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여년 전 조선 실학자 이덕무(李德懋)가 친구 윤가기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이다. 이덕무는 서얼 출신으로 평생을 가난하게 살면서 스스로 '간서치'(看書痴·책만 보는 바보)라 했던 책벌레다. 귀한 책은 어디서나 빛나는 법. '매화감실 위에 놓아둔' 바로 그 책을 빌려달라는데,아예 거절할 수도 없게 쐐기를 박으면서 하는 부탁이다.
하긴 장작이 없어 냉방에서 견디다 '한서' 한 질을 이불처럼 늘어놓고 '논어'를 병풍으로 삼아 겨울밤을 지샜다는 이덕무로서는 더이상 염치를 차릴 상황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누구보다 책읽기를 좋아했다. 밤중에 어머니 방에 군불을 때며 아궁이 앞에서 책을 읽었다는 조헌(趙憲)을 그리워했고 기름이 없어 먼동 트기를 기다려 여명에 책을 비추며 서 있던 바닥 위에 뒤꿈치 자국을 남겼다던 장무구(張無垢)의 열정을 부러워했다.
그러면서 불운한 처지를 스스로 위로하고 신학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18세기 조선의 르네상스를 '책장 넘기는 소리'만큼 차분하게 주도했다. 그에게는 책이 곧 세상이고 삶이며 우주였다. '옛날에는 문을 닫고 앉아 글을 읽어도 천하의 일을 알 수 있었다'며 선현들의 지혜에 못미치는 자신의 우둔함을 한탄했다.
벌써 아침 저녁 바람이 서늘하다. 해마다 이맘 때가 되면 서점 매출이 뚝 떨어진다고 한다. 출판사들도 책이 안 나간다며 울상을 짓는다. 오죽하면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며 책 좀 읽으라고 범국민적인 캠페인까지 벌이게 됐을까.
'책 든 손 귀하고 읽는 눈 빛난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등 주옥같은 경구가 곳곳에 펄럭인다. 그러나 이제는 독서를 권하는 말조차 식상해졌다. 책 읽으라는 '당위'를 강조하기 전에 독서가 왜 좋은지를 솔깃하게 알려주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이덕무는 독서에 네 가지 유익함이 있다고 했다. 배고픈 걸 잊게 해주고 추위를 막아주며 근심과 번뇌를 없애주는데다 기침까지 낫게 해준다는 것이다. 여기서 배고픔과 추위를 육신의 안쪽과 몸 밖의 환경으로 바꾸고,근심·번뇌를 내면의 정신세계로 치환해보면 책의 덕목이 훨씬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기침까지 낫게 한다는 것은 기운과 기운이 통하여 막힌 것을 뚫어주는 것이니 우주의 이치가 따로 없다.
업계 최초로 '독서경영'을 시작한 이장우 이메이션코리아 사장은 외환위기 때 자본잠식 상태까지 갔던 회사를 2년 만에 흑자로 전환시킨 힘이 바로 책이었다며 "MBA 과정에는 수천만원이 들지만 책은 몇 만원이면 되니 이보다 더 저렴한 공부방법이 어디 있겠냐"고 말한다.
고두현 문화부 차장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