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8 16:29
수정2006.04.08 20:07
문휘창 <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
철도노조 파업이 며칠 만에 끝났다.
이러한 시위의 재발방지를 위해,또한 우리의 시위문화를 한 차원 높이기 위해 근본적인 문제점을 살펴보자.우선 다른 나라의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노사문제가 가장 평온한 나라는 일본이다.
도요타자동차의 경우 1950년에 한번 파업을 한 후에는 56년 동안 분규 없이 노사가 생산성 향상을 위해서만 노력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익이 많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몇 년 동안 임금을 동결하면서 재도약을 위해 연구개발 재원을 확보하고 있다.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도요타의 위치가 점차 높아지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런 일본에서 얼마 전 재미있는 파업이 일어났다.
일본 프로야구 선수들이 야구팀의 인수ㆍ합병과 관련해 구단측과의 마찰로 파업을 한 것이다.
물론 이것은 일본 프로야구 70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때 대부분의 야구팬과 시민들은 야구선수 노조를 응원했다.
언론도 추악한 경영진의 모습을 만화로 보여주는 등 노조 편을 들었다.
결국 구단이 양보를 하게 된다.
이것과 성격이 전혀 다른 사례는 미국 뉴욕시의 대중교통 노조가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시작한 파업이다.
뉴욕의 테일러 법안에 의하면 대중교통 노조는 파업이 금지돼 있는데,파업을 감행한 것이다.
불법에는 당연히 벌칙이 내려질 것이고,하루 파업 벌금으로 노조에는 1백만달러를 부과했다. 파업 참가자에게는 3일치의 임금을 삭감했다. 뉴욕시장인 블룸버그도 단호한 입장을 취했다.
파업을 풀기 전에 협상은 없었다.
그러나 여기서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뉴욕시민이었다. 이들은 파업을 견뎌내며 아이디어를 내고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공유했다. 자동차 함께 타기는 물론이고 자전거,롤러 블레이드 등도 이용했다.
거리로 나온 사람들의 출퇴근 행렬에 축제분위기까지 느낄 정도였다.
브루클린 다리를 건너 맨해튼으로 들어오는 시민들의 행렬에 뉴욕시장이 함께 걸으며 대장정을 연출해 극적인 효과가 최고조에 달했다. 사태가 이 정도에 이르니 교통노조의 파업은 이미 실패한 것이다.
일본의 야구선수 파업과 미국의 교통노조 파업은 무엇이 다른가? 근본적인 차이점은 전자는 고용주에 대한 순수한 파업이고, 후자는 시민 전체에 대한 파업이다.
교통노조가 파업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교통이 가장 복잡한 연말 크리스마스 시즌을 택한 것은 바로 시민을 상대로 파업을 했다는 것이다.
시민들의 분노는 당연한 것이고 시민이 뽑은 뉴욕시장이 어떻게 해야 할지도 이미 정해진 것이다.
강력한 정책을 취한 뉴욕시장도 훌륭하지만 시장의 태도를 이렇게 만든 뉴욕 시민이 더 훌륭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파업이 일어나면 정부는 말로만 법과 원칙을 내세웠지 실제로는 미온적인 해결로 흐지부지해 왔다.
지금까지는 정부를 비난했지만 이제는 국민들 책임이 더 크다.
후진국에서는 정치가가 주도하지만 선진국에서는 국민이 주도한다.
다음 선거를 위해서 압력단체에 굴복하는 정치인을 우리 국민이 더 이상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파업에도 후진문화와 선진문화가 있다.
후진문화에서 국민은 인질로 잡혀 불편함을 당해야 하지만 선진문화에서는 국민이 심판자가 된다.
파업을 하는 주체가 지금까지는 사용자나 정부만을 상대했지만 앞으로는 우리 국민 모두를 상대해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 국민은 파업을 불평만 하는 약한 모습에서 벗어나 잘못된 것을 고쳐줄 때이다.
손자병법에서는 확실한 준비가 돼 있지 않으면 전투를 시작도 하지 말라고 했다.
이순신 장군은 이길 수 있는 전투만 했다.
파업도 이길 수 있는 것만 해야 한다.
그런데 전투와 파업이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전투에는 힘의 논리만 적용되지만 파업에는 심판관이 있다.
이제부터 우리 국민이 심판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