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承佑 < 농협유통 사장 >

전통적으로 쌀,수박 등과 같은 농산물은 상품간의 차별성 없이 시장가격이 정해지고,소비자들은 '가격'을 위주로 상품을 구입하는 '완전경쟁'의 행태였다.

생산자인 농민들도 가격을 올리고 내리는 통제가 불가능했고,시장에서의 거래도 주로 '경매'에 의해 이루어졌다.

경매에 의한 농산물 가격 결정은 거래 가격을 투명하게 노출시켜 공정한 시장 거래의 기틀을 마련한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산지 수집상의 이른바 '밭떼기'를 통해 대부분의 소비지 농산물 가격 결정이 되는 우리나라에서는 경매의 장점이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었다.

농산물 유통 구조의 비효율성을 개선하기 위해 도입된 농산물 직거래 방식은 농산물 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마진을 줄여 생산자와 소비자의 가격차를 좁히는 데 성공했다.

생산자와 출하(出荷) 물량·가격 등을 사전에 협의하는 '예약수의 거래'도 출하 가격과 소비자 가격을 안정적으로 보장하는 제도로 완전하지는 않지만 일단 정착 단계에는 접어 들었다는 평가다.

직거래의 활성화를 위해 산지 저장시설이 확대되고,지역농협을 통한 계통출하가 증가함에 따라 농산물의 물량조절도 가능하게 됐다.

이러한 장점 때문에 많은 대형 유통업체들이 농산물 직거래 비중을 높이고 있고, 유통비용 절감으로 우리 농산물의 가격 경쟁력을 향상시켰다.

그러나 국가 경제 발전과 더불어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소비자의 농산물 선호도도 '완전경쟁'에서와는 달리 '가격' 위주에서 '품질'이나 '안전성' 등으로 차별화되고 있다.

삶의 질의 향상으로 먹거리의 의미가 배고품을 채우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건강을 지키기 위한 목적으로 한 차원 높아졌기 때문이다.

특히 맞벌이 부부가 증가하고 주5일제 근무로 여가 시간이 늘어나면서 외식 문화가 보편화됨에 따라 식자재에 대한 안전성 검증이 필요하다.

식자재 공급업체(케이터링사업체)와 이들 업체에 식자재를 공급하는 물류센터에 대한 안전망 구축도 병행해야 함은 물론이다.

각 가정에서 안전한 농산물로 건강한 식탁을 차리기 위해 꼼꼼하게 챙기면서도 정작 외식할 때는 식자재에 대한 안전성을 챙기지 않는다면 '만사휴의(萬事休矣)'한 일이다.

업체간 가격 경쟁 심화로 원가를 낮추기 위해 해외시장에서 값싼 식자재가 많이 수입·유통되면서 안전성 문제뿐만 아니라 국내 농업기반과 식자재 사업의 연계성을 약화시키는 부작용도 우려된다.

관세청 통계에 따르면 올 1~5월 중국산 김치 수입량은 작년에 비해 60%나 증가했다.

신선 배추도 작년에는 수입 물량이 전혀 없었으나 올해는 764t이나 수입됐다.

정부가 생산 단계에서의 농산물 안전성 확보에 주력하는 것과 더불어 국민의 식탁과 직결돼 있는 소비지 유통 단계에서의 식자재 및 우리 농산물의 안전성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내년부터 영업면적 300㎡ 이상의 중·대형 식당이 구이용 쇠고기에 대해 원산지(原産地)와 종류를 표시하도록 의무화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

이제 소비자들은 자신들이 먹는 쇠고기가 국내산인지 외국산인지,한우인지 육우인지를 확실히 알고 먹을 수 있게 됐다.

원산지표시제뿐만 아니라 HACCP(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Hazard Analysis Critical Control Point),농산물이력추적제(Traceability),우수농산물 관리 제도(GAP) 등도 농산물 안전성 관리 강화를 위한 소프트웨어 구축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국산 농산물 소비를 적극적으로 유도하기 위해 국산 식자재를 사용하는 식당에는 세제 우대 혜택을 주는 등의 구체적인 지원 계획도 검토돼야 한다.

생산단계에서부터 유통단계를 거쳐 국민의 식탁에 오르는 농산물에 대한 안전망이 각 단계별로 도입·확충될수록 우리 국민의 식탁도 더 안전하고 건강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