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발행 신용카드 종류는 얼마나 될까? 헤아릴 수 없다가 답이 아닐까.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광고 중 핸드폰,가전제품 광고 다음으로 많은 게 신용카드 광고로 기억될 정도니 말이다. 국민 1인당 네 장 정도의 신용카드를 소지하고 있다니,신용카드 광고 시장이 치열한 건 당연해 보인다.

이렇게 신용카드 종류가 많다 보니 '나에게 맞는 신용카드''내게 도움이 되는 신용카드'를 찾는 게 쉽지 않다. 머리 쓰기 싫어하고 단순한 아날로그형 인간은 모든 기능이 통합되고,어딜 가서 쓰나 혜택 많고 포인트가 많이 쌓이는 신용카드가 개발됐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KB국민와이즈카드는 '0세부터 100세까지 국민님,힘내세요!'라는 메인 카피 아래 시리즈 광고를 내놓으며,KB 국민카드가 국민의 권리를 위해 태어났다고 주장한다. 사실 '국민님'이라는 단어는 과한 존칭어지만 허덕이며 고물가 시대를 견디고 있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 나이를 짚어준다. 또 더 많이 욕심내고 바꿔보고 요구하라고 격려해주니 모처럼 대접받는 기분이 들어 그리 나쁘지 않다.

KB국민와이즈카드광고가 눈길을 끄는 가장 큰 이유는 연령대별 처지와 고민을 잘 짚어냈다는 점이다. 빅토리아여왕은 18세에 영국 여왕 자리에 올랐지만 지금 한국의 18세들은 엄청난 대입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안중근 의사는 31세에 독립 운동에 목숨 바쳤는데,현재 한국의 31세는 경제적 독립을 위해 재테크에 목숨 걸어야한다. 헨리 포드는 40세에 자동차 회사를 건립했지만 오늘 한국의 40대는 자동차 할부금을 갚느라 고생한다.

이처럼 역사 속 유명 인물과 평범한 나를 동일 선상에 놓고,기죽지 말고 힘내라고 격려해온 애니메이션 시리즈 광고는 당대 한국의 현실 속 유명인을 등장시켜 격려의 강도를 높이는 실질 광고로 보폭을 넓혀준다.

신용카드를 못 쓰는 학생 신분이지만,KB국민카드는 이런 학생에게도 체크카드를 발행해 응원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19세 수영 선수 정다래 편이 그러하다. 연령과 유명인 컨셉트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애니메이션에 실사를 결합하고 카드의 혜택을 구체적으로 알리는 점이 달라졌다.

25세 허각 편은 인물 선정과 실제 정보 면에서 정다래 편보다 한 발 더 나아간 광고다. 허각은 오디션열풍의 주인공이다. 노래만 잘 하면 평범한 외모를 가진 보통사람도 유명 가수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기특한 젊은이다. 허각을 모델로 발탁한 것 자체가 25세 동년배에게는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않을 수 없다.

핵심 생산 인력으로 분류되기 시작하는 연령답게 허각은 노래,예능,인터뷰 스케줄에서 걸 그룹 못지않게 바쁜 국민 슈퍼스타가 됐다. 그럼에도 다른 카드 회사에선 이토록 열심히 노래하고 결제하는 25세 허각에게 지정한 곳에서만 포인트를 주었을 뿐이다.

그러나 국민의 권리를 위해 새롭게 태어난 KB국민와이즈카드는 많이 쓰는 곳에서 포인트를 10배까지 적립해준다.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 펼치면 카드로 변하는 장면은 마술의 한 장면 같다. 포인트를 10배까지 쌓아주는 것은 곧 마술처럼 놀랍고 신기하고 기쁜 일이라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하는 것이다.

카드 혜택을 이처럼 구체적으로 알리는 내용 측면과 함께 크게 반원을 그리는 카메라 이동,이어폰을 끼고 노래하는 허각의 경쾌한 움직임,공중에 떠있던 굵직한 배경 글자가 부서지는 처리,빠른 템포의 배경 음악,친근한 내레이터는 예전의 애니메이션 광고 시리즈의 동화적 느낌과 스케줄 다이어리를 넘기는 듯한 장면 전환을 압도하는 역동성으로 다가온다. 역사 속 인물이 아닌 현실의 유명인을 내세운 광고에 어울리는 변화라 하겠다.

옥선희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