년부터 감정을 했는데 점차 의뢰 건수가 급속도로 늘어나는 추세”라고 18일 말했다. 황 교수는 “감정은 짧게는 3개월에서 길게는 1~2년, 평균 6개월 정도 걸린다”며 “교수들이 강의도 해야 하고 자체 연구도 진행해야 해 맡을 수 있는 건수는 1년에 몇 건 안 된다”고 설명했다.

감정 건수는 소송 건수와 비례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증권사나 카드사, 보험사 등과 관련한 분쟁조정 신청 건수는 2010년 2만5888건에서 지난해 2만7920건으로 늘었다. 통상 이 가운데 3~5% 정도가 소송으로 이어진다.

소송금액은 증권사만 2010년 1조200억여원에서 지난해 1조3000억여원으로 증가했다. 증권 소송을 전문으로 하는 A법무법인의 변호사는 “최근 5년 사이에 감정 건수가 2배 정도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의 B부장판사는 “부동산을 비롯해 다른 분야는 감정인 풀이 풍부한 반면 금융과 같은 분야는 맡을 수 있는 경제학과 교수들이 한정돼 있다”며 “부동산은 통상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 정도지만 경제학 교수들의 감정은 간단한 건도 최소 1000만원은 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증권·금융·공정거래 등 감정 전문가는 황 교수를 비롯해 김우찬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이상승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조성국 중앙대 법학전문대학 교수(경제법) 등 20명 정도로 알려졌다.

경제학 가운데서도 미시경제학, 금융공학, 계량경제학, 산업조직론 등을 전공한 교수들이다. 이 분야의 교수들은 주가조작이나 파생상품 불완전판매, 가격 담합을 했을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의 주식이나 파생상품, 재화의 가격을 시뮬레이션 등을 통해 산정해 원고 측의 손해액을 산정해낸다. 감정은 통상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원고 측이 재판부에 신청하지만 피고 측에서 공정한 감정을 위해 함께 신청하기도 한다. 통화옵션상품인 키코(KIKO)와 관련한 ‘사기판매’ 사건에서는 중소기업과 증권사 측이 각각 전문교수 5명을 추천한 후 이 가운데 편파적일 것으로 우려되는 교수들을 제외시켜 2명에게 감정을 맡겼다.

주가조작에 비해 내용이 복잡한 파생상품이나 가격 담합의 손해액 산정비가 더 비싸다. 지난해 H&T 주가조작 사건에서는 원고와 피고가 각각 감정비로 3000만원을 부담했으나 2010년 밀가루 담합에서는 양측이 각각 6000만원을 부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키코 사건에서는 금융사가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상품구조를 짰는지를 경제학과 교수들이 풋옵션 가격과 콜옵션 가격의 차이를 계산해 조사했다. 이때 5~6개의 중소기업이 각각 1000만~2000만원을 부담하고 증권사도 1억여원을 부담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소 법무법인의 C변호사는 “지난해 가격 담합과 관련한 감정을 모 경제학과 교수에게 부탁했는데 방학 때까지 2~3개월을 기다리게 했다”며 “돈을 많이 줘도 감정인을 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감정 전문인력을 양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황 교수는 “경제학에서 손해액 산정은 미국 등지에서 급속히 떠오르는 분야로 국내에서도 유망 연구분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도원/이고운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