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부동산가격이 마치 '미친 듯' 날뛰자 다급한 정부는 급기야 15일 아껴두고 있던 공급확대 위주의 대책을 내놓았다. 한국은행도 여차하면 다시 콜금리를 인상할 수 있다는 입장을 펴고 있다. 그만큼 현재 우리의 상황이 심각하다는 이야기다.
필자는 지금의 상황을 보면서 '토지신화(神話)'가 붕괴된 1991년 일본을 떠올린다. 주지하다시피 일본은 1980년대 후반 6대도시 평균지가가 3배 이상 상승한 부동산 버블을 경험했다.
당시 버블 형성에는 현재 우리나라와 같이 저금리, 시장의 풍부한 유동성, 일본 은행들의 부동산대출 확대 등 경제적 요인뿐만 아니라 굳게 뿌리박힌 토지신화가 크게 작용했다. 과거 일본은 '토지본위제(本位制)'라고 불릴 정도로 토지를 포함한 부동산이 자산 가치로 높게 평가돼 왔다. 당시 일본 토지버블 형성의 주체는 기업이었다. 일본 기업들은 본사 빌딩은 물론 기업 활동의 거점이 되는 지점 및 영업소 등을 직접 구입했다. 조금만 여유가 있으면 장래의 공장 확대를 위해 토지를 사 두거나 사원의 복지후생 시설로 기숙사, 사택, 휴양소, 영빈관 등 기업 활동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것도 토지신화의 믿음 아래 구입했다. 심지어 자금력이 부족한 기업들도 금융기관 차입자금으로 일단 토지를 취득한 후, 그 토지에 빌딩을 지어 임대하거나 전매(轉賣)를 통해 이익을 발생시켜 차입금을 변제할 계획으로 토지구입에 열중했다.
일본 정부는 토지가격 폭등으로 자산가치의 불공평성에 분노한 사람들을 달래는 한편 거품경제의 폐해를 우려해 전방위적 버블 확대 억제정책을 펼쳤다. 먼저 토지세제의 개혁으로서, 토지기본법 이념에 따라 토지관련(취득·보유·양도) 세금을 종전보다 무겁게 부과했다. 그러다가 버블 후반기에 접어들어 일본은행(BOJ)은 통화증가율을 억제하고, 공정할인율을 큰 폭으로 인상하는 등 강력한 긴축정책을 펼쳤다. 1987년 5월 2.5%이던 공정할인율은 단계적으로 인상돼 1990년 8월에는 6%까지 상승했다.
이러한 전방위적 정책이 결국 시장 참여자들의 '토지신화'에 대한 기대심리를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결정적으로 1990년 3월 토지관련 융자에 대한 총량규제의 도입(부동산관련 대출증가율을 자산범위 내에서 이뤄지도록 규제)으로 인해 부동산에 대한 수요가 원천적으로 봉쇄되면서 가수요 매물이 순식간에 시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일본의 부동산 가격은 투기 목적으로 구입한 부동산이 시장에 매물로 쏟아지면서 하락세로 반전됐다. 그동안 절대적 토지 순매수자였던 일본 기업들은 서둘러 불필요한 부동산을 정리하고,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면서 토지의 순매도자로 돌변했다.
토지의 전매가 불가능해진 상태에서 은행에 대한 차입금이 불어났고, 토지 채권(債權)에 대한 이자도 지불할 수 없는 상태로 되면서 기업 도산이 속출했다. 특히 자기자본이 작지만 부동산 구입에 열중한 대부분의 중소기업은 도산했다. 금융기관들도 부동산을 담보로 융자한 막대한 채권이 부실화됐다. 중소규모의 금융기관이 잇달아 파산하면서 금융기관 부실채권 문제가 심각하게 부상했다. 특히 금융기관으로부터 거액을 대출받아 부동산업에 집중 대출한 주택금융전문회사 7개가 모두 파탄했다. 결국 기업과 금융기관이 동시에 부실화되면서 '복합불황' 국면의 상황으로 빠지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버블의 주체와 대상이 가계와 주택이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당시 일본 상황과 매우 유사하다. 부동산 거품 붕괴는 이미 취약해진 가계에 적지 않은 충격을 줄 가능성이 높다. 지금도 개인파산 신청이 눈덩이처럼 늘어나고 있다. 버블 붕괴 후의 적절한 대응 미흡으로 일본은 소위 '잃어버린 14년'이라고 일컬어지는 장기불황을 경험했다. 정부의 정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며, 이러한 점에서 일본은 우리의 훌륭한 반면교사(反面敎師)이다. 이제 그 어느 때보다도 우리 정책당국의 세심한 정책이 요구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