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제트기가 마하 0.9 정도로 음속보다 약간 느린 것으로 알고 있다. 음속의 2배로 날려고 하면 엔진의 힘이 2배만 있으면 될 것으로 아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다. 비행기 재료공학,기초물리,화학 등 모든 소재가 바뀌어야 초음속 제트기로 넘어갈 수 있다. 마하로 진입하기 위해 전체 소재를 바꿔야 하듯 이제 전체 사고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선발에 치이고 후발에 쫓기는 신세가 될 것이다"(이건희 삼성 회장,2002년4월19일 전자 계열 사장단회의) 세계 초일류 기업이 되려면 일시적으로 이익을 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삼성전자는 지난 99년 이후 3년동안 12조원의 순이익을 냈지만 단지 이것만으로 초일류기업이라고 얘기할 수는 없다. 요즘처럼 변화가 빠른 시대에는 잘 나가는 기업도 한 번의 그릇된 판단으로 생존조차 어려워지는 상황으로 몰리는 경우가 많다. 아날로그 시대의 황제였던 소니가 "인터넷 시대를 잃어버렸다"(이데이 노부유키 회장)는 독백을 하듯,완벽한 기업으로 여겨졌던 GE와 노키아가 수개월만에 비판의 표적이 되듯 삼성전자도 언제 어떤 환경 변화에 직면하게 될 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삼성전자가 초일류기업의 반열에 오르기 위해서는 하나의 산업을 창출하거나 주도할 수 있는 핵심원천기술을 자체적으로 확보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인텔이나 마이크로소프트는 각각 CPU(중앙처리장치)와 OS(운영체계)분야의 독보적인 기술로 PC의 시대를 열었다. 한 컨설팅업체의 대표는 "삼성전자는 원천기술을 도입해 이를 운용하는 면에서는 도가 텄다.그러나 중국이 이를 베껴서 먹고 살게 되면 어디에 설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대제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네트워크 사장도 "우리가 메모리나 컬러TV를 발명한 것이 아니지만 발빠른 추종자로서 사업화하는데 성공했다"며 "앞으로는 산업을 주도하거나 창출하는 회사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업을 리드하기 위해서는 특정국가 기업으로서의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글로벌화를 한 단계 높이는 것도 주요한 과제. 산업계에서의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산업을 이끄는 세계 주요 CEO들의 네트워크에 적극적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삼성전자 CEO들이 국내 기업 중에서는 나은 편이지만 그래도 해외에서 활동하는 '글로벌 익스포저'가 부족하다.해외 컨퍼런스에도 자료나 받아오라며 직원들을 보낸다.앞서 나가려면 세계적인 인물들을 만나고 앞선 서적을 읽어야 하는데 국내CEO들은 영어가 달리고 지식이 부족하다."(한 컨설팅업체 대표) 외국인을 보다 과감하게 기용해야 한다는 소리도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초 외국인으로선 처음으로 데이비드 스틸을 본사 임원으로 발령한 정도다. 해외에서 인재를 유치하는 경우에도 교포등 한국계 인재들에 주로 의존했다. 자연히 인재풀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사업을 재구축하는 것도 쉽지 않은 과제다. 이건희 회장은 "안되는 것을 끝까지 움켜쥐고 있는 것이 기업을 부실하게 만드는 악의 근원이 된다"고 말했다. 현재는 반도체 정보통신 디지털미디어 가전 등의 사업이 제각각 수익성을 확보하고 있다. 반도체에선 인텔,휴대전화에선 노키아,디지털미디어와 가전에선 소니 등에 도전하고 있지만 모두 성공하리라고 장담할 순 없다. 일본 기업의 경우 뛰어난 기술력과 브랜드 가치에도 불구하고 사업재구축 시기를 미룬 탓에 장기간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삼성전자는 각종 기기들이 융복합화되고 네트워크화되는 디지털컨버전스(융합)에 대비하는데 주력하고 있지만 그 성과도 아직은 시장에서 확인되지 않은 상태다. 삼성전자의 경쟁력에는 앞서 비전을 제시하고 과감하게 투자결정을 한 이 회장의 리더십이 크게 작용했다. 이 회장은 외국인 지분율이 절반이 넘고 오너경영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많은 가운데서도 경영성과를 통해 비판론을 잠재웠다. 회장의 리더십이 기여한 바가 컸던 만큼 이 회장의 뒤를 이을 아들 이재용 상무보가 시장에서 경영자로서 검증받고 리더십을 확보하느냐 하는 점도 삼성의 핵심과제다. 삼성측은 이 상무보에 대해 "경영수업중이고 장기간의 시간이 남아있다"며 "이 동안 이 회장의 교육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1년간 이 상무보는 1백일 가량을 해외현장을 누비면서 보냈다. 경영에 참여한 직후인 지난해 5월 삼성의 최오지 해외사업장 중 한곳인 브라질 마나우스 공장을 방문한 것을 비롯 말레이시아 살렘방 전자복합단지,유럽과 러시아 우크라이나 사업장,인도네시아 전기공장 등을 둘러봤다. 올 2월에는 올림픽마케팅의 현장인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에 이 회장과 동행하고 멕시코 전자복합단지를 방문했다. 또 제프리 이멜트 GE 회장,니시무로 다이조 도시바 회장 등 세계적 기업인은 물론 주룽지 중국 총리,자크 로그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미래학자 앨빈 토플러 등 유력인사들과의 개별면담이나 면담 배석을 통해 글로벌 경영감각도 닦고 있다. 삼성측은 이 상무보가 이 회장으로부터 철저한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면서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진대제 황영기 사장 등 경영진으로부터도 미래기술발전상,전문금융지식등 그룹경영전반에 대해 이야기를 들으며 이해의 폭을 넓히고 있다고 전했다. 삼성은 그동안 우수인재영입,성과보상제도,상시구조조정 등 선진경영기법을 소화해왔다. 회사에 대한 충성심과 조직 및 업무 우선주의,부서간 협력 등 동양적 기업문화에도 의존해왔다. 그러나 서구의 기업문화가 확산되면서 충성심이 떨어지고 자신의 성과에만 집착해 조직력이 약화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이같은 문화의 충돌을 다스리고 '삼성만의 기업문화'를 창출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삼성전자는 한국기업으로서 한계도 안고 있다. 아무리 세계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도 국가신용등급 이상의 신용등급을 받지는 못한다. 주가 역시 좋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해외 경쟁업체들만 못하다. 최근처럼 정치적인 논란에 기업들이 자꾸 휘말리는 현상도 삼성의 경쟁력에는 마이너스 요인이다. 국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짐에 따라 경제력 집중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부담요인이 된다. 김성택 기자 idntt@hankyung.com ◇특별취재팀=이봉구 산업담당부국장(팀장),강현철,이익원,조주현,김성택,이심기,정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