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합을 향해 맞잡은 모든 손은 아름답다.

고난도의 합의를 이끌어내고 난 후의 미소는 깊고 밝다.

지난 목요일 밤11시20분 공동성명 소식과 전송화면을 기다리며 TV를 떠나지않은 무수한 사람들은 언뜻 스친 "혹시나"하는 초조함,그 뒤에 접하게 된 남북 정상의 악수와 미소는 더욱 그랬다.

그 장면이 전세계의 신문지상에서 심심치않게 만나게 되는,쉽게 만났다 헤어지는 정치적 정상들의 제스처와 구별돼 드러나는 것은 회담 당사자들이 한반도 현대사의 온갖 회오리의 중심에 있으며 그들을 둘러싼 아우라 (aura) 가 그만큼 짙기 때문이다.

"역사는 만들어가는 것이다"라는 1차적 명제가 각별한 감동을 불러일으키며 다가온 순간이기도 했다.

그러나 역사는 순간이 아니다.

두 정상이 평양 순안공항에서 손을 맞잡은 순간 되돌릴 수도,되돌려도 안되는 새로운 역사의 주사위는 던져졌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어내야 하는 것은 정치인들의 기술적인 전문성의 몫이기 전에 한반도 7천만 모두의 과제가 됐다.

우리 모두가 그 사안의 중요성을 뼛속 깊이 인지하는데만도 상당한 시간이 걸리리라.아마도 통일을 향한 어떤 프로그램 못지 않게 중요한 앞으로의 과제는 바로 이 "인식"을 구성원 모두가 환상없이 체화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말과 당위로 부르짖던 통일의 실체를 가장 민감한 세부까지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는 일에 충분한 시간이 바쳐질 때에서야,무수한 장애물을 뛰어넘고자 하는 의지가 효과적인 힘을 발하기 때문이다.

이런 차원에서 각별히 중요하게 생각되는 두 가지 어려운 실천이 우리 민족에게 부과됐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명실상부한 공존의 실현이며 다른 하나는 통일로 가는 과정에 꼭 이루어져야 하는 탈분단의 실천이다.

공존,상호인정은 이번 정상회담의 핵심 기조이자 기본 명제다.

그러나 실천을 생각하자마자 가장 어려운 과제로 등장한다.

이것은 양쪽 모두에게 마찬가지다.

공존을 위해 민족의 동질성 회복을 언급한다.

타당한 일이다.

그러나 그 만큼 중요한 것은 각자의 차이를 받아들이면서 평등하게 공존하는,우리에게 무척 낯선 삶의 형태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회복해야할 동질성도 있겠지만 서로가 만들어내야 할 동질성이 더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평양문이 열리고 거리와 지하철 등 북쪽의 일상 공간이 갑자기 가까이 다가오면서 우리의 북한 인식은 적지않은 혼란을 겪은 것이 사실이다.

그곳에도 첨단 과학기술이 있었네라고 내심 놀란 사람이 한 둘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영상이 드러낼 수 없는,영상에 잡히지 않는 현실도 있다.

그 엄연한 현실에 다가가려고 노력하는 것도 "공존"의 하나다.

공존이란 가장 밝은 것에서 가장 어두운 것까지 "나누는 것"이다.

나눌수 있는 능력도 필요하지만 나누어야한다는 윤리적 당위도 우리가 새롭게 배워야 하는 것이다.

두 정상의 만남에 희망과 허탈감을 동시에 느낀 사람이 한 둘이 아닐 것이다.

그들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탈분단없이 "통일"이라는 말이 성립할까 자문해 본다.

이산가족과 친지 상봉,그리고 젊음과 장년을 감옥에서 보낸 비전향 장기수의 북송 문제가 공동선언에 포함된 것은 매우 귀중하다.

그것이 탈분단의 시작을 구체적으로 알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외에도 무수한 분단의 상처들,희생자들이 있다.

탈분단의 실천은 바로 이러한 다양한 상처들을 치유하는 노력이기도 하다.

"인도적"이란 말이 울림을 갖는 것은 그 때문이다.

"분단"이 역사적이며 정치적인 사건이었다면,"탈분단"은 인도적으로 밖에 풀 수 없는 것이다.

"인도적"이라는 말은 일련의 실천적 과정을 동반해야 한다.

그 실천은 무엇보다도 탈분단을 가시화하기 위해 해당 법조문의 세부를 살피고 인도적으로 수정하는 일들로 시작해야 하리라.

21세기에 한반도는 세계가 놀랄만한 역사적인 모범을 보여줄수 있을 것인가.

후대에 두고두고 전범으로 삼을 사례를 만들기 위해 각자의 지혜와 미래지향의 상상력이 동원돼야하는 때다.

그러나 물질과 기술등 모든 것을 진부하게 만들어 보려는 상업화의 속도앞에서 퇴색해 보이는 가치들을 다시 유효하게 조명해야 하는 때이기도 하다.

관용 인내 박애 같은 기본적인 가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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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약력 =

<>서강대 국문과,불문과(대학원)
<>프랑스 엑스 앙 프로방스대 불문학 박사
<>서강대 불문과 교수
<>소설집 "열세가지 이름의 꽃향기" 중편 "숲속의 빈터" 장편 "겨울 아틀란티스"