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저녁모임에서 한 친구가 심각한 표정으로 아이 이야기를 꺼냈다.
늦둥이로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온 셋째 아이가 요즘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해 걱정이라는 것이다.문제의 원인은 기차소리에서 비롯됐다.초등학교 1학년인 아이에게 선생님이 기차 달리는 소리가 어떤지 물었더니,그 아이는 손을 들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성대모사로 기차소리를 냈다고 했다.그러자 선생님은 "기차는 칙칙폭폭 소리를 내며 달린다"고 설명했고,그것이 자기가 들었던 기차소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아이는 그 이후 의기소침해져 발표를 잘 안 하려 한다는 것이다.학교가 원하는 기차소리와 내가 들었던 기차소리 사이에서 혼란해하며,사회가 원하는 정답의 무게에 눌려 의기소침하게 된 아이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오래 전 미국으로 유학갔을 때 교수와 학생 간 의사소통이 소란할 정도로 활발하고,심지어는 견해 차이가 나면 논쟁까지 벌이는 강의 분위기에 익숙지 않아 한동안 어려움을 겪었다.특히 논문으로 토론하는 강의에서는 더 그랬다.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논문이니 열심히 이해하는 것을 당연시 했던 나와는 달리,그곳 학생들은 거리낌없이 그 논문에 대해 다양한 관점에서의 비판을 제시했다.
그런 교육을 받지 못했던 나로서는 그들의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방식이 놀라웠고,그런 강의 방식에 동화되기까지 한참이 걸렸던 기억이 있다.
인간의 뇌는 태아 때 140억개 이상의 뇌세포로 이미 완성된다고 한다.모든 사람의 지성과 창의성의 기반은 같다는 것이다.문제는 그 완성된 뇌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뇌세포 간에 연결(시냅스)이 이뤄져야 한다.뇌세포 간의 연결이 많고 복잡할수록 지적능력과 창의력이 높아진다.뇌세포 간의 연결은 각 사람이 성장기 동안 얼마나 다양하고 의미있는 자극에 노출됐는가에 따라 결정된다.창의력은 자유로운 자신만의 정신세계를 이루는 데 필요한 다양한 경험과 시간의 산물인 것이다.
인생에는 정해진 답이 없다.
개인별 생각의 넓이와 깊이도 한계가 없다.
사람마다 인생을 펼쳐 나갈 능력도 미리 정해진 선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정해진 형식과 내용,만들어진 틀에 자신을 맞추고 있다.
그렇지 못하면 불안해하고,심한 경우 사회로부터 따돌림당하기도 한다.수많은 뇌세포를 연결해야 할 우리 아이들이 사회와 어른들의 타성에 따라 정해진 틀에 맞추느라 자유로운 정신세계를 발전시킬 기회를 마음껏 갖지 못하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창의력이란 규격화된 환경에서는 얻을 수 없고,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