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년 12월의 함흥은 유난히도 추웠다. 삭풍이 몰아친 이곳 형무소의 외진 감방에서는 한 국어학자가 일제의 모진 고문에 못이겨 죽어가고 있었다. 그는 다름아닌 ''우리 글 보존''을 유언으로 남긴 국어학자 이윤재였다. 당시 그는 이극로 한징 최현배 이희승 정인승 등 동료 국어학자들과 함께 조선어학회를 조직해 한글 맞춤법을 제정하고 조선어사전을 편찬하는 등 한글보급운동에 앞장섰다. 일제는 이 운동을 ''학술단체를 가장해 국체(國體) 변혁을 도모한다''며 내란죄로 다스렸다. 이것이 1942년에 터진 소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33명이 기소돼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었다. 우리 글을 보존하고자 하는 노력은 그 이전 1940년의 창씨개명에서도 있었다. 창씨개명은 우리 말과 글을 완전히 추방하는 민족말살정책의 일환이었기 때문에 가람 이병기, 만해(卍海) 한용운 등 지사들이 끝까지 개명을 거부하며 맞섰다. 이렇듯 모진 역경을 딛고 가꾸어온 우리 언어가 최근 몇년 사이 급속히 무너지고 있다는 개탄의 소리가 가득하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며칠전 문화관광부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한국인의 평균 국어실력이 100점 만점에 고작 29점으로 나타났다. 중고생은 31점이며, 대학생의 경우도 34점이다. 정말 한심하다는 느낌 뿐이다. 6년전의 조사에서는 50∼55점이었다. 지난해에는 서울대학교 신입생들의 낮은 국어실력이 큰 충격을 주었었다. 이는 일관성 없는 국어교육의 탓도 크지만,청소년들 사이의 외국어 중시풍조와 인터넷언어가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맞춤법이 무시되는 건 예사이고, 국적불명의 신조어가 하루가 멀다하고 양산되고 있다. 이로 인해 세대간의 의사소통에 불편을 느낀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 머지않아 우리 언어가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것이라는 극단적인 진단도 나오고 있다. 한 나라의 ''정신''과 ''문화''를 함축하고 있는 언어가 파괴된다면 그 나라의 정체성도 잃게 될 것이다. 우리 글을 지키고자 진력했던 선조들의 지조를 한번쯤 되새겨 봄직하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